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 총소리'는 언제 멈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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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산 총소리'는 언제 멈출 것인가?
  • 윤세민
  • 승인 2011.07.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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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윤세민 / 경인여대 교양학부 교수(언론학박사 · 문화평론가)


경인여대와 우측 예비군 훈련장

내가 재직하고 있는 경인여대는 계양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그 품세와 자태가 멋드러진 계양산은 역사적으로나, 자연환경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인천의 명산이다.

높이 394m로 강화도를 제외한 인천광역시에서 가장 높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진산 또는 안남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있어 서쪽으로는 영종도와 강화도 등 주변 섬들이 한 눈에 들어오며, 동쪽으로는 김포공항을 비롯한 서울특별시 전경이, 북쪽으로는 한강 너머 고양시가, 남쪽으로는 인천광역시가 펼쳐진다.

산 이곳저곳에는 계양산성과 봉월사 터, 봉화대 등의 유적지와 고려시대 학자 이규보가 거처하던 자오당 터와 초정지가 위치한다. 산 아래에는 경인여자대학과 계양문화회관, 성불사, 연무정 등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남단에는 1986년에 도시 자연공원으로 지정된 계양공원이 들어서 있다.

또한 계양산은 인천내륙의 가장 큰 녹지공간이고 희귀 동식물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는 인천에서 거의 유일한 자연생태계공간임을 자랑한다. 2004년 녹색연합 조사결과를 보면 계양산에는 540종이 넘는 식물종이 서식하고 있고, 반딧불이와 도롱뇽, 소쩍새, 황조롱이, 매, 너구리, 대형포유류인 고라니에 이르기까지 생물 종과 그 다양성이 풍부하다. 또 그리 큰 산이 아님에도 산의 품세와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이곳저곳 산세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각종 바위와 나무, 꽃 등이 사시사철 자태를 뽐낸다. 특히 계양산 소재지인 계양구의 꽃인 진달래가 유난히 많이 피어 봄에는 진달래 능선의 장관을 이룬다.

그 때문인지 계양산에는 지역주민은 물론 멀리서도 찾아오는 등산객들이 하루 수천 명에 이를 정도다. 물론, 경인여대 학생과 교직원들도 계양산 자락에 안겨 교육의 향연을 피우는 것을 큰 긍지로 여기며 계양산을 자주 오른다. 그러면서 수시로 학생과 교직원들은 직접 자연보호운동을 펼치며 계양산의 고마움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곤 한다.

그런데, 그런 아름다움과 자랑스러움을 일순 가차 없이 무너뜨리는 소리가 있다. "땅땅 따따땅---, 탕탕 타타탕---." 총소리다.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 쉴 새 없이 울려퍼지는 총소리는 인근 계양산 기슭에 있는 예비군 사격훈련장에서 들려오는 것이다. 예비군 훈련장과 붙어 있는 경인여대 가족이나 인근 주민들에게는 이제 일상사가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계양산을 처음 찾는 이들은 이 총소리에 소스라쳐 놀라고 심지어 바싹 엎드리기까지 할 정도다. 그 정도로 계양산을 뒤흔드는 총소리는 소음을 넘어서 공포 수준이라 할 만하다. 지난 2003년에는 계양산에 오른 40대 등산객이 군부대 연습용 수류탄 뇌관이 폭발해 중상을 입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이럴진대, 계양산의 진짜 주인들인 동식물들은 어떠하랴. 전체적으로 자연생태계에 미칠 영향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에 대해 그 동안 여기저기서 많은 항의와 진정이 이어졌고, 그에 따른 협의가 있었다. 그런 결과, 2008년 인천시는 도심 네 곳에 분산돼 있는 예비군 훈련장을 시 외곽 한 곳으로 이전 통합하기로 군과 합의했다. 10여 년 넘게 끌어온 협의 결과다. 하지만 이전 예정지역 주민과 이곳 정치인의 반대로 합의된 내용에 따른 사업계획과 예산 승인을 받지 못한 채 이제껏 표류하고 있다. 이젠 문제 제기마저 제대로 들리지 않고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

물론, 시가 자연공원화하기 전에, 이곳에 교육시설이 들어서기 전에 일찍이 자리잡고 있던 군부대와 예비군 훈련장, 나아가 군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당시와 지금은 실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할 것이다. 지금 이곳에는 주민과 학생들, 그리고 이곳을 즐겨 찾는 이들이 주인이 된 지 오래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원래 주인은 당연히 계양산의 동식물과 생태계이다. 군의 사명은 국가와 국민의 안위에 있다. 군은 대국적인 견지에서 계양산을 보호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 보호 대책이 결코 총소리일 수는 없지 않는가.

더 늦기 전에 시와 군의 용단이 시급하다.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양보와 협력도 필수적이다. 다시 관계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도출해야 한다. 총소리가 물러난 곳에는 자연이 숨쉬고 교육과 문화의 현장이 넓혀져야 할 것이다.

계양산에서 더 이상 몸서리쳐지는 총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자. 총소리 대신 새소리가 울리게 하자. 총소리 대신 학생들의 책 읽는 소리, 주민과 등산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게 하자. 그렇게 할 때 시와 군은 거친 항의소리 대신 힘찬 박수소리를 들을 것이다.

 
계양산 육각정

지난 1일 계양산 입구 연무정에서 열린 '계양산 등산로 정비 및 역사문화체험길 조성사업' 착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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