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나는 우울하다"
상태바
"출산 후 나는 우울하다"
  • 이성은
  • 승인 2011.07.05 1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칼럼] 이성은 경인여대 교수 / 간호과


늦은 결혼에도 건강한 아기를 출산한 지 며칠 안 되는 산모 A씨가 있다. 아이를 낳고 기뻐하는 남편과 가족들을 보며 김씨 마음도 흡족했다. 그런데 퇴원해서 집에 돌아와 1주일이 지나니 피로감이 몰려오고 이유 없이 울적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아이 때문에 잠을 못자서 그러겠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지만, 잘 먹던 밥맛도 이전 같지가 않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슬프고 허전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문득 거울을 보니 아직 붓기가 빠지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보기 싫다. 아기를 보면 한없이 이쁘다가도 '이 아이가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라는 막연한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출근한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도 편하지 않아 안절부절하며 하루를 보낸다. 남편이 퇴근해 돌아오니 괜시리 모든 게 남편 탓인 것 같아 별일도 아닌데 짜증을 낸다. 남편은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묻지만 딱히 정확한 답변이 생각나지는 않는다. "애 잘 낳고 도대체 뭐가 불만인데? 이상해졌어" 라는 남편 말에 서러움과 분노가 밀려온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자신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엄마로서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출산은 축복받을 일이다. 그러나 건강하게 아이를 낳았다고 모든게 순조롭지는 않다. 부모가 된다는 것, 특히 여성에게 엄마가 된다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자 무한한 책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여성에게 나타나는 다양한 변화 중 '산후우울(postpartal blue)'이 있다. 애초 전통적인 개념은 아니지만, 현대 여성의 70-80%가 산후에 우울감을 경험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을 만큼 보편적으로 나타나며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정도와 기간에서 개인차가 심하다. 실제 '산후우울' 발생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신체·정신·심리적 다양한 요소들이 우울감을 유발할 수 있다. 출산 직후 에스트로겐 같은 여성호르몬의 급작스러운 저하, 신생아를 돌보는 스트레스, 피로감, 산후 외모의 변화, 남편과의 성관계 변화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한다. 

특히 요즘과 같이 만혼과 늦은 출산이 대세인 현실 속에서, 여성들은 출산 후 갑자기 겪는 다양한 변화에 적잖게 놀라게 된다. 예전에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사회활동을 통해 남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해왔던 여성들에게 출산 후 변화한 역할에 적응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필자도 아이를 낳고 예전에는 생각지 않았던 변화한 생활방식에 적응하는 데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렸다. 아이를 낳고 수개월동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고, 한겨울에 아이가 아프면 주변 도움 없이 병원에 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이를 낳아보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아이와 하루 종일 있다 보면 대화다운 대화를 할 기회는 없다. 더군다나 출산 후 머지않아 체형이 회복되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산후 신체변화는 상당히 오랜 기간 여성들을 당혹스럽게 하며, 신체상 저하가 유발된다. 피로감이 겹쳐서 마음과 몸이 힘들고 일시적이었지만 매사 의욕이 없었던 기간이 있었다. 사랑하는 아이를 얻음으로써 적어도 일정기간 '포기'해야 할 게 많다는 사실을 출산 후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니 말이다.

그러나 '산후우울'을 경험하는 건 지극히 정상이다. 일반적으로 1주일 이내 '산후우울'은 일시적으로 발생되었다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결코 질병이 아니며, 산모 인격이 변화한 건 더욱이 아니다. 때론 평소와는 다른 산모 반응에 남편이나 가족이 당황스러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적응 기간을 통해 산모는 정상생활을 회복하고 어머니로서 변화한 역할에 적응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가족들 이해와 도움은 필수적이다. 실제 산후우울은 산모 몸이 아픈 경우, 산후조리 어려움, 경제적인 곤란, 부부갈등, 시댁과의 갈등이나 아기의 건강상태 등에 따라 기간과 정도에서 매우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일상생활과 아기돌보기가 가능한 정도의 우울한 기분은 정상적이다. 굳이 이유를 찾으려 할 필요는 없다. 산모 기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 이때 누구보다 남편 지지가 중요하다. 산모 느낌을 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커다란 도움을 주며 꼭 답을 찾으려 할 필요는 없다. 비판적인 태도는 오히려 우울감을 심화시킬 수 있다. 외국에는 비슷한 상황의 여성들의 자조모임도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도 산후조리원에서 같이 있었던 산모들 모임이나 혹은 인터넷 까페 등에서 이러한 경험을 나누면서 서로에게 지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의사소통을 통해서 산모는 심리적인 해소를 맛볼 수 있으며, 결국 어머니로서 역할에 자신의 에너지를 쏟게 된다. 또한 신체적인 배려도 필요하다. 산후에는 늘 피곤한 경우가 많다. 신생아로 인해 밤잠을 설치는 산모를 위해 낮에 1-2시간이라도 충분히 휴식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중요하다. 특별히 아이를 돌보아줄 사람이 없다면 아이가 잘 때 다른 일을 하기보다는  산모도 잘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간혹 산후 우울감이 1-2주 이상 지속되면서 일상생활 유지가 불가능하거나 아기를 학대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에는 산후 우울증 등 산후 정신장애 가능성이 높다. 흔하지는 않지만 경우에 따라서 순간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최악의 경우도 있으므로 반드시 의료진을 찾아가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건강한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엄마가 건강해야 한다. 특히 출산 후 기간은 여성이 성공적으로 엄마역할을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기간이다. '산후우울'도 엄마가 되기 위한 '가벼운 심리적 열병' 같은 것이다. 여성이 건강한 엄마로서 거듭나기 위해서 남편과 가족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