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 줍는 노인, 재능기부 예술인 - 사회적경제가 엮어낸 빈곤 노인들의 희망
상태바
박스 줍는 노인, 재능기부 예술인 - 사회적경제가 엮어낸 빈곤 노인들의 희망
  • 송정로 기자
  • 승인 2021.05.18 1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in이 만난 사람]
- 폐박스로 캔버스를 만드는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
17일 페이퍼 캔버스 작업 중인 러블리페이버 노인직원들

 

2018년 ‘폐지 파동’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20원(1㎏당)하던 폐지 가격이 이해 3월 30원까지 뚝 떨어졌다. 이 파동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이들은 박스 줍는 노인들이었다.

이 때 이 노인들을 위해 폐지 값을 6~10배까지 올려 구매하고, 이 폐지(박스)를 업사이클링하여 캔버스 화폭을 탄생시킨 사회적기업이 있었다. 인천 부평구 동수역 근처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러블리페이퍼다.

사회적기업이 사회적 문제 해결을 모토로 하고, 요즘 캠페인이 한창인 ‘바이 소셜’이 '가치있는 소비로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일'이라면, 러블리페이퍼는 빈곤노인 해결과 자원재생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실행하고 있는 착한 기업임에 틀림 없다.

러블리페이퍼는 요즘 폐지 수집 노인의 폐박스를 1㎏에 3백원에 구매하고 있다. 현 시세의 6배다. 지금은 6명의 지역 노인으로부터 구매하고 있다. 그리고 이 폐박스를 자르고 붙혀 캔버스를 만드는 노인 3명과 중년 2명의 일자리도 만들어 냈다.

러블리페이퍼는 캔버스를 그림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데 전국에서 300명 예술가들이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회화, 켈리그래프, 일러스트, 민화 등 다양하다. 그리고 이 작품의 판매 수익금 일부는 다시 폐지 수입 노인들의 생계 및 안전용품, 여가활동을 위해 지원된다.

러블리페이퍼 기우진 대표(40)는 2011년 동수역 인근 대안학교(푸름꿈비전스쿨) 교사로 활동하다 2013년 사회적경제 아카데미를 들으며 ‘사회적경제’에 입문했다. 사회적 문제 찾아보고비지니스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다 박스 줍는 노인의 문제에 주목했다.

“출근길에 한 노인이 리어카도 없이 폐박스를 머리에 이고, 몸에 동여매고 오르막 아스파트 길을 오르는 모습을 보고 문득 심각해졌어요. 왜 이 어르신들이 박스를 주워야 하나, 이 사회구조는 뭐냐, 하고요”

그는 이 사회 시스템을 바꿀 무언가를 해야 겠다는 결심을 굳게 하고 자신의 대안학교 학생과 지역 청년들과 함께 ‘종이나눔 운동본부’를 결성했다. 봉사단체였다. 그리고 주변에서 폐지와 박스를 기부받고 고물상에 팔아 노인들을 도왔다. 연말에 인천 전역의 학교를 돌면서 버리는 교과서, 문제집을 기증받았는데, 학교마다 5~6톤에 이를 만큼 물량이 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014년부터 폐지 가격이 계속 떨어져온 것이다. 도무지 폐지 수거에 효용성이 없었다. 사회적 경제로 나아가려면 비즈니스 모델이 그려지고 어르신들의 안정적 일자리가 나와야 하는데... 고민하는 순간, 러블리페이퍼 프로젝트 –예술가의 재능기부를 통한 폐박스 캔버스 그림 판매 사업- 이 떠올랐다. 2016년 1월,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대학생들과 대안학교 빈교실에서 창안해낸 것이었다.

러블리페이퍼는 2017년 5월 법인을 설립하고, 2018년 2월 예비사회적기업이 됐고, 2020년 5월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았다.

17일 기우진 대표와 만나 폐박스의 자원순환, 노인 일자리, 사회적경제 등에 대해 일문일답했다.

 

러블리페이퍼 기우진 대표

 

- 폐박스로 어떻게 캔버스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것인가.

폐박스를 사이즈에 맞춰 자르고 3겹으로 붙여 일정한 높이를 유지한다. 그리고 헝겊을 붙이고 페인트 칠하고, 건조시킨 후 사포질로 다듬는다. 이 캔버스를 다양한 재능을 가진 작가들에게 택배로 보내면 그림을 그려 다시 택배로 보내오는 과정을 거친다. 명화를 프린팅한 작품도 있다. 재능기부 작가 300여명이 연 2회에 걸쳐 각 4개의 작품 보내주니까 연 2천~2천4백개의 페이퍼 캔버스 아트가 탄생하는 것이다. 2016년 처음 SNS를 통해 재능기부 작가의 도움을 요청했는데, 4시간만에 150명이 호응해 놀랐다.

주력 제품은 1호(16 x 23㎝) 사이즈고 3호(A3용지 크기) 크기 까지 만든다. 딴딴해서 내구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

일반 온라인 스토어와 정기구매자(VIP회원)를 통해 판매한다. 월 1만원 회원에게는 연 4개의 제품을, 2만원 회원은 8개, 3만원 회원에게는 12개를 무료로 배송해 준다.

 

- 키트 사업도 있는데.

캔버스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는 키트(DIY KIT) 판매 및 교육사업도 있다. 사회공헌 사업으로 기업 임직원들에게 키트를 판매하면 이들이 직접 조립, 페인팅하여 캔버스를 우리에게 건네주는 봉사활동이다. 현재 15개 기업에서 35회에 걸쳐 4천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활동을 하는데, 결과적으로 페이퍼 캔버스를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이들 기업에서 붓과 물감 등 미술도구를 더해 아동센터에 기증해 친환경 교육활동을 하기도 했다. 아동센터에서는 택배기사 응원하는 그림을 그려 보내기도 한다.

학교를 통해 교육사업으로도 캔버스를 전달한다. 최근 인천이 자원순환도시로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데 초,중,고교 특별활동 시간에 환경 및 진로체험 교육을 전개하고 있다. 이때는 캔버스 천을 서울 호텔에서 버리는 침구나 베게를 기증받는데, 이를 활용함으로 자원재생을 통한 환경 의식을 일깨우고 있다. 미니 사이즈로 아이들 교육용 컨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올해 계약된 캔버스는 5,900여개인데 부평지역 50여개 학교가 참여했다.

- 빈곤 노인 들을 위한 사업은

수익금 일부를 생계지원(쌀, 생필품)과 안전지원(미세먼지 마스크, 안전쪼끼, 안전화, 방한복)과 함께 나들이 여행이나 영화관람 등 여가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폐지 줍는 어르신을 포함해 20여명의 어르신들이 참여하고 있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혼자 일을 한다. 소외되고 외로운 분들이 많으며, 이 분들의 정서활동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이들의 정서활동 만족도는 높다.

 

-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기업의 역할이 중요한데, 우리는 정체돼 있다는 지적이 있다

과거 IMF와 대량실업 쇼크를 배경으로 시작된 우리 사회적기업의 태생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 당시 실업극복, 일자리 만들기는 물론 중요한 사회문제였다. 그러나 이를 위한 정책적 차원에서 요양업무나 청소용역 등 자활기업 중심으로 사회적기업이 설립되고, 일자리 만들기에 급급했던 측면이 있다. 당시 그 만큼 수요가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사회적 기업들이 시간이 지나며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담아낼 그릇이 되어야 했는데, 정책 등 기본내용들은 여전이 일자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후발 사회적기업들의 트랜드에 대한 해석이나 정책적 지원들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에반해 요즘 사회적기업이 아니면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벤처’들에 대해서는 주목할 만하다. 우리 사회적 경제의 새로운 트랜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방에서는 소셜벤처가 분산돼있고 미미하지만, 서울 성수동은 소셜벤처의 성지로 불릴 만큼 결집돼있다. 마리몬드라는 소셜벤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시작한 곳이지만 누구보다도 사회적 가치 잘 해결하고 있고 상품성도 상당하다.

또한 최근 기존 대기업에서의 표방하는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도 변화하는 기업의 트랜드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기업 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 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기업들이 스스로 이를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