덩치 큰 달동네 불도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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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큰 달동네 불도그는...
  • 권근영
  • 승인 2021.04.27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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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1동 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
(30-끝) 남숙이 개를 기르지 않는 이유
2020년 새 기획연재 <송림1동 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가 30회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1954년부터 1998년까지 수도국산 달동네 송림1동 181번지에 살던 정남숙 님과 그의 가족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남숙의 손녀 영이가 글로 옮겼습니다. 필자와 가족들에 감사드립니다.

 

수도국산 달동네 골목 어귀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앞에는 눈 뜬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강아지 두 마리가 놓여 있다. 태어난 지 보름 정도나 되었을까 싶은 아주 작은 강아지다. 배가 고픈지 어미 품이 그리운지 낑낑거리는 강아지를 두고 동네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누구 데리고 가서 키울 사람 없냐며 수소문하는 와중에 작은 여자아이 하나가 얼굴을 내밀고 “제가 데려갈게요”라고 한다. 연희와 인구의 아이, 영이다.

영이는 두 손 위에 강아지 한 마리를 안아 들고 송림동 집으로 달려간다. 갈색과 하얀색 털로 알록달록한 무늬를 가졌고, 눈동자가 까맣다. 반쯤 열려 있는 나무 대문을 지나며 큰 목소리로 엄마를 부른다. 마당으로 나온 연희는 강아지를 보자마자 또 뭘 주워온 거냐며 영이를 나무란다. 놀란 영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안방에 있던 영이의 할머니, 남숙이 마당에 나왔다. 영이가 데려온 작은 강아지를 가만히 쓰다듬더니 홀쭉한 배를 만져본다. 남숙은 부엌으로 가 밥알을 물에 불려 미음을 쑨다. 은색 양은 그릇에 투명한 미음이 담겼다. 남숙은 손가락으로 온도를 가늠해보고는 어린 강아지 입에 묻힌다. 혓바닥을 할짝거리더니 점점 입으로 빠는 힘이 세진다. 탈 나지 않게 조금씩 목구멍으로 넘어갈 수 있게 해준다. 배가 어느 정도 찼는지 강아지는 밥그릇에서 고개를 돌린다. 남숙은 강아지의 볼록해진 배를 보고는 이제 살았네, 라고 한마디 한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온 연희는 수도국산을 떠돌던 개가 낳은 새끼이고, 주인이 없다는 걸 알아냈다. 혹시나 키울 사람이 있는지도 알아보았는데 소득이 없었다. 타들어 가는 연희의 속도 모르고 배가 부른 강아지는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볼록한 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모습이 신기해 영이는 한참 동안 강아지만 바라보고 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인구는 강아지에게 아롱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송림1동 181번지에 새 식구가 생기게 되었다.

 

남숙이 다니던 와룡회사에서 키우던 개와 함께.
남숙이 다니던 와룡회사에서 키우던 개와 함께.

 

송림동 집에서 개를 키우는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영이가 살아온 8년 동안 단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영이는 앨범 속 오래된 사진에서만 개와 찍은 사진을 몇 장 보았을 뿐이다. 남숙이 마지막으로 키운 개는 불도그였다. 수도국산 꼭대기에 얼굴이 일그러지고 이마에 주름이 진 개가 골목을 버티고 앉아 있으면, 사람들은 무서워했다. 그 앞을 지나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입분 엄마~”하고 불렀다. 남숙이 나와 덩치만 크지 물지는 않는다고 말하면, 그제야 동네 여자들은 안심했다.

수도국산에는 개 있는 집이 많았다. 키운다기보다는 그저 밥을 주고 잠을 재워주는 거다. 개들은 보통 개 줄 없이 집 밖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집마다 듬성듬성 뚫린 대문 밑으로 기어나가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언덕 너머 다른 동네에서 옆집 개를 발견하기도 했다. 개들은 수도국산을 뛰어다니다가 새끼를 배서 돌아오기도 했다.

남숙이 키우던 불도그는 멀리 가는 법 없이 집 근처를 돌아다니다 대문 앞에 앉아 낮잠을 자곤 했다.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모양에 성격은 참 순했다. 밥을 먹을 때도 두툼한 턱살이 출렁이며 우걱우걱 먹었다. 윤기가 나는 털을 보며 개가 어쩜 이렇게 멋지게 자랐냐며 칭찬이 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숙이 애지중지 아끼던 불도그가 죽었다. 쥐약 때문이었다. 가을이 되면, 동네 여기저기 쥐약을 놓았다. 동사무소에서 집마다 쥐약을 나눠주기도 했고, 초등학교에서는 쥐를 잡고 쥐꼬리를 가져오라는 숙제도 내줬다. 쌀 한 톨이라도 낭비를 막기 위해 온 동네마다 쥐약을 놓았는데, 쥐만 잡는 것이 아니었다. 동네 고양이, 개도 같이 죽어 나갔다. 쥐는 보통 밤에 왕성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밤에 쥐약을 놓고 새벽에 거둬들이는 게 일반적이었다. 아침에 약 치우는 것을 깜빡하거나 주위에 개 묶어놓으라고 서로 단속하지 않은 경우, 사고가 났다.

쥐약을 먹은 불도그는 한참 동안 마당을 뱅글뱅글 돌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눈알에 핏기가 서서 날뛰는데 남숙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걸음이 느려지고 가쁘게 숨을 쌕쌕 내쉬다가 심장이 멈췄다. 남숙은 형우에게 불도그를 잘 묻어달라고 부탁했다. 형우는 고무 대야에 불도그를 담았다. 꽤 묵직했다. 수도국산 언덕을 내려가 현대극장 방향으로 갔다. 극장 왼쪽으로는 논이 있고, 극장 건너 맞은편 언덕으로는 산이 있어서 그쪽에 묻을 생각이었다.

불도그를 묻으러 가는 길에 쪼리 아주머니를 만났다. 쪼리는 조잘조잘 이야기를 야무지게 잘해서 남숙이 붙여준 별명이다. 동네 소식통이기도 한 쪼리 아주머니는 대야에 담긴 개를 보고 안타까워했다. 남숙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 안타까운 사연을 수도국산을 올라가며 동네 사람들에게 알렸다. 형우가 불도그를 묻고 오는 길에 동네 사람 하나가 개를 어디에 묻었는지 물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삶아서 먹으려고 한다고 했다. 쥐약을 먹고 죽어서 사람이 먹으면 위험할 수 있다고 일러주었는데, 그 사람은 개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창자만 걷어내고 먹으면 괜찮다며 위치를 알려달라고 했다. 형우는 자기는 일단 묻었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남숙에게 이 일을 말해주었다. 남숙과 형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그 뒤로 개를 키우지 않았다.

송림1동 181번지 마당에는 화단이 있었다. 시멘트 벽돌 구멍 사이로 채송화가 피어나고, 봉숭아가 자랐다. 봉숭아 꽃잎과 초록 잎사귀, 백반을 함께 빻아 손톱 위에 올린다. 사각형으로 자른 비닐봉지로 손가락을 감싼 뒤에 흰색 실로 돌돌 감아 묶는다.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손톱에 주황색 물이 들어 있다.

마당에서 풀과 꽃잎과 돌멩이로 소꿉놀이를 하던 영이는 땅에서 발견한 콩 벌레(쥐며느리), 지렁이, 달팽이가 신기했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쓰고 집 뒤 호박밭으로 갔다. 달팽이를 잡아 인구의 쌍방울 러닝셔스 종이 상자에 초록색 풀잎과 함께 넣어주었다. 봄에는 개구리알을 플라스틱 반찬통에 담아 오고, 하늘이 높게 떠 있는 가을 날에는 잠자리채를 들고 나가 잠자리를 잡아 왔다. 집에 오자마자 잡아 온 생명들을 마당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두면, 남숙이 다시 자연에 놓아주었다. 영이가 점점 자라며, 동네 고양이를 안아온다거나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가져오는 날들이 많아졌다. 연희는 영이에게 잔소리를 했지만, 남숙은 별 말 없이 거둬 먹였다.

영이는 작은 두 손에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담아 집으로 달려간다.

송림1동 181번지에 새 식구가 생겼다.

 

영이와 송림동 마당의 화분
영이와 송림동 마당의 화분

 

에필로그.

겨울이 되면 남숙은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외출은 일주일에 한두 번, 교회에 가는 일이 전부다. 날이 좀 풀리면 집 근처 평화빌라 앞마당에 파라솔 의자를 깔고 앉는다. 파란색, 빨간색의 플라스틱 의자가 동그랗게 모여 있다. 동네 할머니들이 하나, 둘 모인다. 사람이 점점 늘어날수록 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평화빌라 앞에는 개나리가 있다. 개나리 나무 주위에 패딩에 목도리까지 두른 동네 여자들이 앉아 있다. 아직 바람은 차지만 따뜻한 햇볕을 쬔다. 개나리 노랑이 짙어질수록 평화빌라 앞마당에 모여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동네 여자들은 둘러앉아 달래도 다듬고, 쪽파도 깐다. 산책 삼아 한약방에 걸어가 약재도 얻어 오고, 약 치기 전의 어린 쑥도 캐온다. 부침개를 부쳐 간식으로 요기하고, 가끔은 졸기도 한다. 겨우내 따뜻한 난롯불을 아까워하던 남숙은 이제 봄날의 햇볕도 부지런히 쓰려는 듯, 빨래도 널고, 씨앗도 심는다.

남숙은 바람이 바뀌면 씨앗을 심는다. 일기예보는 보지 않는다. 바람이 바뀌는 걸 그냥 아는 것 같다. 그냥, 아는 거. 상추 씨앗도 왕창 뿌려서 야들야들하고 여린 상추를 솎아 먹는다. 부드럽고 순한 상추의 맛. 상추 맛이 다 다른데 그걸 안다. 남숙은 씨앗도 안 받는다. 다른 사람들은 키우다가 꽃이 나면 털어서 씨앗도 받고 하던데, 남숙은 안 한다. 그냥 다 뽑아 버린다. 그러고 다른 작물을 심는다. 자신이 가장 맛있게 먹을 때 미련 없이 씨앗을 안 털어버리는 여자.

그런데도 맛의 기억은 또렷해서, 누구네 호박이 맛있었는데 씨앗 받아두었냐고 묻는다. 그럼 바람에 잘 말려 창호지에 담아두었던 씨앗을 가져와 여자들 앞에 내놓는다. 벚꽃과 목련, 개나리에 마음이 홀라당 빼앗겨 있을 때 남숙은 호박 싹을 틔운다.

송림1동 181번지는 재개발로 사라졌지만, 새로 이사 온 집 남숙의 밭은 매년 초록 잎이 부지런히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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