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한 택배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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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한 택배 멈춤
  • 노영민
  • 승인 2022.01.13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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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칼럼]
노영민 / 노무사, 민주노총인천본부 노동법률상담소

 

요즘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필요한 것들이 있을 때 배달 이용은 필수다. 예전에도 종종 이용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배달 이용은 생활의 일부가 됐다.

나는 음식 배달은 잘 이용하지 않지만, 물건을 구매할 때는 대부분 택배를 이용한다. 택배 물품이 도착할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물건을 배송할 수 있는지 놀라고 감탄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누리는 편안함 뒤에는 택배 노동자들의 땀과 노동과 죽음이 있음을.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서 택배 노동자들의 업무가 크게 늘었고 노동자들이 과로로 잇따라 숨졌다(지난 2년간 택배 노동자 21명이 과로사했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의 가장 큰 원인은 택배 노동자들이 무상으로 해야 했던 분류작업이다. 그동안 택배 노동자들은 적게는 하루 2시간, 많게는 5~6시간이나 소요되는 분류작업을 무상으로 해야만 했다. 죽지 않고 일하기를 바라는 택배 노동자들은 분류작업 인력투입 등 대책 마련을 요구했고 택배노조와 택배사, 정부·여당이 참여한 택배 사회적 합의 기구는 지난해 1월 말 분류작업 책임을 택배사로 명시한 1차 사회적 합의를 했다.

택배 노동자들은 더 나아가 2차 합의를 통해 분류작업 제외 시점이 빨리 확정되길 바랐지만, 정부와 택배사들은 약속한 분류 인력 충원을 이행하지 않았고 오히려 인력 충원 완료 시점을 2022년 6월로 늦추려 했다. 특히, 택배사들은 인력 충원을 이유로 작년 4월에 택배 요금을 올려놓고도, 계속 분류작업을 시켰다. 그로 인해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는 계속됐다.

택배 노동자들은 다시 투쟁에 나섰다. 택배노조가 작년 6월 분류작업을 거부하고 파업과 상경투쟁을 벌였고 결국 작년 6월 22일에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 2차 사회적 합의문’이 발표됐다. 2차 합의의 핵심 내용은 분류 인력 충원의 완료 시점을 작년 12월 31일까지로 정한 것이다. 올해 1월 1일부터 택배기사들이 분류작업에서 손을 떼도록 한 것이다. 택배기사들을 분류작업에서 제외하고, 노동시간을 주 60시간으로 제한하며, 고용·산재 보험을 적용키로 했다. 이를 위한 비용은 택배 요금을 인상해(건당 170원) 충당하기로 했다. 또한 이 합의를 반영한 표준계약서를 도입하고, 택배기사의 고용을 최소 6년간 보장하기로 했다.

그러나 택배 업계 1위(점유율 약 48%)인 CJ대한통운은 170원 요금 인상분 중 고작 60원가량만을 분류 인력 충원과 보험료로 지원하고, 나머지는 회사가 챙기고 있다. 2021년 4월 택배 요금이 오른 후 회사의 영업이익은 큰 폭(작년 3분기에 이미 2021년 전체 영업이익을 넘어서는 1,313억 원)으로 올랐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분류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택배기사들의 집화(판매자에게 물건을 받아 터미널로 옮기는 것) 수수료를 삭감해, 집화 업무 비중이 높은 노동자들의 임금이 월 40만 원 이상 줄었다고 한다. 지난 20년 넘게 임금(수수료)을 한 번도 올리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더욱이 CJ대한통운 측은 ‘당일 배송’, ‘터미널 도착 상품의 무조건 배송’, ‘주 6일제’ 등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심화시킬 내용을 명시한 표준계약서 부속합의서를 국토교통부에 제출했다. 작년 7월 노사정이 합의한 표준계약서에 사측이 일방적으로 부속 조항을 추가한 것인데, CJ대한통운 대리점들이 택배 노동자들과 계약할 때 이 문서를 적용하겠다고 한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이를 승인했다. 이 부속합의서가 적용되면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에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노동자들이 12월 28일부터 무기한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노동자들은 합의 이행은커녕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강요하는 CJ대한통운 사측에 맞서 93.6%의 높은 찬성률로 파업을 가결했다.

택배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자 그동안 노동자들의 과로사에는 눈감던 보수 언론과 사용자단체가 파업을 비난하고 나섰다. 보수 언론은 CJ대한통운 택배기사 연봉이 6,500만 원으로 업계 최고 수준인데, 또 파업한다고 비난하고, 경총은 감염병 확산과 경제 위기를 들먹이며 노동자들을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했다.

하지만 택배 노동자들은 코로나19 감염과 과로사 위험을 무릅쓰고 필수서비스를 제공해왔다. 감사는 못 할지언정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특수고용으로 분류되는 택배 노동자들은 회사가 내야 마땅한 차량 유지비와 각종 업무 관련 비용을 자신이 부담하고 대리점주에게 수수료를 떼어먹히기도 한다. 이런 비용을 뺀 연평균 순소득은 4,400만 원 정도인데, 이조차 주당 70시간(2020년 8월 고용노동부 실태조사)을 일해야 쥘 수 있는 액수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 수준밖에 안 된다.

택배노조는 11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주 내에 파업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다시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문제가 발생하고, 설 택배대란이 벌어져 국민들이 불편을 겪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며, “결국 택배 노동자들은 ‘살기 위한 택배 멈춤’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죽지 않고 일하겠다는 택배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이 담긴 ‘살기 위한 택배 멈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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