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메뚜기들만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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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메뚜기들만의 사랑
  • 전갑남 시민기자
  • 승인 2021.10.05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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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황금들녘 메뚜기의 짝짓기

 

세상은 시간을 먹는다 합니다.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늘 그 자리인데, 어느새 가을.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어갑니다.

 

가을걷이 시작된 들녘. 그야말로 풍요로움이 넘치는 황금벌판입니다.
가을걷이 시작된 들녘. 그야말로 풍요로움이 넘치는 황금벌판입니다.

 

가을이 무르익는 햇살 좋은 날입니다. 누렇게 색깔이 변한 황금벌판은 온통 풍요로움으로 넘쳐납니다.

메뚜기들도 신이 났는지 날뜁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메뚜기 녀석들 여름 들녘에선 자기들 세상을 만난 듯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잘도 뛰어다니다가 찬바람 불면 눈에 띄지 않는다 해서 그런 말이 나온 듯싶습니다. 아무리 좋은 전성기라도 한철이고 한때라는 의미인 것 같아요.

 

몸집이 큰 암컷 메뚜기가 날씬한 숫컷을 업고서 짝짓기를 합니다.
몸집이 큰 암컷 메뚜기가 날씬한 숫컷을 업고서 짝짓기를 합니다.

 

메뚜기 녀석들도 한철 머물 날이 머지않은 모양입니다. 추수가 시작되자 짝짓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자손을 잇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몸집이 큰 메뚜기가 늘씬한 메뚜기를 어부바하고 있네요. 메뚜기하고 마음속 이야기나 은근슬쩍 나눠볼까요.

"어머나, 아가를 업고 다니시네?"

아래에 있는 몸집 큰 메뚜기의 대답이 금세 들립니다.

"아가라뇨?"
"그럼, 누구신데 힘드시게."
"제 낭군님이에요."
"낭군님요? 낭군님이 날씬하기는 하지만, 업고 있으면 성가시진 않으세요?"
"그렇진 않아요. 절 무척이나 사랑한대요."

몸집이 큰 새색시 목을 꼬옥 끌어안고 있는 낭군님께서 말을 받습니다.

"이 좋은 가을날을 어찌 그냥 보낸단 말이오. 찬바람 불면 저희 한 세상도 후훅 가버리는데."

벼이삭이 똑똑 익어가는 가을 낮. 메뚜기의 짝짓기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덩치가 큰 암컷이 꼼짝 못하고 당하는 것처럼 보여서요. 빼빼한 수컷 녀석은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암컷 등에 철석같이 붙어있습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용을 씁니다. 수동적인 암컷에 비해 수컷이 아주 적극적이네요. 눈치코치 볼 것도 없는 집요함이 대단합니다. 가까이 가자 한 몸인 채로 폴짝, 다가서면 또 폴짝! 녀석들의 사랑은 좀처럼 식을 줄 모릅니다.

낭군님의 진심 어린 마음이 통한 걸까요? 새색시는 어느새 자연스레 자세를 낮추고 은밀히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메뚜기의 한세상은 6개월 정도로 짧습니다. 그렇지만 번식력 하나는 대단하다고 알려졌어요. 성충 암컷 한 마리가 낳는 알이 무려 600~800개 정도. 가을에 사랑 행위가 끝나면 자기들만의 안전한 비밀 장소에다 알을 까지요. 이듬해 알에서 깬 애벌레는 여러 차례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되어 새 세대가 다시 한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똑똑 여문 가을 들녘의 벼이삭.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똑똑 여문 가을 들녘의 벼이삭.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요즈음 전성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벼메뚜기는 벼잎을 갉아먹고 사는데, 많은 개체가 한꺼번에 부화하여 활동하면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농약 사용으로 인해 메뚜기 수가 줄어 큰 해코지는 않는 듯싶습니다.

예전 메뚜기가 많이 날뛸 땐 잡아서 프라이팬에 볶아먹었습니다. 이른 아침 날개가 이슬에 젖어 행동이 둔해지면 쉽게 잡을 수 있었죠. 볶은 메뚜기는 어른들 술안주로 또 애들 간식거리로 맛났지요. 요즘은 메뚜기 잡는 풍경도 사라졌습니다.

녀석들의 기분 좋은 사랑 행위가 끝났을까요? 수컷이 암컷 등에서 떨어집니다. 암컷도 홀가분하게 날아서 벼이삭에 몸을 숨깁니다.

가을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인가 봅니다. 가슴 짜릿한 사랑을요.

짝짓기에 여념이 없는 메뚜기 한쌍. 암컷이 숫컷을 어부바하여 사랑을 맺습니다.
짝짓기에 여념이 없는 메뚜기 한쌍. 암컷이 숫컷을 어부바하여 사랑을 맺습니다.

 

메뚜기의 사랑 / 자작시

메뚜기 한 쌍
세기의 결혼식이라도 치른 듯
엎드려 업고 업혀서
굳은 맹세 지켜가는
그런 사랑을 합니다
 
가쁜 소리 내며
팔딱팔딱
사랑은 쉬이 식을 줄 모릅니다
 
바람 불어 좋은 가을날
지나가는 한철
사랑의 묘약에 취한 듯
콩닥콩닥 가슴 뛰는
그런 예쁜 사랑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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