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없는 독서를 위한 모임 ‘고루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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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식없는 독서를 위한 모임 ‘고루고루’
  • 김보름
  • 승인 2021.07.16 0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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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64) 독서모임에 규칙 몇가지가 필요한 이유 - 김보름 / 연꽃빌라 책방지기
'고루고루' 회원을 모집할 때 사용했던 손그림

독립출판물이 좋아서 책방을 열었고, 매일 독립출판물들을 접하다 보니 모르는 사이 좁은 시야의 독서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편식 없이 골고루 읽고 싶다는 생각에 독서 모임을 열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일단 멤버로는 현재 같이 일하는 동생과 과거에 함께 일했던 동생에게 제안을 했고, 둘은 본인들도 평소에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며 흔쾌히 참여했습니다. 이름은 독서 편식을 고치자는 의미를 담아 우리말 ‘고루고루’로 정했습니다. ‘고루고루’는 코로나 시대에 맞춰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고, 조금 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여 연꽃빌라 SNS계정에 회원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모집은 10분도 되지 않아 마감되었습니다. 모두 10명을 모았습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는데 제가 접수를 잘못 받아 결국 11명이 되었습니다. 제가 실수를 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상관은 없었습니다.

진행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규칙이 많은 모임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하기 싫어질 것 같아서 정말 필요한 최소한의 규칙을 정했습니다. 3주 동안 한 권의 책을 읽고, 마음에 들었던 문장을 필사하거나 밑줄 친 페이지를 사진으로 남겨 단체 카카오톡 방에 올리는 것. 좋았던 느낌을 말하고 싶다면 자유롭게 말해도 좋지만,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 그리고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책을 선정하는 것. 이게 모임의 규칙 전부였습니다.

이제 와서 작은 고백을 하자면 저는 독서모임에 참여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이 생애 첫 독서모임인데, 더군다나 진행까지 맡았습니다. 물론 진행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3주에 한 번 정도는 “오늘은 독서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저녁 8시에 인증샷을 보내주세요.”라고 안내해야 하고, 만약 누군가가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말하면 같이 의견을 주고받아야 할 텐데, 조금 걱정도 되었습니다.

 

작은책방 연꽃빌라

첫 모임이 시작되는 날 그 걱정은 사라졌습니다. 걱정을 왜 했는지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을 만큼 '고루고루'의 멤버들은 알아서 주거니 받거니 의견을 교환했고, 저는 읽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많은 규칙이 싫어 규칙을 최소화했지만, 어쩌면 약간의 강제성은 모임을 조금 더 활기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런 간섭이 없는 모임 '고루고루'에 학업이나 직장 생활에 치여 스르르 사라지는 유령회원이 몇 명 생겼거든요. 돈을 지불하고 다니는 헬스장이나 다른 시설에도 빠지고 그만두는 마당에 아무런 부담 없는 모임에 시들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래도 저 대신 모임에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매번 진지하게 느낀 점을 말하는 몇몇 성실한 회원분들 덕분에 '고루고루'는 약속된 기간을 잘 채웠습니다.

우리의 몇 개 없는 규칙 중에 가장 잘 정했다 싶은 규칙은 한 사람씩 돌아가며 책을 선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저 혼자 책을 선정하기로 했다가, 좋은 책을 선정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겨 회원들의 의견을 물어본 후에 수정한 계획인데, 이게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각자가 요즘 관심 가는 분야의 책을 고르다 보니 혼자였다면 제목만 보고 지나쳤을 책들을 읽게 되고, 나와는 맞지 않을 거라 짐작만 하며 읽지 않았던 장르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와장창 깨뜨리는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읽기 위한 모임 ‘고루고루’는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슬아슬 진행되었지만, 마지막까지 취지에 맞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문득 고루고루 2기를 모집하면 참가하겠다고 말해주던 천사같은 회원들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다시 모임을 진행하고 싶은 의지가 생깁니다. 좋은 규칙들을 정해 조만간 2기 회원을 모집해야겠습니다. 모임의 어설픈 계획이나 규칙 같은 건 좋은 방향으로 수정해나가면 되는 거니까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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