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쌀 눈에는 좁쌀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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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 눈에는 좁쌀만 보인다
  • 최원영
  • 승인 2021.06.2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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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6화

 

화내는 사람에게 화를 낸 까닭을 물으면 이유가 모두 그럴듯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예컨대 운전하고 있는데 앞차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을 그려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거칠게 분노하면서 언성을 높이지만, 어떤 사람은 사고가 나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하다며 무덤덤하게 넘깁니다.

그렇다면 신호도 주지 않고 끼어들기를 한 앞차가 분노의 원인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무덤덤하게 넘어가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일까요? 만약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그것을 잘 조절하기만 하면 분노에서 벗어나 평온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어디에 있든 행복하라》(김원각)에 〈백유경〉에 나오는 우화가 있습니다.

연못가에 가니 물속에 황금 덩어리가 보였다. 그는 물속에 들어가 진흙을 헤치고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물 밖으로 나왔다. 물이 맑아지자 다시 보였다. 다시 뛰어들어 찾지만 역시 찾지 못했다.

이렇게 하루를 보냈다. 이제 지쳐서 더 이상 물에 뛰어들 수가 없었다. 이때 아버지가 그를 찾아 나섰다가 연못가에 지쳐 쓰러진 그를 보고 물었다.

“무엇을 하다가 이렇게 지쳤느냐?”

“물속에 금덩이가 있기에 들어가 찾으려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이렇게 지쳤습니다.”

아버지가 물속을 들여다보니 과연 그게 보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이 물에 비친 것임을 알았다.

“저 나무 위를 보아라. 저 금덩이는 큰 독수리가 물고 가다가 나무 위에 떨어뜨린 걸 거야.” 그들은 나무 위의 황금 덩어리를 가지고 집으로 갔다.

황금 덩어리는 누구나 원하는 값비싼 물질입니다. 그렇다면 우화 속에서 말하는 황금 덩어리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모두가 원하는 것, 즉 권력이나 재물, 그리고 명예나 학식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물에 비친 황금 덩어리가 가짜라면,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권력이나 재물, 명예 역시 가짜 삶일 겁니다. 나무 위에 걸린 진짜 황금은 어쩌면 나다운 나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 또는 나의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삶을 의미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가짜 황금 덩어리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릅니다. 참으로 허망한 일입니다.

《물속의 물고기도 목이 마르다》(최운규)에 소설가 이외수 님의 말이 나옵니다.

“동물은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고, 인간은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희생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 그대가 만약 동물적 사랑에 성공하고 싶다면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만약 인간적인 사랑에 성공하고 싶다면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라.”

그렇습니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하려면 어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지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내 마음속 방에 있는 욕심을 버려라. 좁쌀 눈에는 모든 게 좁쌀로 보인다. 그러니 먼저 당신의 마음을 키워라.”

마음을 키우라는 말은 마음을 비우라는 말과 같습니다. 비워져야 누군가가 그곳에 담길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 희생을 기꺼이 한다는 것은 곧 그 누군가를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런 사랑을 하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런 사랑을 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마음속에서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기준을 조금만 바꾸면 됩니다. 때로는 그 기준을 내려놓을 필요도 있습니다. 기준을 바꾸거나 내려놓는 방법 중에 ‘거꾸로 보기’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믿고 있던 것을 잠시 묻어두고 상황을 전혀 달리 바라보는 것입니다.

《CEO, 책에서 성공을 훔치다》(최종옥)에 나오는 GM의 성공담에서 거꾸로 보기가 얼마나 큰 변화와 성장을 일구어내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포드 T-카가 시장을 석권하자, 이에 밀려난 자동차 회사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일부는 합병을 통해 생존의 길을 모색했다. 그중 하나가 GM이다.

GM은 8개의 영세 자동차 회사가 합병한 기업이다. 어설픈 연합이란 말이 옳다. 포드가 골리앗이라면 GM은 소년 다윗이었다.

GM은 살아갈 길을 모색했다. 포드를 엇비슷하게 모방하자는 의견과 도저히 게임이 안 되니

오히려 그 반대로 나가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반대로 나가자는 것은 대량생산으로 쏟아져 나오는 저가의 T-카를 따를 재간이 없으니, 오히려 중산층을 겨냥해 다양한 모델을 비싼 고급 차로 자리매김하자는 것이었다.

결론은 후자로 났다. 처음 T-카가 나왔을 때 미국인들이 환영했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이들은 그때까지 차를 갖지 못한 근로자들이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프리미엄을 누리던 부유층의 불만이 커졌다. 사장과 중역들이 출퇴근할 때 같은 차를 타고 말단직원들과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들은 하나둘 다양한 디자인과 고급풍의 GM으로 돌아섰다.

1930년대가 되자 미국 자동차 시장의 무게중심은 GM으로 기울었다. GM은 시보레, 폰티악, 뷰익, 올즈모빌, 캐딜락 등 다양한 가격대와 다양한 디자인, 그리고 다양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전체 자동차 시장의 57%를 차지했다.”

“선두자리를 내준 후로도 포드는 한동안 T-카를 고집했다. 고집했다기보다는 이미 대량생산체제로 굳어진 몸집이어서 쉽게 변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1937년엔 GM이 42%, 포드가 21%, 그리고 크라이슬러가 25%의 점유율을 보였다.”

시장을 독점하면 성공한 것으로 여기지만 조직문화는 안이함과 교만으로 휩싸여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무너지는 이유는 지금처럼만 해도 늘 승자라는 왜곡된 믿음 때문이고, 이로 인해 새로운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꾸로 생각해서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과거에 형성된 기준만으로 세상을 판단합니다. 모든 것을 ‘선’과 ‘악’, ‘옳음’과 ‘틀림’으로 나누어 버립니다. 그리고 스스로 ‘악’과 ‘틀림’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틀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해 성장이 멈춥니다. 아니, 오히려 퇴보하고 맙니다.

오늘 우리는 “좁쌀 눈에는 좁쌀만 보인다”라는 제목으로,

권력이나 재물과 같은 가짜 황금 덩어리를 찾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봤고,

남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사랑이 가장 인간적인 사랑이라는 점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속 기준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 좁쌀 눈에는 좁쌀만 보이는지, 이제 그 이유를 알 듯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내 기준을 내려놓을 때 새로운 세상을 보고, 그를 통해 끊임없이 배워나가면서 결국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삶의 주인공이 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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