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합의가 낯선 사회 - 도시재생에서 갈등관리는 핵심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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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가 낯선 사회 - 도시재생에서 갈등관리는 핵심 과제다
  • 고병욱
  • 승인 2021.11.0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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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과 인천의 미래]
(6) 고병욱 / 도시공학박사, 문화체육관광부 규제개혁‧적극행정위원회 위원
‘도시재생’이 화두가 된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인천의 핵심 현안 중 하나다. 인천항 일대 재개발에서부터 원도심 근대산업유산의 보전, 부평 캠프마켓의 재생 등등이 그러하다. 도시재생은 대도시의 외연적 확산을 억제하되 쇠퇴한 도시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물량 위주가 아닌, 인간의 삶의 공간으로서, 각 지역의 독특한 문화·역사를 살려 증대된 문화 수요를 충족시켜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인천in은 이에 인천의 도시재생의 과제와 비전을 제시하는 전문가들의 글을 싣는다. 인천지역 도시전문가가 5분이 참여하여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우리 사회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존재하고 서로 얽혀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소통하고 합의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개인과 집단이 공동이익과 이것들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에 대해 동의를 얻는 과정인 ‘합의’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진다.

사회적 합의는 협치의 선행과정이다. 2017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는 우리 정부에게 정부의 이행파트너인 시민사회의 다양한 역할을 인정하고 협력관계를 명확히 받아들이는 틀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우리 정부가 시민사회와 논의-숙의-합의의 과정을 통해 시민사회와 협업하는 것을 잘 하지 않고 있으며, 정부의 논의가 하층부 네트워크로 전달되는 경향이 심각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정부와 시민사회가 수평적 소통을 하며, 합의적으로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민관협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근거다.

유럽의 여러 나라는 토론, 협상, 타협, 공론화, 합의 등을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체득하고 있다.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독일학교 교육의 기준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보이텔스바흐 합의 세 가지 원칙 중 논쟁성 수업에 대한 원칙은 ‘학문이나 정치 사회적으로 논쟁적인 현안은 학교 교실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제시한다’라는 것이다.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비판적 사고로 건설적인 논쟁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의무교육 단계에서 필수교육 과정으로 ‘노동법’을 공부한다. 노동조합의 간부가 되어 사용자와 임금협상을 비롯해 단체교섭을 어떻게 진행하는지를 학교 교육을 통하여 학습한다. 유럽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는 잘 쓰는 개념이면서 일상에서 익숙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합의란 용어를 많이 쓰고 있지만 주로 노사 간의 합의가 대부분이다. 서울시는 민선 5기 이후 혁신과 협치를 시정의 핵심 기조로 정책을 펼쳤다. 도시재생, 마을공동체, 사회적 경제 등과 같은 혁신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 시민들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추진 주체로 등장시켰다. 2019년 서울시는 시민과 행정이 ‘사회협약’을 통해 손을 맞잡고 함께 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서울협치협약은 서울시 협치를 고도화하기 위한 정책사업이다. 아울러 사회적 대타협인 사회협약이라는 본질을 갖고 있기에 민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추진단을 구성하였다. 경험이 높은 시민사회가 참여하여 협치정책 가치를 강조하며 민관의 실천 의제가 담긴 협약문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협약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이행원칙과 이행체계의 합의는 무산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시사하고 있다.

인천시는 2019년 인천광역시 「민관협치 활성화 기본조례」를 만들어 “시민의 시정 참여 권리와 의무를 명문화하고, 시장과 소속 공무원이 민관협치를 책무로 인식하도록 규정함으로써 민관협치가 시정 전반의 기본원칙임을 더욱 명확히 한 사항”이라고 한다. 그리고 민간협치 활성화를 위해 용역도 발주하였다. 과연 인천시의 사회적 합의와 협치는 어느 수준일까?

 

 

도시재생에서 갈등관리는 중요한 과제이다. 영국은 10여 년간 도시재생을 공공이 주도하면서 시민사회, 지역주민 등 민간부문의 불신·불만을 초래했고, 실행력도 부족하여 정책의 효과가 없다며 1990년대 초 민간주도의 도시재생 정책으로 전환하였다. 다시 말해 도시재생은 이해관계자의 갈등이 표출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고,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가 하는 것이 핵심과제이다.

개항 후 근대사를 담고 있는 인천은 최근 수년간 근대유산의 보존과 철거 또는 보존과 개발이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인천 내항은 사업성이라는 숫자를 놓고 갈등하고 있고, 캠프마켓 조병창 병원 건물은 유류오염을 치유하려면 건물을 존치할 수 없다며 대립하고 있다. 애관극장은 건물매도 가격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학술용역을 해야 한다며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 2017년 조일양조장, 동방극장, 애경사 비누공장 ‘기습철거’, 2019년 부평 아베 식당 철거... 언론 매체의 ‘기습철거’라는 용어가 사회적 합의와는 너무 거리가 먼 것 같다. 철거되는 상황에 당시 인천시는 안타깝지만 지자체가 사유재산을 간섭하기 어렵다고 했다. 근대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명확한 법·규정도 없으며 예산도 부족하고 보존 가치도 모호하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는 하나로 정해진 의견과 결정력을 갖고 있다. 문을 닫고 방치된 거대한 가소메터 가스 저장고를 그대로 보존한다는 오스트리아 빈 시의 결정에 대해 반대하는 시민들에게 시의 책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가소메터는 우리 도시역사의 한 부분으로 보존하는 것이 옳다. 이후 어떤 방식으로든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만약 여의치 않으면 미래를 위해 남겨놓자!” 이 같은 용기 있는 결정과 시민들을 설득하고 합의한 것을 두고, 예술의 도시 빈을 오랫동안 지탱해 온 관록과 지혜로 평가하고 있다. 1981년 암스테르담 시는 다양한 계층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베스터 가스공장 부지일대를 문화공원으로 조성하기로 발표했다. 주변 일대를 오염시킨 가스공장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건물을 재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심각하게 오염된 넓은 부지를 일순간에 탈바꿈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환경 복원계획을 마련했다. 고전적이고 아름다운 산업용 건물을 문화시설로 재활용하여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로 삼았다. 이들도 법·규정의 문제, 예산의 문제, 사회적 갈등의 문제 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지를 선택하였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거쳐 법을 제·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최근 인천시가 근대유산의 보존과 철거라는 사회적 갈등에 대해 단순히 법·규정과 행정절차, 그리고 예산 등을 우선한다면 사회적 합의를 외면하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최진석 교수는 그의 저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서 “시선이 낮으면 편안하지만 탁월하지 않다.”고 말한다.

 

출처:

김정후,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돌베개, 2015.

사회복지 용어사전,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

이은선, 서울협치협약의 비전과 한계,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 석사논문, 2021.

하성환, https://blog.naver.com/ethics60/

KBS, 이슈 픽 쌤과 함께,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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