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가을날의 작은 책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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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가을날의 작은 책방들
  • 박상희
  • 승인 2021.09.27 08: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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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읽는 도시, 인천]
(21) 북극서점 해먹에 누워
박상희_ 책방 모도_ 종이 위에 펜_ 31x23cm_ 2021
박상희_ 책방 모도_ 종이 위에 펜_ 31x23cm_ 2021

 

파란 색 <책방 모도>

코로나 시절에도 책 읽는 계절 가을이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책보다 핸드폰을 쥐고 이리저리 기사 검색이나 유튜브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게 현실입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아 책 읽기가 수월하다고 하는데 이곳저곳의 쏟아지는 정보에 속수무책으로 내 시선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작은 책방을 찾아가 봤습니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책방 모도> 입니다. 동인천역 뒤쪽 화수동에 책방이 있다니 좀 뜻밖의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방 이름도 독특하고 포털 검색에 나온 사진도 파란 색의 그림 같은 건물이라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소개 글 중 책방 이름을 ‘모아니면 도’에서 따왔다는 점도 호기심을 발동 시킵니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달려간 책방은 간짜장과 볶음밥으로 유명한 중국집 ‘미광’ 근처라서 길은 다행히 익숙합니다. 그러나 가면서도 여전히 ‘어디에 책방이 있는 거지?’라는 궁금증을 달고 좁은 골목길을 꺾습니다. 그러다 발견한 파란 벽면에 낮은 지붕이 덮여진 작은 건물에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책방 모도 옆에는 빨간 고추들이 양지를 향해 잔뜩 누워 들 있습니다. 오랜만에 마음의 평화를 주는 골목길 풍경입니다. 책방 안은 대여섯 명이 겨우 서 있을만한 공간인데 특이하게 책들 사이에 피아노가 자리해 있습니다. 거기다 작은 집에 어울리지 않게, 아니 너무 어울리게 예쁜 창문이 골목을 향해 나 있습니다. 여기까지 소설의 발단과 전개 과정과 같이 공간 구석구석이 너무나도 재미있는 구성입니다.

그렇다면 위기와 절정은? ㅎ 어떤 책을 사느냐 머리를 굴려가며 책들을 살펴봅니다. 주인 분이 소설가 지망생이신지… 책 쓰기에 대한 책들도 많았고 인천지역 관련한 책들도 많이 보이더군요. 그 중 한 권 속에 발견한 책방 탄생의 단서…주인 분은 신도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학생 때부터 구도심에서 놀고 애착을 갖다가 책방을 여셨다고 합니다.

책 두 권을 집어 들고 계산을 하면서 어색한 인사를 나눈 것이 크라이막스 라면 너무 싱거운 결말이지요? 네, 화수동 작은 책방 <책방 모도>는 어른들의 문구점처럼 단지 책만 파는 곳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지만, 큰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마술 같은 공간이랍니다.

 

박상희_ 한미 서점_ 종이 위에 수채, 펜_ 23x23cm_ 2021
박상희_ 한미 서점_ 종이 위에 수채, 펜_ 23x23cm_ 2021

 

노란 색 <한미서점>

드라마 ‘도깨비’에서 주인공 남녀가 지나 간 배경이 된 이후로 노란 색이 시그니쳐가 된 예쁜 서점이 바로 ‘한미서점’입니다. 몇 년 전 여기 책방 골목에서 중고 서적을 사러 왔을 때도 지금처럼 외벽이 노란색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어찌됐건, 노란 색이 주는 화사한 공감대가 서점으로 발길을 끄는데 큰 몫을 한 것 같습니다. 덧붙여 벽 한 가운데 쓰인 한미 서점의 궁서체가 참 담백합니다.

근처에 또 하나의 오래된 서점인 ‘아벨서점’도 쏟아질 것 같은 책 더미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이 오래 된 곳입니다. 지금은 몇 군데만 남아 책방 골목의 명맥을 유지하지만 예전에 수많았던 서점들이 문을 닫을 때마다 그 책들을 소중히 거두어 준 곳이 바로 아벨서점이라고 합니다.

배다리 근처는 7~80년대 엄청나게 많은 인파와 상점, 노점들로 중심가 중의 중심지였습니다. 그 당시 배다리 주변은 전쟁 이후 많은 피난민들이 정착해 살고 있었고 근처 공장 노동자들이 인천으로 밀려 들어왔을 때라 물자 부족과 넉넉지 못한 살림들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와중에 시장 건너편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책방 골목은 자식들만큼은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픈 어르신들의 불 끓는 교육열의 상징이었을 것입니다. 그 불씨가 흐릿하게 남은 골목이 참으로 쓸쓸해 보였는데 <한미서점><아벨서점> 등 작은 책방들의 불빛이 참으로 반갑기만 합니다.

박상희_ 북극 서점_ 종이 위에 수채, 펜_ 23x23cm_ 2021
박상희_ 북극 서점_ 종이 위에 수채, 펜_ 23x23cm_ 2021

 

갈색과 녹색의 <북극서점>

여러 분들은 잃어버린 기억과 추억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한번 가보시겠습니까? 굴포천 역 근처에 위치한 작은 책방 <북극서점>은 책을 사러 가는 곳이 아니라 온통 오래된 기억에 관련된 물건들을 경험하러 가는 매우 독특한 장소입니다. 책방의 주인은 세세하게 지난 시간에 관련된 소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책이나 그림, 심지어 옷이나 여러 기념품까지 그곳에 나열된 모든 것들은 판매가 아니라 전시에 가까운 것처럼 보입니다. 모두 다른 품목들이지만 큰 방안에 하나의 연결 고리를 갖고 진열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다 멋진 음악은 덤으로 깔려 <북극서점>은 책을 사러 오는 곳이 아니라 시간 여행을 경험하게 하는 것만 같습니다.

마침 책방 안의 작은 내부 '유실물보관소'에서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보세요. 라는 행사를 진행하면서 지극히 평범한 우리 주변의 물건들로 추억을 쫓아가보는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북극서점>은 크게 드러내거나 소리치지 않고, 개흥초등학교 주변 주택가 2층 건물에 숨어서 그곳을 발견하는 이들에게만 깜찍하게 놀라움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가수이기도 한 책방 주인 덕분에 멋진 음악과 다양한 강좌, 공연, 모임, 전시 등이 늘 열리고 있습니다. 작은 공간에서 재미있는 일들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는 <북극서점>은 기웃거리는 이웃들의 호기심을 넘어 그리움을 만나게 해 주는 따뜻한 공간입니다. 영국의 소설가 ‘레이철 조이스’가 쓴 <뮤직숍>(밝은세상, 2021)에는 “음악을 들으면서 편하게 쉬다가 가세요, 언제든 들러도 좋아요, 우리는 늘 여기에 있으니까요.”라고 하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나누는 작은 레코드 가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북극서점>이야말로 동네의 아지트이자 <뮤직숍>처럼 작은 행복을 나누는 곳입니다.

이 밖에도 강화도의 <딸기 책방><국자와 주걱><책방시점><이루라 책방>, 송도 국제도시의 <카페 꼼마>, 배다리의 <나비날다 책방> <책방 마쉬>, 계양구의 <슬기서점> 등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책방들이 있습니다. 하늘은 높고 구름이 풍성한 가을에 슬리퍼 신고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작은 책방을 찾아보세요. 다정하고 재치 넘치는 이웃을 만나실겁니다.

 

2021.09.24 글, 그림 박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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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2021-10-01 22:12:27
빛으로 읽은 도시 인천인데
이번에는 색으로 읽는 도시 인천이 딱 어울릴 색감의 글과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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