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로마에서 유대인들이 추방되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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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로마에서 유대인들이 추방되지 않은 이유
  • 최원영
  • 승인 2021.07.1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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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8화

 

지난 몇 차례 영상을 통해 자기 합리화의 오류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런 오류를 앤소니 드 멜로의 《엉뚱한 수다》에 나오는 두 가지 사례들을 통해 확인해보겠습니다. 이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한 변곡점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우화입니다.

평생 우물 밖으로 나오지 않은 개구리가 있었다.

어느 날, 다른 개구리가 자기 우물에 와 있는 걸 보고 물었다.

“어디서 왔니?”

“바다에서 왔어. 거기가 내 집이야.”

“바다? 어떻게 생겼니? 이곳만큼 커?”

“비교도 안 돼.”

우물 안 개구리는 그가 말하는 바다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여겼다.

‘이렇게 뻔뻔한 거짓말쟁이는 내 평생 처음이야.’

바다를 모르는 개구리는 바다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거짓말쟁이로 여길 수밖에 없을 겁니다. 또한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단정 지어야 마음이 편해질 겁입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도 자주 일어납니다.

상대방이 미소를 지으면 ‘나에게 관심을 보이네.’라고 여기기도 하지만 그 미소를 비웃음으로 여기고는 ‘나를 우습게 보네.’라며 불쾌해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밥값을 내지 않으면 ‘쟤는 늘 그래. 깍쟁이야.’라고 불평하기도 하고, ‘쟤가 요즘 형편이 어려운가 봐.’라고 측은하게 여길 때도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의 선택이 정당하다고 스스로 믿을 수 있어야 온전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자신이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나름대로 찾아야만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기 합리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중세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을 무척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로마에 거주할 수 있었는데, 책에 따르면 그 이유가 참으로 어처구니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이 다름 아닌 로마 교황이었다고 하니 더더욱 호기심이 났습니다. 이 이야기가 역사적인 사실이냐 아니냐는 논쟁에서 벗어나 이 이야기를 통해 자기 합리화가 그때그때의 상황을 얼마나 왜곡시키는지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중세시대, 교황은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기 위해 추방령을 공포했다. 유대인들은 재고해줄 것을 간청했다. 교황은 도박과도 같은 제안을 하나 했다.

교황 자신과 무언(無言)으로 성경 이론에 대해 논쟁할 한 사람을 선정하라는 것이다. 그 논쟁에서 이기면 유대인을 로마에 계속 머물게 하겠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모두 모여 의논했다. 교황의 제안을 거절하면 추방당할 것이고, 받아들이면 당연히 교황에게 질 것이니까 말이다. 이 사연을 들은 회당 문지기가 자신이 그 논쟁에 나가겠다고 자청했다.

드디어 그날이 됐다. 논쟁은 교황이 문지기에게 얼굴을 돌리면서 시작됐다.

교황이 엄숙하게 손가락 하나를 쳐들어 하늘을 가로질러 선을 긋자, 문지기는 재빨리 손가락을 땅을 향해 힘 있게 가리켰다.

교황이 더 엄숙하게 손가락 하나를 다시 쳐들어 문지기 얼굴에 댔다.

문지기는 즉시 세 손가락 들어 교황 앞에 들이댔다.

교황이 옷 안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자, 문지기는 종이봉지에서 납작한 빵 하나를 꺼냈다.

이윽고 교황이 말했다. “이 자가 이겼다. 추방령은 취소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실 성경 이론에 관한 ‘논쟁’을 시작하기 전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당연히 패배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토론 상대자가 성경 이론에 밝은 교황이니까요. 그러니 선뜻 아무도 나서질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경 이론에 무지했던 회당 문지기는 애국심만으로 자청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논쟁에서 이겼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문지기의 손동작을 어떻게 해석했기에 교황은 그가 자신보다 교리에 더 밝고 깊다고 여겼을까요? 교황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는 훌륭한 신학자다. 내가 온 우주는 신께 속함을 암시하면서 하늘을 가로질러 손을 움직이자, 그는 손가락을 아래로 가리키며 사탄이 주권을 갖고 통치하는 지옥이라는 장소가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래서 나는 신은 오직 한 분임을 의미하며 손가락 하나를 쳐들었는데, 그가 세 손가락을 쳐들어 한 분이신 신은 스스로를 동등하게 3위로서 나타나심을 암시했다.

우리 자신의 교의인 삼위일체에 동의하는 손짓을 했을 때 나는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충격이었다.

나는 이 천재를 이길 수 없음을 알고 논쟁의 흐름을 바꾸어 사과 하나를 꺼내 신식 사고방식에 따르면 지구가 둥글다는 걸 암시했더니, 그는 즉시 구운 납작한 빵을 꺼냄으로써 성서에 의하면 지구가 납작하다는 걸 암시했다. 그러니 그가 이긴 것이다.”

교황의 이런 말씀에 비추어보면 회당 문지기의 성경 이론 실력은 뛰어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문지기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별거 아니었어요.

처음 교황이 하늘을 가르며 모든 유대인은 로마에서 나가라는 시늉을 하길래, 나는 손가락을 아래로 가리켜 우리는 꼼짝도 안 할 거라는 것을 암시했죠.

그러자 교황은

건방지게 굴지 말라며 위협하는 손가락질을 하기에, 나는 우리를 추방하는 것은 3배나 더 주제넘은 짓이라는 뜻으로 세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던 거예요.

그리고 그가 자기가 먹을 점심을 꺼내길래 나도 내 점심 식사를 꺼냈을 뿐입니다.”

아, 그랬군요. 어떤 하나의 형상을 보고도 이렇게 달리 해석하고 판단합니다. 이것이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즉 자기 합리화가 어떤 판단의 오류를 범하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예화입니다.

자기 합리화는 사실을 왜곡하게 하고, 사실을 왜곡하니까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중세 로마에서 유대인들이 추방되지 않은 이유]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사색해보았습니다. 오늘 이 영상을 통해 가끔은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과거 기억 중에서 판단을 잘못한 경우를 떠올리고, 그때 그 상황을 어떻게 자기 합리화를 했었는지를 살펴보다 보면 자기 합리화의 늪에서 조금은 벗어날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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