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와 전쟁, 인내·희생·나눔의 자수성가 - 한국 부모의 '토착심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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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와 전쟁, 인내·희생·나눔의 자수성가 - 한국 부모의 '토착심리'가 되다
  • 허회숙
  • 승인 2021.06.2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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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허회숙 / 전 인하대 초빙교수
- 박영신 교수의 북 콘서트 ‘토착적 부모자녀 관계에 대한 탐구’를 보고

인하대 박영신 교수님이 6월 26일 한국교육학회 연차학술대회에서 ‘한국인 토착적 부모자녀관계에 대한 탐구: 사례와 경험과학적 연구결과의 만남’을 주제로 북콘서트를 하셨다. 

비대면 화상 강연으로 9시부터 시작된다고 하여 어제 백신 2차 접종 후 약간 무기력해지는 몸 상태를 살피며 컴퓨터를 켠다. 인하대 교육심리 박사팀 식구들이 속속 입장하는데 마치 이산가족이 만난 양 반갑다. 얼싸안고 등을 두드리며 반가움을 표하고 싶은 심정을 화면 속에서 손을 흔드는 것으로 대신한다. 

박 교수님은 정년을 앞두고 40년 학문적 발자취와 성과를 총 정리하는 심정으로 이번 한국교육학회 북콘서트를 준비했다고 말머리를 여신다. ‘나는 조선 사람이니 조선 시를 쓰겠다’고 하신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이신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에 큰 감명을 받으셨다고  한다. 또한 인생의 큰 스승이셨던 아버지의 삶의 모습이 모델이 되어 한국 고유의 토착심리를 40년 동안 천착해 오시게 되었다고 한다. 

맨 몸으로 이북에서 피난 나와 오로지 인내와 희생, 나눔 정신으로 일가를 이룬 아버지. 명예나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돈도 많지 않은 소시민으로서 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모습을 통해 한국 부모들의 원형을 찾아내고 서양이 아닌, 한국의 위대한 토착심리 탐구로 발전시켜 오신 것이다. 

박 교수님은 40여년 동안 수많은 논문과 30여권의 학술저서를 출간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인의 행복과 삶의질』(2014), 『한국인의 스트레스』(2016)는 대한민국학술원의 우수학술도서로 수상하기도 했다. 

 ‘유태인에게 ‘탈무드’가 있듯이 우리나라에도 우리의 고유한 얼과 정신을 자손에게 대대로 들려주는 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같은 생각으로 교수님이 발간한 첫 대중서적이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2013, 정신세계사)이다. 이 책은 ‘아버지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가식을 덧붙이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p5 책을 내며) 써내려간 것이다. 

2015년에는 중국어판으로, 2018년에는 영문판(『Stories my father told me: A Korean father’s wisdom for his child』)으로 출간되어 세계 최대의 온라인서점 ‘아마존’에도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문판은  2019년 독일 라히프치히 도서전(3월 21일-24일)의 한국관에 출품돼 전시되었다. 현재 베트남어로 번역판이 준비 중에 있다. 국내 판은 지금도 소리 없는 스테디셀러가 되고 있다. 

 내가 박영신 교수님과 인연을 맺은 것은 16년 전(2004년)이다. 인하대 교육학과 교육심리 전공 박사과정의 학생으로 입학하면서 부터였다. 교수님은 나보다 12살 아래로 띠 동갑이셨다. 나는 34년간 중등교육자로 살아 정년을 3년 앞 둔 때였다. 상담과 심리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연마하겠다는 마음으로 교수님의 연구실을 찾은 것이었다.

 그 후 오늘 날까지 그 분의 검소와 근면 성실, 절제된 자기관리, 나눔과 선행, 인내와 강인한 의지, 예의와 성의, 효심과 보은, 사회환원, 생명사랑 등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곁에서 뵈면서 전문 지식이 아니라 어느 순간 내 행동이 변해가는 모습을 발견하고 인생의 멘토로 모시게 되었다. 차츰 박 교수님의 언행이 일치하는 삶의 자세가 아버지께서 삶 속에서 행동으로 실천하신 덕목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쟁의 폐허에서 대한민국을 일으킨 바로 그 동력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래 세대로 전수해야 할 한국 사회의 소중한 규범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어린 시절에 나라 잃은 슬픔과 아픔을 겪고, 청·장년기에 닥친 6.25 전쟁으로 부모와 생이별하고 오른 피난길. 맨주먹에 피난살이를 하며 격동의 한국 근대사를 살아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내고 이제 그 굴곡진 인생의 막을 내리는 우리의 바로 윗 세대.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대구로 피난 와 가정을 일구고 북에 두고 온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부모님의 당부대로 꿋꿋이 선(善)을 실천하며 살아온 아버지 박정헌(1914~2010) 옹. 그의 이야기를 후대에게 전하고자 쓴 책이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이다. 오늘의 강연은 바로 그 책의 정신이 어떻게 박 교수님의 40년 학문 연구에 녹아 들어가 한국인의 토착심리로 검증되고 성과를 내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짚어나가는 것이었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박교수님의 강연은 10시 30분까지 이어졌다. 특유의 진심과 열정이 파도처럼 청중에게 밀려들어 깊은 공감과 감동의 전율을 일으킨다. 때때로 격정에 목이 메이기도 하시면 듣는 이들도 함께 울컥하는 동안 어느새 북 콘서트 시간이 끝난다. 

몰입과 감동의 시간이 끝나고 대학의 교수님들 몇 분의 감상과 질문이 있은 후 우리 제자들 차례가 되었다. 사회자가 우리 팀의 특이한 제자이신 K 회장을 지명한다. K 회장은 박교수님의 석사 과정 제자일 뿐 박사 과정은 밟지 않으셨다. 그러나 박 교수님의 삶과 학문적 열정에 감화된 그 분은 그 정신을 회사 경영에 실천해 가신다. 세월이 흐르면서 K 회장은 우리 팀에서 박 교수님의 가장 큰 사랑과 신임을 받는 수제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박교수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부모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말문을 연 K 회장이 한국교육학회에 건의한다. 

 “이 강의는 일회성으로 저희만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녹화 본이 있으시면 저희들에게 공유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 가족과 회사의 모든 직원들과 함께 다시 듣고 싶습니다” 

 박영신 교수님의 이번 북 콘서트는 이제까지 한국인의 토착심리 연구결과를 집대성한 것이었다. 또한 앞으로 한국토착심리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고 그 중요성을 일깨워준 것이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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