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소통의 끈이 되어준, 나의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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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소통의 끈이 되어준, 나의 외손자
  • 안태엽
  • 승인 2021.06.11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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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안태엽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나는 한 때 외도를 하여 한 집안의 가장으로 하면 안 될 커다란 실수를 하였다. 그 때 아내와 자식들과의 갈등이 최고조로 심화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사회적으로 하고 있던 일들을 모두 내려놓고 있던 상태였다. 가족들은 아빠에 대한 실망감으로 나를 외면하고 있었기에 나는 내 집의 이방인처럼 살고 있었다.

그 때는 황량한 벌판에 외롭게 혼자 서있는 것 같았다. 죄의식이 드는 한편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고단한 삶을 살아온 아빠에게 남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가족들에 나 역시 실망한 나머지 더 이상 삶 자체를 연장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들과의 대화를 하고자 할 때마다 막다른 길이 나왔고 나의 외침에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오히려 나에게 크나큰 상처가 되었고 어느 누구도 나를 회복시키지 못할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가운데 외손자가 태어났다. 만물 중에 가장 귀한 것이 생명인데 그 신비롭고 경이로움을 외손자를 보며 나 또한 실감하게 되었다. 부모들은 고슴도치 부모라고 한다. 손자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고슴도치로 만들었다.

내가 20대에 본 영화 중 아직도 나의 뇌리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건 ‘대부’라는 영화다. 미국 마피아 깽 조직 보스인 대부는 손에 피를 묻히며 유혈이 낭자한 마피아의 전쟁에서 잔인한 살인과 폭력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집에 돌아오면 평화롭고 자상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 무시무시한 깽 조직의 보스가 정원에서 손자와 평화롭게 놀아주는 모습이 기묘하게 인상에 남았다.

막상 금방 태어난 손자를 보니 나는 ‘좋은 할아버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식하고 똑똑한 할아버지 말고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할아버지. 궂은 일이 생기면 대화를 통해 해결해 주고 챙겨주는 따뜻한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손자의 얼굴을 보면 나의 부모와 우리 부부를 한 움큼 정도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엉겅퀴처럼 얽힌 내 마음이 조금 풀어지는 것 같았다. 낙엽이 다 떨어진 나무에 초록 기운이 맴도는 것 같았다. 방금 나온 어린 싹이 꽃을 피워 푸른빛을 비추며 환하게 웃어주는 것 같았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나에게 어느 날 옹알이를 하며 반응을 보이는 외손자는 실타래에 얽힌 내 마음에 샘물을 퍼 올리는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했다. 소통에 목말라있던 나에게 생수처럼 손자의 맑은 기운이 쏟아졌다.

그 뒤로 가족들은 매일 모이며 손주의 움직임과 미소에 웃음꽃을 피웠고 손자는 모두를 사랑의 끈으로 묶어 놓았다. 작은 표현 하나하나가 우리들에게 기쁨을 주었고 어린 생명이 아빠와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이모라는 새로운 호칭을 가족 모두에게 만들어 주었다. 외손자의 가족은 처갓집에 자주 들렀다. 그 덕에 아내는 사위와 손주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데 여념이 없었고 덤으로 나 또한 손주와 놀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분수에 넘치는 호사를 누리며 살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나의 상처는 조금씩 나아졌고 가족에 대한 애통함이 사랑으로 바뀌는 것도 모른 채 다시 우애 넘치는 가족이 되어 있었다.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보석 같은 나의 외손자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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