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어린 소년의 멱살을 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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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어린 소년의 멱살을 쥔 이유”
  • 최원영
  • 승인 2021.12.22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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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31화

 

타인의 ‘행위’를 보고 우리는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 판단을 ‘사실’이라고 왜곡해버립니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깊어지곤 합니다.

《주는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조명연, 정병덕)에 나오는 사례를 전해드릴게요.

젊고 유능한 사업가가 최고급 차 타고 길을 가다가 벽돌 한 장이 날라와 맞았다. 화난 그는 내려서 소년의 멱살 쥔다. “도대체 무슨 짓이냐? 네 부모님께 가자.”

이런 경우를 우리가 당했더라도 그랬을 겁니다.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그런데 아이가 이렇게 말한다면 우리는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제가 벽돌을 던지지 않았다면 아무도 차를 세우지 않았을 거예요. 저기 제 형이 휠체어에서 굴러떨어졌는데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랬어요. 정말 죄송해요.”라고요.

청년 사업가는 소년의 이 말을 듣고 어떤 생각과 행동을 했을까요?

청년 사업가는 뭔가 뜨거운 게 올라온다. 말없이 소년의 형을 올려준다. 그 후로도 차를 수리하지 않았다. 상처 난 차를 볼 때마다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저자는 이 글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제안합니다.

부와 명예, 권력을 위해 너무 앞만 보고 빨리 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면 주변을 보지 못한다. 그럴 때 우리에게 날아오는 벽돌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를 기다리는 도움의 손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자.

늘 선택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시대입니다. 불편하지만 어느 한쪽을 지지해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한쪽을 지지하면 다른 한쪽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가만히 있으면 회색 인간 취급도 받습니다. 이렇게 삶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유머 테크》(이상근)에도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질문을 던지는 글이 있습니다.

랍비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지혜와 돈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소중할까?”

“물론 지혜 쪽이 아닐까?”

“그런데 지혜 쪽이 더 소중하다면 어째서 지혜로운 학자들이 거만하게 구는 부자들에게 늘 아쉬운 소리나 하며 굽신거리는 거지?”

“그야 간단하지. 지혜로운 사람은 돈의 고마움을 잘 알지만, 부자들은 지혜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 법이거든.”

이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돈’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돈만큼 소중한 게 없다고 여긴다는 사실을요. 이것이 이미 방송에서 몇 차례 말씀드린 시계추의 ‘지향성’입니다. 모든 것을 돈과 연관해 생각할 뿐,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헤아릴 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돈도 필요하지만, 지혜도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요.

오늘 우리는 한 가지 지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지혜는, 세상이 늘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느 하나를 선택하든 그 선택에 만족하면 된다는 것, 그리고 내 선택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판단만큼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지혜입니다. 나와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우리만큼이나 소중한 사람들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 겁니다.

이제 우리는 “청년이 어린 소년의 멱살을 쥔 이유”라는 제목이 무엇을 시사하는지를 압니다.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 너머에 있는 특별한 상황은 없는지, 그것을 헤아리는 여유가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삶도 변화할 수 있다는 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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