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도성길을 걸으며 한 해를 정리하다
상태바
한양 도성길을 걸으며 한 해를 정리하다
  • 석의준 시민기자
  • 승인 2021.12.10 0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토기획]
남산구간 길 - 광희문에서 숭례문 까지

 

서울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광희문
서울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광희문

 

  코로나로 시작하여 코로나로 저물어 가는 어수선한 한 해이지만, 다 가기 전에 조선 5백년 왕조의 도읍지 한양도성길을 걷고 싶었다.

  국가와 개인의 흥망성쇠를 생각해 본다.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마음이 다소라도 씻기어 나가기를 기대하며 발길을 재촉한다. 

여러 코스 중에서 오늘은 남쪽 지역 광희문에서 남산을 걸쳐 숭례문(현 남대문)까지 가는 남산구간(5.4km)을 걷기로 했다. 2시간 정도가 예상된다. 

 

서울지하철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3번 출구를 나서자 광희문의 아담한 모습이 바로 보인다. 광희문은 태조 5년(1396) 도성 창건 때 동남쪽에 세운 소문(남소문)이다. 

그 곳에서 시작하여 천주교 신당동교회 앞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니 운치있게 복원한 성곽 옆으로 숲길이 쾌적하다. 길옆에 아기자기하게 예쁜 가게들도 늘어서 있다.

 

한양도성(사적 10호)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이며, 외부의 침입을 방어키 위해 축성한 성으로 태조 5년(1396)에 축조된 후 여러 차례 증개축을 했다.

 

 

태조실록 권9, 1396년(태조 5) 1월 9일 자에 「처음으로 도성을 쌓게 했다. 이미 성터를 측량하여 자호(字號)를 나누어 정하였는데, 백악의 동쪽에서 천자(天字)로 시작하여 백악의 서쪽으로 조자(弔字)에서 그치게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세종실록 권15, 1422(세종 4) 2월 23일 자에 「도성의 역사를 마쳤다. 성을 돌로 쌓았는데, 험지는 높이가 1.6척이요, 그 다음으로 높은 곳이 29척이요, 평지는 높이가 23척이었다.」 고 나와 있다.

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이 있는데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이 됐고, 전체구간도 73.6%(13.7km)만 남아 있다. 도성은 4개의 산(백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 능선을 따라 평지, 산지 및 구릉지를 연결했는데 6개의 성문, 1개의 수문이 보존되어 있다.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앞 장충교회 앞에서면 장충체육관 전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장충체육관은 1963년 2월1일 개관, 한국에서 처음 세워진 돔형 경기장으로 원래는 국군체육관을 서울시가 인수하여 현재까지 실내경기 위주로 사용하고 있다. 지름이 80m, 수용인원 8,000명으로 그 옛날 이곳에서 벌어졌던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와 안토니오 이노키 선수와의 경기는 시니어 세대에겐 지금도 생생히 기억된다. 지금은 프로배구 경기가 3-4일 간격으로 진행되고 있다.

 

 

동대입구역에서 내리신 분은 5번 출구로 나와 체육관 왼쪽 길로 올라서면 된다. 신라면세점을 지나 신라호텔 경계를 따라 올라가면 왼쪽은 서울의 동쪽 광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고, 오른 쪽은 신라호텔 정원이 내 집처럼 친숙하게 잡힌다. 사적인 공간임에도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산 팔각정을 지나면 성곽이 멸실되어 잠시 끊기는데, 골프장이 있는 오른 쪽으로 꺾어 나오면 반야트리클럽 건물이 나온다. 거기서부터 벌써 남산타워가 서서히 눈에 들기 시작한다. 반야트리클럽 앞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남산길로 접어들면 국립극장이 나온다.

남산길을 조금 올라 왼편으로 빠지는데 바로 거기서 성곽이 다시 나타난다.

조금 뒤 이 구간의 가장 가파른 길이 나타난다. 데크로 계단을 만들어 놨는데 약 600여개의 계단이 있어 가장 힘들어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통과해 전망대에 서면 서울 북동쪽이 훤히 보인다. 거기서 안내된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남산길로 다시 접어드는데 그 직전에 체육공원이 나온다.

남산길을 따라 꼭대기에 닿으면 타워와 광장이 나타난다. 그 옆에 봉수대가 있는데 봉수대 앞을 옛날 봉수요원 복장을 한 대원이 지키고 있다.

봉수대는 통신 시설이 없던 시절 유일한 통신수단이다. 적이 나타났을 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알렸다. 부산에 적이 나타나면 이곳까지 12시간 만에 그 상황이 연락됐다고 한다. 우리의 삶이 편리함과 함께 얼마나 바삐 돌아가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 옆엔 연인들의 약속 징표로 추억의 자물쇠(열쇠)가 보이는데, 마음을 담은 글을 적어 놓은 모양들이 정겨워 보인다. 일부 자물쇠는 떨어져 홀로 나 뒹굴기도 하는데, 그 때의 사람들이 지금도 그 때의 마음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발걸음을 서둘렀다. 조금 내려가니 한양도성 유적 전시관이 나온다. 실제 복원된 성곽을 야외에 개방된 형태로 보여줘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며, 시기별로 조금씩 다른 모습이 보인다.

남산공원 한 가운데 (구)남산어린이 회관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타워와 함께 남산의 랜드마크다. 1970년 육영재단이 어린이를 위해 준공한 후 얼마 뒤부터 88년까지 국립 중앙도서관으로 사용된 적도 있다. 지금은 서울시교육청의 교육정보연구원으로 쓰고 있는데 연대는 짧지만 건물 자체의 존재감이 워낙 커 근대문화재로 지정될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올해 서울시 미래 유산으로 지정이 되었다.

옆에는 안중근 의사의 동상과 그분의 어록이 적힌 돌탑들이 여럿 보였다. 하나하나 살피지 않아도 그 분의 애국정신은 모두의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을 것이다.

 

이어서 아래 백범광장에 닿았다. 백범 선생의 동상은 민족 화합의지를 드러내듯이 엄숙하면서도 인자해 보였다. 그의 사상을 이어가기라도 하듯 동상 앞에는 여러 마리의 비둘기가 평화롭게 모이를 쪼고 있다. 같은 시기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시영 선생의 동상도 그 옆에 자리하고 있다.

멀리 힐튼호텔 빌딩까지 성곽이 이어졌다.

 

남산공원 서쪽 시발점을 나와 SK남산빌딩 뒤에서 성곽은 끊겼다. 드디어 숭례문(남대문)이 눈에 확 들어온다.

오늘 남산코스 5.4km 구간은 이곳이 끝이다

1시가 넘어 남대문 시장에 도착했다. 시장을 둘러본 뒤 80년 동안 4대가 운영하는 꼬리곰탕 집에서 늦은 점심을 했다.

올 해가 가기 전에 두번 째로 흥인지문 코스에 도전하리라 생각하며 귀가길에 오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