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가 행복해지는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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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가 행복해지는 길은?”
  • 최원영
  • 승인 2021.09.0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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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16화

 

삶은 양극성이 있습니다. 설렘이 있는가 하면 실망이 이어지고, 만남의 기쁨이 있는가 하면 이별의 아픔도 있습니다. 이별의 아픔이 가시는가 하면 재회이든 또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곤 합니다.

이렇게 삶은 양극 사이를 오가며 이루어집니다.

그 사이를 오가는 동안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야누스’라는 신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인터넷 글에서 야누스를 설명하는 부분을 간략히 전해드립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야누스(Janus)라는 신이 있습니다. 신화에는 모든 것의 시작을 상징하는 문이 나오는데 그 문의 수호신이 야누스입니다. 한해가 시작되는 1월을 영어로 January라고 하고, 독일어로는 ‘야누아르’(Januar)라고 합니다. 이 말은 야누스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야누스는 얼굴이 두 개라고 합니다. 그래서 야누스를 양면 신이라고도 부릅니다.

한쪽 얼굴은 앞을 보고 있고 다른 한쪽 얼굴은 뒤를 보고 있습니다. 이 의미는 지난날에 너무 매달려서도, 너무 앞만 보고 달려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삶은 ‘나’와 ‘너’와의 관계 속에서 영글어갑니다. 그런데 야누스의 신화를 접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앞만 보고 달리는 ‘나’와 뒤를 돌아보는 ‘나’, 이렇게 두 개의 ‘나’가 만들어가는 과정이 삶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앞을 보는 것은 ‘미래’이고 뒤를 돌아보는 것은 ‘과거’입니다.

불행한 사람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실수한 과거에 대해 후회하고 삽니다.

행복한 사람은 밝은 미래에 대해 설레고 실패를 딛고 일어선 과거에 대해 자부심이 큽니다.

그렇다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갇혀 현재를 잊고 사는 사람과 여전히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과거에 묻혀 사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의미 있고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나의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는 점입니다.

삶이 어차피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라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가’입니다.

아무리 부끄러운 과거가 많은 사람이라도 지금 현재 훌륭한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있다면 그분의 과거는 오히려 그를 더 존경스럽게 만드는 영예로운 과거가 될 것입니다. 또한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미래의 나를 만들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닙니다. 오로지 현재, 즉 ‘지금 이 순간’의 삶입니다.

《마음을 가꾸어 주는 작은 이야기》(이도환)에 ‘당신이 부럽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흔들리고 있던 제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가장과 아들 둘, 딸 하나가 살고 있습니다. 언제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민해야 했습니다. 특히 두 아들은 아빠를 돕기 위해 언덕 비탈길을 오르내려야 했기 때문에 늘 신발이 빨리 떨어지곤 했습니다.

며칠 전 아이들은 신발이 닳았다고 새 운동화 사달라고 했고, 아내는 세탁기가 고장 나 빨래를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남자는 고민 끝에 생활에 먼저 필요한 세탁기를 장만키로 하고, 신문광고란 뒤져 중고제품을 파는 집을 찾아갔습니다.

찾아간 그 집은 크고 훌륭한 저택이었습니다. 주인 부부는 고맙게도 아주 싼 값에 팔았습니다.

싼값에 구입한 그는 기분이 좋아져 주인 부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무심코 자기 아들 얘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두 녀석 모두 신발이 다 떨어졌다고 새 운동화를 사달라고 난리예요. 새것을 사 주기는 해야 할 텐데 참 걱정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 갑자기 부인 얼굴이 이상해지더니 방안으로 급히 뛰어들어갔습니다. 언뜻 보니 눈물을 흘리는 듯했습니다.

당황한 남자가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은 아이들 신발 때문에 걱정하셨죠? 우리에겐 어린 딸이 하나 있는데, 그 아이는 태어난 후 아직 한 번도 걸음을 옮긴 적이 없지요. 몸이 아파서요.

만약 우리 아이가 신발을 신고 걸어 다녀서 단 한 켤레만이라도 닳아 못 신게 된다면, 우리에겐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아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이니 이해 바랍니다.”

귀갓길입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귀가 후에 아이들의 떨어진 운동화를 보았습니다. 고민 덩어리였던 그 신발들이 그렇게 사랑스럽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할 때 행복이 미소 짓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보다 더 큰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을 볼 때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삶 역시도 이 점을 깨닫기 전과 깨달은 후에는 달라질 겁니다.

가난한 가장이 아들의 다 떨어진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처럼 말입니다.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 신!

하나는 뒤만 보고, 다른 하나는 앞만 보며 달리려는

인간의 마음을 담은 신화입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매달려 살고자 하는 마음과

밝은 미래를 꿈꾸며 그렇지 못한 현실에 괴로워하는 마음 모두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겐 과거와 미래가 맞닿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의 현재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어두웠던 과거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주고

밝은 미래를 현실에서 이루어지게 합니다.

조용히 저 자신에게 물어볼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무엇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 무엇을 즐겁게 해나가고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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