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호의 침탈을 막자 - 향촌 자치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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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호의 침탈을 막자 - 향촌 자치조직
  • 원재연
  • 승인 2021.07.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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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르는 소남 윤동규}
(15) 성호의 실용적 직업관과 소남 - 원재연 박사 / 인천학연구원
[인천in]은 잊혀진 인천의 실학자 소남 윤동규의 삶과 업적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특집기사를 기획해 격주로 연재합니다. 특집 기획기사는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원재연 박사, 허경진 연세대 명예교수, 송성섭 박사(동양철학) 3분이 집필합니다.

 

성호가 전결(田結, 田地)의 균분, 양역의 공평과 함께 서민들의 살림공동체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본 또 한 가지 필수조건은 토호들이 양민인 소농을 예속민(노비)으로 삼는 것을 방지하는 향촌 자치조직의 결성이었다. 성호는 세금의 과도한 수탈, 탐관오리 횡행, 수재나 한재의 유행 등을 수수방관하는 것이야말로 위정자와 지식인의 병폐라고 규정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적극적으로 구휼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앞서 소남이 주장했던 바, ‘불휼(不恤)’의 처벌도 이와 같은 성호의 가르침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성호는 이렇게 말한다. 어린아이가 위태로운 때를 당하면 그의 부모로서는 아이를 구하기에 급급하여 어떠한 수단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반드시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 가만히 앉아 죽는 것을 지켜보지는 않는다. 지금 시기가 백성이 한창 고난에 빠져서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보다 더 위태로운 형편인데,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방법이 없다고 핑계를 대고 모른 체하니 어찌 옳다고 하겠는가? 정치하는 데 있어 세금을 각박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닭이 돌멩이를 맞아 상해도 볼보지 않는 것과 같고, 탐관오리를 징계하지 않는 것은 쥐나 너구리가 닭을 마음대로 잡아먹게 내버려 두는 것과 같다. 또한 수재나 한재에도 백성을 구휼하지 않는 것은 사료를 아껴서 모이를 주지 않는 것과 같다. 어찌 방법이 없다고 하겠는가?

이처럼 성호는 곤경에서 백성을 구휼하는 것은 임금이 적자(赤子, 갓난아기)인 그의 백성을 돌보는 것처럼, 양계하는 사람이 닭을 돌보듯, 당연히 해야 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임금이 전국 곳곳의 토호들을 모두 제어할 수 없으므로 수시로 암행어사를 파견하고 또 감사와 수령을 통해서 토호들과 이서들의 횡포를 제어하게 하더라도 여전히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고자, 즉 토호들이 소민들을 침탈하지 못하도록 향촌 자치조직을 수립할 것을 주장했다.

부모와 그 자녀를 구성원으로 한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인 가족(가호)을 보호할 조직으로서 5가(家)에 1명의 ‘인장(隣長)’을, 5린에 1명의 이장(里長)을, 5리에 1명이 당장(黨長)을 둘 것을 제안했다. 이때 인장, 이장, 당장은 모두 강직하고 근면 성실한 사람으로 임명하되, 최소한의 지위를 갖추고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이들 자치조직의 장들과 그들의 복호(復戶, 세금을 면해주는 가호로서 일종의 협조자)에게는 세금과 부역의 의무를 면해주자는 것이었다. 즉 인장에게는 1명의 복호를, 이장에게는 2명의 복호를, 당장에게는 3명의 복호를 두게 된다면, 1당(=125가호)에서 모두 38가구의 복호만 제외하고 나머지 87가호가 세금과 부역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게 하면서, 토호 등에 의한 일체의 소민 침탈을 방지할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이러한 인, 리, 당 등의 향촌 자치조직은 곧 세금의 탈루와 양역의 침탈을 방지하려는 것을 그 목적으로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호는 이에 더하여 조선 후기 전정(토지소유)의 불균형, 군정(양역)의 피폐와 함께 백성을 괴롭히던 삼정의 하나였던 환곡(還穀)의 폐단을 직시했다. 진휼(賑恤)을 위한 값싼(=부담이 적은) 대여(貸與)를 그 본래의 취지로 하는 환곡이었으나, 조선후기에 와서 환곡은 수령과 아전들이 개인의 재산을 증식시키기 위해 백성을 등골을 빼먹는 무서운 고리대(高利貸)로 변모한지 오래되었다. 이에 성호는 반계의 제안을 이어받아 고리대로 변한 환곡을 폐지하고 물가조절 기능을 갖춘 상평창 제도를 부활시키자고 했다. 19세기 중반에야 대원군에 의해 시행되는 사창제도(社倉制度)는 그 운영의 주체가 관가가 아닌 향촌자치 조직이었고 관리나 아전들에 의한 중간수탈을 방지한 점에서 반계와 성호가 제창한 환정(還政) 개혁의 취지에 부합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성호 이익의 묘
성호 이익의 묘

성호는 또한 군정의 개혁(탈루방지)을 위해서 앞서 언급한 인, 리, 당의 조직과는 별도로 5가(家)에 1비장(比長)을, 25가에 1여서(閭胥)를, 100가에 1족사(族師)를, 500가에 1당정(黨正)을 두는 군사자치 조직을 구상했다. 이때 비장, 여서, 족사, 당정은 수령이 감시하고 다시 감사는 수령 이하 자치단체장을 감시하고 경조(京兆)가 감사를 통괄함으로써 자치 군사조직을 정식 행정체제에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만약 이렇게 하는 데도 여전히 가호의 탈루(脫漏)가 발생하여 10인 이상이 탈루하면 수령을 처벌하고 100인 이상이 탈루하면 감사를 처벌한다는 체제도 마련했다. 그리고 비, 여, 족, 당 등 향촌자치 조직과 수령, 감사는 태(笞), 장(杖), 속(贖), 배(配) 등의 자체 형벌을 실시함으로써 군대의 정수(편액)도 넉넉히 맞추고 향리가 편안해지며, 도둑의 근심도 아울러 제거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성호는 근검, 절약을 위해 사치풍조(奢侈風潮)를 강력하게 배격하고 특히 부유한 사대부가에서 행하는 관혼상제의 예식인 주자가례(朱子家禮)의 형식을 대폭 축소한 서민을 위한 가례, 곧 서인가례(庶人家禮)를 만들어서 먼저 그 자신의 가정에서 상례, 혼례 때에 몸소 실천하는 모범을 보였다. 또한 사농합일(士農合一)을 내세워, 벼슬하지 않는 선비는 직접 농사를 지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해결함으로써 놀고먹는 유식자(遊食者)들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도 몸소 농사를 지어 가계를 꾸렸다.

한편 ‘효도(孝道)’라는 가족윤리를 향촌에서 ‘경장(敬長)’이라는 사회윤리로 확장해 나가기 위하여 ‘향음주례(鄕飮酒禮)’를 실시할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국가에서 그 비용을 대주고 사대부들은 그 예식을 시대상황에 맞게 간략하게 고쳐나갈 것을 제안했다. 성호는 송나라 장재(張載)가 운암(雲巖) 현령 재직 때에 실시했던 ‘향음주례’의 취지를 따라서, 단순히 향촌내 위계질서를 확립하는 차원이 아니라, 민(民)의 질고(疾苦)를 묻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주는 관민소통(官民疏通)의 적극적인 계기로 향음주례를 활용할 것을 수령들에게 권고했다.

그렇다면 관민이 소통하여 백성의 질고를 해결하고, 향촌사회 구성원이 상부상조하여 호혜적(互惠的) 상생적(相生的)인 관계 속에서 ‘살림공동체’를 유지, 발전시켜나가기 위해서, 성호는 어떠한 대안을 제시했을까? 이는 곧 공동체 유지와 발전의 관건이 되는 인재 양성의 문제이다. 성호는 ‘위학치생(爲學治生)’의 방법으로 인재를 양성할 것을 제안했다. 곧 학문을 하려는 사람은 먼저 집안 살림을 잘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성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보니, 요즘 세상의 훌륭한 선비들이 혹은 한결같이 문학에만 뜻을 두고 집안 살림살이를 등한히 해서 어떻게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리하여 조상을 받들고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여 아내와 자식들이 함께 헐벗고 굶주리게 되어 학문하려는 의지마저 변하게 된다. 이렇게 된 후에야 비로소 후회하지만 이미 미칠 수 없다.”

이러한 어리석은 선비들의 태도를 깨우치기 위해 허형(許衡)의 발언도 인용한다.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는 살림을 잘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가 된다. 생활이 어려워지면 학문을 하는 길에 방해가 된다. 선비는 마땅히 농사로 생활대책을 삼아야 하며, 장사는 비록 말리(末利, 말단의 이익)를 쫓는 것처럼 보여도 과연 의리를 잃지 않게 처한다면 또한 나쁠 것이 없다.” 성호 이익의 이같이 실용적 직업관과 이에 바탕을 둔 학문관 내지 인재양성의 대책은 그의 제자 소남 윤동규의 삶과 학문, 그리고 공동체 인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소남 유집초 전질
소남 유집초 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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