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은 번갯불, 노동자 권리구제에는 소걸음
상태바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은 번갯불, 노동자 권리구제에는 소걸음
  • 노영민
  • 승인 2021.09.09 05: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칼럼] 노영민 / 노무사, 민주노총인천본부 노동법률상담소

번갯불

 

지난 7월 3일 민주노총은 △산재사망 방지 대책 마련 △비정규직 철폐·차별시정 △코로나19 재난 시기 해고 금지 △최저임금 인상 △노조할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당일 경찰은 대규모 특별수사본부를 편성해 수사에 착수했고 8월 6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해 8월 13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코로나19 방역을 핑계삼았으나 나중에 방역 당국이 밝혔듯이 7월 3일 집회 참가로 코로나19에 확진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참가자 중 약 1개월 후 확진자가 3명 발생했으나 모두 일상생활 중 식당에서 다른 확진자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양경수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날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의 주범인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은 정부의 가석방 조치로 출소했다. 급기야 9월 2일 경찰은 민주노총 중앙 사무실에 새벽에 들이닥쳐 양경수 위원장을 구속했다. 전국노동자대회부터 양경수 위원장 구속까지 두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경찰이 민주노총 중앙 사무실을 침탈한 것은 2013년 12월 박근혜 정부가 파업 중인 철도노조 위원장을 체포하려고 침탈한 이후 두 번째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강제 연행한 것으로는 첫 번째다. 문재인 정부에서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은 김명환 전 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다.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과 부패・비리 재벌 총수 풀어주기로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은 사기극임이 분명해졌다. 친기업 반노동이라는 본색을 이처럼 잘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이 경찰에 연행된 지난 9월 2일 민주노총인천본부가 인천경찰청 앞에서 문재인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이 경찰에 연행된 지난 9월 2일 민주노총인천본부가 인천경찰청 앞에서 문재인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소걸음

 

#1. 지난해 5월 11일 아시아나KO 노동자들은 코로나19 1호로 정리해고됐다. 회사는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신청도 하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무기한 무급휴직과 희망퇴직을 강요했다. 이를 거부한 노동자들은 모두 정리해고됐다. 이에 지난해 7월 인천지방노동위원회와 서울지방노동위원회, 12월 중앙노동위원회가 모두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다. 회사는 판정을 인정하지 않고 소송을 제기했으나 올해 8월 20일 서울행정법원도 부당해고라고 판결했다. 회사는 이마저 인정하지 않고 항소를 제기했다.

행정소송에서도 부당해고 판결을 받은 노동자들의 복직을 위해 정부는 무엇을 했을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중재안이라고 나온 것이 “당일 퇴직을 전제로 복직”이라고 한다. 회사는 노동부가 냈다고 하고, 노동부는 회사가 낸 중재안이라고 서로 떠넘긴다고 한다.

그동안 아시아나KO는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부과한 1, 2차 이행강제금을 따박따박 납부했다. 최대 4차까지 부과하는데 회사는 그것도 내고 버틸 것이다. 행정소송을 위해 이 나라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 수임료도 많이 줬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해고기간 임금도 모두 주겠다고 했단다. 단, “당일 퇴직을 전제로 복직”한다면.

결국 회사가 노리는 것은 노조 활동에 열심인 노동자들은 어떻게든 쫓아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제재하고 노동자들의 복직을 위해 힘쓰기는커녕 회사 제안을 거들고 있다. 정부가 이러는 사이 노동자들은 오늘도 기약 없는 복직을 위해 길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다. 노동자들 권리구제는커녕 방해하는 노동행정이다.

 

#2. 최근 자주 상담 전화를 하는 노동자가 있다. 이전 직장이 식자재 도매 업체였는데 식당에 고기 배송 업무를 했던 노동자다. 지금은 이직해 다른 직장에 다닌다.

이전 직장에서 휴게시간에도 업무 지시를 받아 일을 했지만 그에 대한 임금을 못 받았다. 이직한 후 올해 초 노동청에 체불임금 진정을 했다. 출석 조사를 받을 때 사업주는 휴게시간 미부여, 임금 미지급을 모두 부정하며 이 노동자에게 쌍욕까지 했다고 한다. 체불임금이 인정돼도 안 주고 소송까지 가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이 노동자는 근로감독관에게 체불임금 못 받아도 좋으니 사업주를 반드시 형사처벌해달라고 했단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최근에야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 따르면 진정사건은 25일 이내에 처리해야 하고 1차례 같은 기간동안 연장할 수 있다. 불가피한 경우 신고인의 동의를 받아 추가 연장하되, 신고인에게 통지 및 매월 1회 이상 전화 또는 서면으로 지연 사유와 예상처리기일을 통보해야 한다.

이 노동자는 노동청으로부터 이런 통지를 받지 못했다. 그나마 검찰로 넘겼다는 문자를 받은 것은 진정을 한 지 5개월이 넘어서였다. 해당 사업주가 실제 형사처벌을 받기까지 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도 없다. 역시 노동자들의 권리구제에는 더디고 더딘 노동행정이다.

 

문재인 정부 ‘노동존중’의 민낯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탄핵 후 집권해 촛불 정부와 노동 존중을 참칭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률 역대정부 최저 수준,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 공공부문 비정규직 사이비 정규직화와 처우개선 외면, 탄력근로제 확대, 민주노총 중앙 사무실 침탈과 위원장 구속, 가석방 요건까지 바꿔가며 재벌 총수 풀어주기에서 보듯 개혁은커녕 뒤통수치기를 반복해 왔다.

방역을 핑계로 한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에는 번갯불이지만 노동자들의 권리구제에는 한없이 더디고 방해까지 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 ‘노동존중’의 민낯이다. 집권 말기에 그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