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계절을 두고 떠나는, 간석1동 성락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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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계절을 두고 떠나는, 간석1동 성락아파트
  • 유광식
  • 승인 2021.12.07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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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일기]
(69) 간석1동 성락주택재개발 구역 - 유광식 / 시각예술 작가

 

간석1동 성락아파트 입구, 2021ⓒ유광식
간석1동 성락아파트 입구, 2021ⓒ유광식
성락주택재개발 구역 내 한 골목(통행금지), 2021ⓒ유광식
성락주택재개발 구역 내 한 골목(통행금지), 2021ⓒ유광식

 

찬 바람이 불고 옷깃을 여미게 되는 진짜 겨울이다. 일상 회복의 의미가 조금씩 생기는 듯도 한데, 코로나 확진 증가와 또 하나의 변종 바이러스 출현은 연말의 주된 걱정거리다. 이번 달부터는 세월호 이후 7년 7개월 동안 발이 묶였던 인천~제주 항로를 새 여객화물선 ‘비욘드 트러스트호’가 운항한다고 한다. 사회적 재난 앞에서 우리가 무얼 생각하고 행동해야 했는지 지금도 되묻게 된다.

한 달 전 서구 가정동에는 ‘인천국민안전체험관’도 개관했다. 이 사회가 조금 더 안전한 온도로 감싸여 가길 바란다. 한편 제주로 향하는 생각은 배도 있지만, 귤도 있다. 작년까지는 지인이 제주에 거주해서 신선한 귤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분이 서울로 거주를 옮기는 바람에 이제 어떡하지 했는데,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제주에 거주하는 작가 한 분이 뒷집에서 함께 수확한 귤을 보내고 싶다고 주소를 묻는 통화였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성락주택재개발 구역 내 연립주택가(철거 사전준비), 2021ⓒ유광식
성락주택재개발 구역 내 연립주택가(철거 사전준비), 2021ⓒ유광식
1981년생 간석한진아파트 상가(끝내주는 상가), 2021ⓒ김주혜
1981년생 간석한진아파트 상가(끝내주는 상가), 2021ⓒ김주혜

 

간석동은 서울에서 이주한 첫 번째 나의 장소이다. 구) 희망백화점이 있던 구역이 나의 인천 시작점이었다. 가령 집에서 조금 멀리 간다고 하면 어디일까? 아마도 큰 도로를 1~2개 넘는 정도일 것이다. 예전에 그렇게 넘어간 자리에 간석1동 성락아파트가 있었다. KT인천지사와 남인천우체국이 있는 동네다. 주로 우체국을 이용했다. 한진, 홈타운, 금호 아파트가 그나마 북쪽 기슭에서 넘어오는 조금의 볕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곳이기도. 듬성듬성 작은 공장들과 빨갛게 구운 벽돌 주택이 모여 있고 그 중심에 성락아파트가 있다. 큰 이유야 없지만 아쉬움이 자꾸만 묻어나는 구역이다. 

 

간석동 백운구역(아파트 건설중)에서 바라본 현대홈타운, 2017ⓒ유광식
간석동 백운구역(아파트 건설중)에서 바라본 현대홈타운, 2017ⓒ유광식
성락아파트 건너편 주택가(고양이들과 눈인사), 2021ⓒ김주혜
성락아파트 건너편 주택가(고양이들과 눈인사), 2021ⓒ김주혜

 

올해로 39년을 버틴 5층 아파트는 구) 희망백화점과는 형 동생뻘로 함께 서로를 바라보고 버텼을 것이다. 성락은 현재 철거 중이다. 당혹스러웠던 것은 ‘가동’이 없다. 나, 다, 라, 마동 122세대다. 한동안 궁금했다. 여러 미심쩍은 이유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여 이전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가동’은 없었다. 궁금해진 시점이 하필 철거 즈음이다. 아무튼 그늘진 삶이 묻히고 변화된 세대의 컬러가 입혀질 간석동 성락주택재개발 구역이다. 겨울을 앞두고 철거 장막 안에서 잎을 떨구고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빼꼼히 인사를 건네는데, 너무 찬란해서인지 애처롭기까지 하다.  

 

통행금지 된 성락구역(은행나무도 갇힘), 2021ⓒ유광식
통행금지 된 성락구역(은행나무도 갇힘), 2021ⓒ유광식
주택가 막힌 골목(완만한 경사 구간이었다), 2021ⓒ김주혜
주택가 막힌 골목(완만한 경사 구간이었다), 2021ⓒ김주혜

 

주택을 따라 오르던 석산로 골목에서는 몇 년 전부터 빨간 깃발이 나부꼈다. 바람에 뜯겨 너덜거릴 때쯤 마을은 힘을 잃었고, 대신 도로변 인테리어 업체 빌딩만이 번쩍번쩍해져 갔다. 새집에 들여놓을 상품을 층층이 전시하는 쇼룸의 규모에 놀라면서도 작은 가게였던 ‘순옥이네’와 ‘송이네’는 이사를 잘하였는가 싶다. 까치만이 이쪽저쪽 마지막 소식을 전하고 있었을까? 그 많던 개들의 반김이 없는 조용한 곳이 되었고 날카로운 기계음만이 간혹 귓가에 머무를 따름이다. 

 

철거를 위한 기초준비, 2021ⓒ유광식
철거를 위한 기초준비, 2021ⓒ유광식
성락아파트 앞 어느 인테리어 업체 현수막(빌딩을 통째 사용), 2021ⓒ유광식
성락아파트 앞 어느 인테리어 업체 현수막(빌딩을 통째 사용), 2021ⓒ유광식

 

간혹 간석역에서 내려 성락을 지나 옛 희망백화점을 거쳐 귀가했던 적이 있다. 그늘져 내려오는 그 검정을 이 가을날 노랗게 바꾸어 놓았을 삶의 분투가 대단하다. 그런데 둔탁하기 그지없다. 한 세대가 물러나는 느낌이어서 더더욱 그렇다. 5층 아파트라 더 그렇다. 그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는 공간이라서 그렇다. 놀이터에는 아이가 아닌 어르신이 있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풍경이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맞아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기억만이 층을 쌓는다. 

 

성락아파트 내 어린이 놀이터, 2020ⓒ유광식
성락아파트 내 어린이 놀이터, 2020ⓒ유광식
성락아파트 건너 어느 골프연습장(대낮에 딱딱~ 어른 놀이터), 2021ⓒ김주혜
성락아파트 건너 어느 골프연습장(대낮에 딱딱~ 어른 놀이터), 2021ⓒ김주혜

 

다시금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의 조짐이 심상찮다. 또한 추운 계절을 어찌 지낼까 싶은 계층도 걱정된다. 자주 눈에 띄던 연탄배달 풍경도 이젠 국보급인지 보기 드물다. 내 주변이 비워지고 얼어가는 마음을 녹일 온정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뜨겁게 달궈진 노란 계절만 남기고 떠난 ‘성락’을 길게 기억하고 싶다. 이제 12월이다. 

 

간석2동 구) 희망백화점이던 올리브아울렛(총폐업이란?), 2016ⓒ유광식
간석2동 구) 희망백화점이던 올리브아울렛(총폐업이란?), 2016ⓒ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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