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꿎은 아들 심리치료, 가족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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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꿎은 아들 심리치료, 가족치료
  • 문미정
  • 승인 2021.08.19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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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도에서 아이들과 생활하기]
(30) 서로를 돌보면서 자라나는 우리는 - 가족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 부부가 인천 앞바다 장봉도로 이사하여 두 아이를 키웁니다이들 가족이 작은 섬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인천 in]에 솔직하게 풀어 놓습니다섬마을 이야기와 섬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일상을 이야기로 만들어 갑니다 아내 문미정은 장봉도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가끔 글을 쓰고 남편 송석영은 사진을 찍습니다.

 

늘 누나에게 장난을 거는 지유, 묵묵히 참아주는 지인
늘 누나에게 장난을 거는 지유, 묵묵히 참아주는 지인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젖만 주고, 식사만 제공했지 순하고 유쾌한 아이들은 비교적 무탈하게 잘 자라주었다. 둘밖에 없는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아픈 손가락이 있으니 둘째 아들 지유다.

 

원래 남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낳다니!

첫째로 딸을 만나 딸을 키우다가 아들을 키워서 그런지 나는 아들이 버거웠다.

 

지유는 자기 스스로는 인생이 너무 재밌고 유쾌하지만 그 재미를 위해 주변이 희생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딱 내가 싫어하는 남성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남성으로 키우기 싫어 유난히 더 엄하게 아들을 대했는지 모르겠다.

 

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만나면 더 괴롭히고 장난을 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짓꿎은 장난을 받아내야 하는 것은 대부분 누나인 지인이다. 지인이는 지유를 동생으로 둔 이유로 머리카락이 잘리거나 코피가 나거나 울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학교 가는 길에 누나가 자기만 두고 먼저 갔다는 이유로 누나가 입은 모자티에 달린 모자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누나가 먼저 못나가게 신발을 저 멀리 집어던지기도 했다. 누나가 자기보다 동물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누나가 제일 아끼는 유산양 꽃지를 괴롭히거나 꽃지등에 올라타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너무나 모범생이라는데 집에서는 전형적인 문제아로 점점 낙인찍히는 날이 많아지면서 나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 갔고 부부싸움도 하게 되었다.

 

지유의 만행이 늘어나고 심해질수록 나의 스트레스도 점점 커져서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 없겠다는 생각에 나는 급기야 상담을 신청하게 되었다. 남편은 유난스럽다고 했지만 나는 이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첫 번째 심리검사는 비대면 문서로 진행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지유는 계속 문제를 만드는 날이 계속되었다. 2주 정도 걸려서 받은 진단 결과는 심리치료 대상 선정!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막상 치료 대상이라는 통보를 받으니 가슴이 덜컹했다. ‘뭔가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어디가 무엇이 문제인지 조금 자세히 물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비행 가능성 수치가 약간(아주 약간) 높다고 한다. 그 동안 지유의 행동을 보니 결과가 맞게 나온 것 같기는 했다.

 

2차 정밀 진단을 위해 온 가족이 하루 휴가를 내고 배를 타고 아동복지관을 찾았다. 진단 결과에 따라 놀이치료와 가족치료가 추천되었는데, 놀이치료는 스케줄이 맞지 않아 운동치료로 변경하고 가족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 5시부터 7, 날씨로 인한 갑작스런 결항을 제외하고는 우리 가족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섬 밖을 나갔다. 왕복 도선료만 3만원 고속도로 통행료만 만원이 넘는 고비용이 이었지만 여행하듯 매주 아동복지관을 찾았다.

 

치료과정 중에서 발견된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말없이 매사에 순종적인 지인이라는 것이다. 충격적이었지만 지인이와 지유 둘의 관계에서 늘 약자였던 지인이 편을 들어주었던 엄마가 아이를 말 없는 아이로 만들었고, 성장을 못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날부터 나는 둘의 문제를 둘이 해결하도록 놔두려고 매우 노력했고, 지인이에게는 스스로 말하고 거부하고 저항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그 즈음부터 매번 지인이가 울면서 나에게 오던 광경이 지유가 울면서 나에게 오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엄마가 둘의 관계에서 빠져주니 둘이 자연스레 서열정리가 된 것이다.

지유의 첫 돌봄 동물, 토끼. 이름은 '토지'
지유의 첫 돌봄 동물, 토끼. 이름은 '토지'
지인이가 제일 아끼는 동물 유산양 '꽃지'와 지유 담당이 된 어린 유산양 '동지'
지인이가 제일 아끼는 동물 유산양 '꽃지'와 지유 담당이 된 어린 유산양 '동지'

 

그렇게 3개월을 고생한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선물은 동물을 돌볼 줄 아는 지유와 싫어라고 말 할 줄 아는 지인이다. 지인이의 다음 치료 스케줄이 잡히기 전까지 약간의 휴식 시간을 보내는 우리 가족은, 요즘 평화롭다. 지유에게는 지유만의 돌봄 동물이 생겼고, 지유의 돌봄 동물이 생긴 후로는 누나의 동물을 괴롭히는 모습도 확연히 줄었다. 전에는 둘이 다투면 보통은 지인이가 엄마에게 울며 달려왔는데 이제는 주로 지유가 달려온다. 전에는 당장 무엇인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던 지유는 이제 조금은 기다려주는 법도 익혔다. 전에는 엄마가 밭일을 하면 놀아달라고 쫒아다니며 짜증을 부리더니 이제는 바구니와 호미를 들고 쫒아와 도우며 엄마와 함께 일하는 게 재밌다고 한다.

 

매미 잡기 시합을 하는 지인이와 지유. 잡은 매미는 다 놔주었습니다.
매미 잡기 시합을 하는 지인이와 지유. 잡은 매미는 다 놔주었습니다.

 

별 기대 없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치료가 이렇게 빨리 효과를 볼줄이야. 그리고 그 비밀이 나에게 있었을 줄이야.

 

이번 일을 통해서 마음이 아프건 정신이 아프건 몸이 아프건, 아픈 가족을 돌본다는 것은 인류의 종족보존을 위해서 매우 필요한 일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자랐고 조금 더 친밀해졌고 조금 더 연명할 수 있게 되었다. 도저히 더 이상은 이 섬에서 못 살겠다는 생각은 쑥 들어가고, 코로나로 인해 오도 가도 못하는 이곳 장봉도에서 우리 가족은 동물과 자연과 그렇게 즐겁게 연명해나가고 있다.

 

어디든 함께하는 지인이와 지유처럼... 온 인류도 함께... 그렇게...
어디든 함께하는 지인이와 지유처럼... 온 인류도 함께...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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