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수업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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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수업 풍경
  • 이정숙
  • 승인 2021.09.02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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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속 동그라미들]
(9) 이정숙 / 인천구산초교 교사, 인천교육연구소

 

학교에서 아이들은 서로 소통하고 부딪히며 관계를 형성해간다. 집에 혼자 있으면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부딪힐 필요가 없는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정서적 교감이 보류되거나 가상화 되어 간다.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래도 아이들은 성장하고 교감하기 위해 애쓴다.

화상수업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김샘은 아이들에게 ‘말건네기’를 한다.

 

김샘: 어머, 승민, 헤어스타일이 달라졌네.

승민: 네?

김샘: 퍼머했나보구나. 언제했니?

승민: 금요일에요.

김샘: 새로워 보이네.

승민: 네!

김샘: 수영이는 조금 까매졌네. 여기서 보니 키도 큰 것 같은데?

수영: .....

김샘: 어디 다녀왔나봐.

수영: 네.

김샘: 어디갔었어?

수영: 할머니네요.

김샘: 할머니 댁이 어디에 있니? 할머니 댁 근처에 바닷가가 있었나보다.

수영: 아니요.

김샘: 그래? 다른 곳에서 신나는 일들이 있었나 보다.

 

말하기도 귀찮아 하는 아이들을 향해 김샘의 ‘말건네기‘는 점점 어려워 진다. 수업에 바로 들어가려하다 문득, 화상수업에 들어오지 않은 아이들 둘을 발견한다.

김샘: 영진이랑 태민이가 아직 안 들어왔네. 무슨 일이 있나?

수빈: 자고 있나봐요.

용진: 깨워요.

민이: 야 어떻게 깨우냐.

김샘: 흠 조금만 기다려 볼까?

초롱: 그냥 해요.

김샘: 그럴까? 조금 있으면 들어올 거야. 미안해할지 모르니까 모른 척해 주자. 어이쿠, 방금 들어왔네.

김샘은 태민이의 지각으로 아이들이 한 두마디 하면서 깨어나는 게 반가웠다. 여세를 몰아 방학 중 있었던 일 발표하기를 해 본다. 그런데 아이들은 방학 중 있었던 일을 말하라고 하면 어딘가 놀러간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싸인다. 그래서 ’아무 데도 안 갔어요‘ 하는 시쿵둥한 대답이 나오지 않도록 어딘가를 놀러간 이야기를 배제해 보려, 책 읽은 것, 영화 본 것, 이야기 나눈 것 등등 실체적인 예들도 잔뜩 들어준 다음 놀러간 이야기만 하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민이: 놀러갔는데,..... 수영도 하고 ..... 형하고 물놀이를 해서 좋았습니다.(10초)

김샘: 그래, 좋았구나. 형이 민이랑 놀아주었네. 좋은 형이구나. 어떤 놀이를 했지?

좀 더 이야기를 보태길 원하며 이것저것 내용을 물었지만, 아이들 이야기는 풍성해지기 어려웠나 보다.

민주: 엄마가 떡볶이를 해줘서 맛있게 먹고 형과 놀고 또,...... 여러 가지 곤충도 보고 개미도 보고 ....... 꽃도...... 보고 수영도 하고 사람들도 보고......, 개미가 많아서 재미있었습니다............ 개미, 곤충, 모기, 파리도 많아서 무섭기도 했습니다. (1분)

 

시간을 맞추기 위해 두서없이 길게 말하는 전략을 쓰는 아이들에게 김샘은 아이들 얘기에 맞장구를 쳐주며 들어 주고, ‘아 그랬구나. 엄마가 음식 만들어 주시느라 고생하셨겠구나. 너도 도와드렸니? 형이 참 고맙구나, 민우랑 잘 놀아주는 구나.’ 등등 아이들이 안 한 이야기를 메우느라 반응을 하다보니 아이들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가급적 모든 친구들이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다보니 항상 수업시간이 길어진다.

명훈이가 전학을 가는데 개학 후 대면 수업이 없으니 아이들과 이별의 인사를 나누거나 아쉬운 말을 전할 기회가 없었다. 김샘은 명훈이에게 화상으로나마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기회를 주었다.

명훈: 뭐라고 말해요?

김샘: 글쎄, 이제 보기 어려울 없을 테니 그동안 있었던 일이나, 서운한 마음을 전하면 좋지 않을까? 얘들아, 즐거웠어. 등등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명훈이는 금새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명훈: 얘들아 잘 있어. 같이 공부하면서 재밌었어. 또 볼 수 있을거야. 나 여기 자주 올꺼니까. 또 보자. 잘 지내.

김샘: 어유~ 명훈이가 작별 인사를 잘 하네. 자, 우리도 명훈이에게 한마디씩 돌아가며 해 볼까? 선생님부터 할까? 명훈아, 네가 있어 우리 반이 즐거웠어. 명훈이를 보면 선생님은 기분이 좋았어. 우리를 재밌게 해줘서 고마워. 가서도 잘 지내고.

민재: 안녕, 잘가. 가끔 들러서 보자.

명훈: 그래, 잘지내. 또 볼 수 있을거야.

용이: 안녕. 잘가.

재윤: 잘가. 시시한 얘기들로 우리를 웃겨 줘서 좋았어.

윤정: 가서도 잘 지내. 우리는 네 덕분에 재밌었어.

태훈: 가서 재밌게 지내. 잘가.

무슨 말을 꺼낼지 조금 망설이던 아이들은 명훈이의 지난 학기 모습을 상기하며 화상으로나마 작별을 고했다. 방학 직전 전학 온 태민이는 전학 오자마자 일주일 간 결석을 해서 사실 직접 명훈이를 보지도 못했다. 컴퓨터 화상 속에서나 접하게 되는 아이들, 대면등교수업을 할 때도 마스크 속에 반만 보게 되는 아이들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친밀감이 쌓이고 친구를 만들어내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이제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이 네모 상자에 갇혀 영상을 보면서 수업에 집중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화상수업시간에서도 쉬는 시간을 갖는다. 쉬는 시간도 등교수업처럼 떠들썩하다. 민재는 바탕화면을 웃긴 화면으로 바꾸느라 열심이다. 성율이는 자기 생일이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김샘: 흠! 성율이 생일이었구나. 생일 축하 노래라도 불러주자. (김샘이 선창을 하자 아이들도 따라 부른다. 성율이 모습이 너무나 신나 있다.)

원격수업에서 참 난감한 수업 중 하나가 체육수업이다. 지난 번 체육시간 동화를 읽고 캐릭터를 몸짓으로 표현하는 과제를 동영상에 올리는 활동이 있었다. 아이들은 나름 캐릭터를 표현해내며 즐거워했고 수업시간에 이 동영상을 함께 보며 이야기 속 캐릭터나 이야기 제목 알아맞히기 활동을 했다. 자신들이 찍어 올린 내용이라 즐거워하고 집중도도 높았다.

김샘은 일방적 수업이 되지 않도록 일명 ‘골든벨’처럼 퀴즈내기를 한다. 모두 허니컴보드(쓰고 지울 수 있는 마크네틱 보드)와 보드마카를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퀴즈시간은 화상 수업에서도 진행이 된다. 아이들은 맞히면 보드판을 흔들며 춤을 추기로 한다. 김샘도 온갖 효과음을 내며 퀴즈 답을 화면에 가득 뿌린다.

비록 화상수업이라도 김샘은 애써 ‘말 건네기’를 하고 춤도 추고 정서적 교감을 위해 온갖 자료를 동원하지만 ‘접촉’이라는 실제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속에서도 규칙을 찾아내고 즐거운 학습에 기꺼이 참여한다. 생각하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싫어해서 학습력이 점점 떨어지지만 정해진 시간에 맞춰 원격수업에 들어오고 나간다. 이젠 화상수업에 마이크를 열었다 켜고 카메라 화면을 조절하고 설치하는 일들을 척척 해낸다.

김샘은 코로나 이후 수업의 색다른 풍경들이다. 수업을 끝내며 다음 주 쯤 학교에 오게 될 것이라고 예보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학교에 무지 가고 싶어요. 와! 신난다”하는 반응이다. 코로나 이후 긴 공백이 이 아이들 성장 후에 큰 후유증으로 남아 있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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