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화된 여성의 일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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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화된 여성의 일상성
  • 박교연
  • 승인 2021.05.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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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현대세계의 일상성』에서 상품화된 여성과 그들의 잃어버린 일상성을 설명한다. “그들은 일상성 속에서 주체인 동시에 일상생활의 희생자이며, 알리바이(아름다움•여성성•유행 등)이고, 알리바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희생자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구매자이고 소비자이며 상품인 동시에 상품의 상징(광고에서의 심한 노출과 미소)이다.”

광고에 의해 조장되는 외모지상주의는 눈썹부터 시작해서 발톱까지 여성신체의 모든 부분을 자기관리란 명목으로 자본화시킨다. 몸뿐이 아니다. 여성의 일상도 상품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일상성은 매대에 올라왔고 여성은 가정의 소비주체로서 기능한다. 각종 가구, 세제, 가전제품의 세세한 기능과 설명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남편과 함께 육아와 가사를 하더라도 좋은 기저귀 브랜드는 무엇인지, 청소기는 어느 브랜드가 좋은 건지, 계란 한판의 적정가격은 얼마인지 아는 건 여성의 몫이다. 매일같이 인터넷 메인 화면에서, 이메일에서, 엘리베이터에 붙은 전단지에서 불필요한 정보가 여성에게 쏟아 내린다. 끊임없이 연쇄되는 광고가 정신을 마모시킨다.

하지만 소비주의의 강제에 고통받으면서도 이걸 인식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자유롭게 숨을 쉬듯이 광고의 홍수에서 자연스레 호흡하고 있다. 물이 혼탁해진지 오래되었는데도 우리를 둘러싼 문제는 지극히 당연한 일상의 부조리가 되어버린다. 모든 건 개인의 ‘자유’란 미명 하에 정당화된다. 그저 광고는 게시됐을 뿐, 선택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라는 허울좋은 말로 여성의 일상성이 강탈당한다.

르페브르는 이를 두고, “사회적 상상의 가장 극명한 예시를 우리는 어떤 영화나 공상과학 소설에서 발견하는 게 아니라 여성 언론에서 발견한다. 원칙적으로 여성 독자를 겨냥하는 주간 잡지들 속에서는 상상과 실재가 중복되어 있다. 여성 독자들은 자기들이 어디에 있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라는 말로 설명한다. 자본주의는 여성의 일상 자체를 끊임없이 상품화하고, 여러 가지 유행을 만들어내며, 소비를 정당화시키는 각종 ‘알리바이’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그리고 이런 환경 속에서 어디까지를 개인의 주체적인 선택이자 자유라 볼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광고의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르페브르는 광고가 우리의 일상성을 침해할 뿐이 아니라, 광고가 불러일으키는 소비적 자아가 우리를 대신한다고 경고한다. “광고는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완성시키고, 행동 속에서 자아를 실현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하는 그러한 소비적 <자아>의 표상이다. 따라서 광고는 물건들의 상상적 존재 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소비적 자아’가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여러 갈래의 유행들이 우리에게 다양성과 선택권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컬러와 디자인을 고르며 우리는 타인과 구별되는 나만의 취향을 확립한다. 광고 마케팅이 나의 욕망과 자아를 불러일으켰다고는 차마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무언가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는 환상에 도취되어 버린다. 자유를 만끽하기에 자신에게 걸린 제한이나 부당한 권력에 대해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예찬한다.

네일컬러를 고르는 동안, 옷과 구두를 맞추는 동안, 화장품을 수집하는 동안 가부장제는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된다. 여성리더가 없고, 경력단절이 빈번하고, 여성폭력이 실존하고, 매일같이 수십 명의 사람이 강간당하고 살해당하지만 나는 쇼핑할 자유를 만끽한다. 소비할 수 있는 동안에는 오롯한 주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 필요 없고 뉴스는 먼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여성 주체가 사라지며 가부장제가 공고해진다. 일상성의 침략은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린다.

자본주의의 거센 침략으로부터 독립하는 길은, 상품화된 여성의 일상성을 되찾는 일은 오로지 반문하고 또 반문하는 것뿐이다. 오늘의 특가 상품을 덜 신경 쓰고, 삶의 중요한 부분에 시간을 더 할애하고, 여성혐오에 목소리를 보태는 것만이 여성의 일상성을 되돌릴 수 있다. 이는 어쩌면 독립운동과 같다. 페미니스트 저술가 브래디 미카코는 『여자들의 테러』에서 이를 잘 보여주는데, 후미코(항일 투쟁), 에밀리 데이비슨(여성 참정권 운동), 마거릿 스키니더(아일랜드 독립투쟁)의 삶을 교차하며 진정한 ‘독립’의 의미를 말한다.

세 사람이 빈부격차, 가부장제, 제국주의와 식민지를 비롯한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을 때, 체제에 잘 적응하는 방식으로 독립이 주어지는 것은 아님을 깨닫는다.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고 누구에게도 통치받아서는 안 된다.” 이 당연한 명제를 위해 세 여성은 체제에 반하는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물론 여성 상품화에 맞서 테러리스트가 되라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결의를 가지고 저항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정신력과 에너지는 한낱 상품에 비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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