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대연동 유엔공원 정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헌병에게 목례를 하고 공원으로 들어선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거의 50여 년 만에 다시 와 본다. 명칭은 ‘유엔묘지’가 ‘유엔공원’으로 바뀌었고 위령탑과 조형물이 생겼다. 전몰 용사들은 예전 그 자리에 잠들어 있다. 잔디밭에는 잡초 하나 보이지 않는다. 나무들도 잘 다듬어져 깔끔한 모습이다.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딸과 함께 유엔기를 비롯한 참전 국가들의 국기가 휘날리고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터키, 그리스, 태국, 필리핀, 아프리카에 있는 남아공과 에디오피아 국기와 남미에 콜롬비아 국기까지 우리나라 태극기와 함께 펄럭인다. 유엔기도 같이 펄럭이고 있다. 부자나라도 있지만 지금도 가난에 허덕이는 나라도 있다. 대한민국은 그 나라의 젊은 목숨들에게 빚을 졌다. 참으로 미안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2차 세계대전 직후 공산진영과 자유진영 간의 이념대립에서 우리나라의 위치는 그들에게 있어서 어느 진영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요충지였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전쟁터가 되어 참혹한 한국전쟁을 치루었다.
이곳은 불가침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성지로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 장병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곳이다,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로 총면적은 133,701m²이다. 이곳은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 소유로 되어있다. 근대문화유산등록 제395호이기도 하다.
1951년에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해 유엔군 사령부가 이곳에 묘지를 조성했으며 4월에 묘지가 완공됨에 따라 개성, 인천, 대구, 밀양, 마산 등지에 가매장 되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가 안장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영국 885명, 터키 462명, 캐나다 378명. 호주 281명, 네덜란드 117명, 프랑스 44명, 뉴질랜드 34명, 남아공 11명 노르웨이 1명 대한민국 36명. 미국 36명, 무명용사 4명 총 2,289명의 군인과 11명의 비전투 요원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1955년 11월에 대한민국 국회가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하고 아울러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결의했다. 1978년에 세워진 유엔군위령탑은 공원 녹지지역 한가운데 위치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엔군 위령탑’이라는 친필 휘호가 새겨져 있다. 6.25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유엔군의 희생을 기리능 동시에 한국과 유엔군, 참전 국가들의 우호 관계 증진에도 일익을 담당한다. 위령탑 벽면에는 나라별 지원 내역과 전사자 숫자가 한글과 각국의 글로 동판에 새겨져 일렬로 붙어있다. 위령탑에는 위에서 들어서는 좌우 바닥에는 대통령이 다녀간 기념비가 새겨져 있다.
한국전쟁 중(1950. 6. 25~1953. 7. 27.) 전사한 유엔군 장병들은 4만 895명(실종자포함)이다. 화강석 벽면은 앞뒤를 볼 수 있는 벽면과 한쪽만 볼 수 있는 벽 사이에 공간이 넓으며 조형물은 약간의 곡선을 하고 있다. 그 화강석에 전몰장병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나는 그 이름들 위로 손을 얹고 천천히 지나간다. 70여 년 전 그 이름도 생소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젊은 그들은 세계 평화유지군이라는 미명하에 자유를 지키겠노라고 목숨을 바치고 떠났다. 부모들에게는 멋지고 잘 났던 그 아들들이 꽃봉오리 같은 청춘을 이 나라 이 땅에 산화시켰다. 그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함을 가슴에 새긴다.
알파벳 순서로 국가별 개인별로 새겨져 공원묘역에 안장된 전몰자는 이름 뒤에 ◇라고 표시되어 있다. 안쪽은 우주를 뜻하는 원형 수반이 있는데 거기에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다. 그들의 명예와 희생이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뜻과 전몰장병들의 영혼에 대한 추모의 의미가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피어있다.
‘도은트 수로 (Daunt Waterway)’란 명칭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전사자 중 최연소자인 호주병사 james Patrick Daunt의 성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는 당시 17세로 1951년 11월 6일 전사했다고 한다. 아! james Patrick이여! 그대 부모님이 얼마나 슬퍼 하셨을까? 시간이 흐른 뒤 지금 여기의 나도 이리 슬픈데…….
이끼 하나 없는 깨끗한 대리석 바닥에 맑을 물이 흐르고 있는 이 도은트 수로는 묘역과 녹지지역의 경계에 있다. 삶(녹지)과 죽음(묘역) 사이 경계에서 신성함을 함축하고 있는 이 지역에서 나는 숙연함으로 고개를 숙인다.
살아서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 목숨을 잃은 영혼들이지만 그들이 잠든 이곳은 철 따라 갖가지 꽃이 피어나고 평화로운 곳에서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지켜주고 있다.
대통령은 추모식에서 참전 용사들이 더욱 자랑스러워하는 나라를 만들어 갈 것 이라고 말했다. 이곳에 잠든 영혼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인가? 우리나라가 자유 진영으로 영원히 존재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전몰장병 영령들이여! 부디 이곳에서 안정을 취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