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초의 페미니스트 잡지 <세이토>의 첫 문장은, 10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일본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우리나라 신여성의 화신인 나혜석은 일본 유학시절을 회고하며 “나에게 천재적인 이상을 심은 것은 <세이토>의 발행인 라이초였다”라고 단언했다.
태초에, 여성은 실로 태양이었다.
진정한 사람이었다,
지금의 여성은 달이다.
타(他)에 의해 살고, 타(他)에 의해 빛나는 병자와 같은 창백한 얼굴의 달이다.
우리들은 매몰당한 자신의 태양을 지금이야말로 되찾아야 한다.
숨겨진 나의 태양을, 잠겨있는 천재(天才)를 발현하라.
1916년까지 발행된 동인지 <세이토>에는 성에 대한 자기결정권, 가사전담의 부당성, 아동양육의 사회적 책임, 경제적 독립의 필요성 등 그동안 거론되지 않았던 여성의제가 모두 담겨있었다. 자자한 악명 덕분에 세이토는 고작 2~3천 부수밖에 팔리지 않았지만, 거기에 실린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지금은 지극히 당연한 명제가 100년 전에는 여성을 타락시킨다는 오명과 비난의 대상이었지만, 세이토의 빛나는 정신은 후대의 많은 여성에게 귀감이 되었다.
나혜석에게도 그 정신은 이어졌고, 일본에서 돌아온 나혜석은 2번에 걸쳐 문제적 글을 발행했다. 1923년 <동명>이라는 잡지에 <모(母)된 감상기>를 적으며, 그는 “모성애는 본능이 아니다”라고 모성애 신화를 비판했다. 모성은 저절로 획득하는 형질이 아니며, 엄마의 희생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자식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부정할 수 없지만, 임신출산으로 인한 고통과 양육에 따르는 희생을 ‘모성’이라는 두 글자로 묵살하는 건 옳지 못하다. 그는 ‘숭고한 모성애’는 여성을 옭아매기 위한 이데올로기라며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에 조선 사회는 “임신은 여성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일”이라며 발칵 뒤집어졌지만, 나혜석은 반박 글을 다시 재반박하며 조선 여성의 삶을 개진하려고 노력했다.
거칠 것 없이 살아오던 나혜석은 1930년 불행했던 10년간의 결혼생활을 청산하면서 모든 명성을 잃었다. 조선 사회는 이혼에 관대하지 못했고, 이혼의 모든 원인을 나혜석에게서만 찾았다. 그 상황 속에서 그가 택한 것은 부당한 사회적 편견에 굴복하는 게 아니라, 지금도 명문으로 회자되는 장문의 <이혼 고백장>을 잡지 <삼천리>에 기고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혼 과정을 소상하게 밝힌 이혼 고백장을 공개하면서 재산분할도 공개 청구했다. 조선 여성의 약혼과 결혼, 이혼에 이르는 과정이 상세하게 담긴 이 고백서에는 당대의 불평등한 남녀관계가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이건 나혜석뿐 아니라 모든 조선 여성이 겪고 있는 현실이었다.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라이초, 나혜석의 정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다. 굴하지 않고 페미니즘을 발언하고, 그를 실천하는 여성은 여전히 오욕과 불명예의 대상이다.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한 20대 여성은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너 페미야?’라는 말은 ‘너 일베야?’라는 말과 똑같이 굴욕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응답했다.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여자가 항상 우선시돼야 한다면서 방구석에 혼자 앉아서 남자들 얘기에 열등감 폭발하는 애들이거나 여자 키보드 워리어라고 여겨진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8년 공개한 <성 불평등과 남성의 삶의 질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남성의 반페미니즘 의식(5점 만점)은 20대 3.78, 30대 3.61, 40대 3.24, 50대 3.06으로 모두 3점대를 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김경희 중앙대 교수와 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9년 공개한 <새로운 세대의 의식과 태도: 2030세대 젠더 및 사회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라고 응답한 2030세대 남성이 평균 70%를 넘었고 ‘정당한 요구’라고 생각한 남성이 평균 20~30%에 불과하다는 게 보인다.
이런 사회적 풍토 속에서 페미니즘을 말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어렵더라도 반드시 해내야하는 일이다. 나혜석처럼 반박에 반박을 거듭하더라도 성별갈등의 지점을 파헤치고, 여성이 처한 현실을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성애와 이혼이 한 개인의 일이 아니듯이, 대한민국 인구의 반이 겪고 있는 일은 반드시 회자될 필요가 있다. 그러다보면 100년 전의 여성이 바랐듯이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숨겨진 나의 태양을, 잠겨있는 천재(天才)를 발현하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