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 따라 100년 전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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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따라 100년 전 시간여행
  • 허회숙 시민기자
  • 승인 2022.01.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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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뉴스] 설 연휴 가볼만한 근교
- 한 세기 전 우리의 삶이 숨 쉬고 있는 장흥 청암민속박물관

 

설 연휴를 하루 앞둔 28일 오후, 서해안고속도로의 귀성 차량 행렬로 꽈 차있는 사진이 신문지면을 메우고 있다. 코로나 정국으로 2년째 설날 귀성이 여의치 않은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명절이면 어김없이 민족 대이동을 한다. 평소 잊고 살았던 고향과 친지의 따스한 품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이 연어의 회귀본능처럼 우리민족을 고향 산천으로 이끄는 것 이 아닐까.

설 명절에 온 가족이 찾아가보면 좋을 만한 곳이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장흥역 가까이 있다. 장흥관광단지 안에 있는 2천평 규모의 사설 민속박물관인 청암민속박물관(031-855-5100.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83-5)이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첫째, 셋째, 넷째 월요일은 휴관이다. 매표소는 조금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있었다. 어린이 3,000원, 청장년 5,000원이다.

필자가 요근래 입장료(5,000원)를 내고 들어간 최초의 박물관이기도 하다.

1월 21일 오전, 아직 눈이 소복히 쌓인 철길을 따라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났다. 총 6개의 테마관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박물관 입구 길 옆쪽으로는 소나무들과 석탑들이 서있고 지난 가을까지 자태를 뽐냈을 온갖 꽃나무들이 흰 눈 속에 포근한 잠을 자며 새 봄을 기다리고 있다.

기찻길의 오른 쪽 길 가에 보리수 다방이 보인다.

왼 쪽으로는 칠이 다 벗겨진 고물열차가 서있다. 새마을호 열차라는데 지난 2년간 코로나 때문에 열차 승객이 없어서였던지 폐차 직전이다.

너무 낡아 탈 엄두도 나지 않았으나 그래도 열차에 올라보니 겉으로 보던 것보다는 아늑하다.

열차가 도착한 역 앞에 남원집이란 왕대포집이 있다. 보리수 다방에서 레지 언니의 간드러진 웃음과 함께 뜨거운 커피 한잔으로 기차 시간 기다리는 무료함을 달래고 새마을호로 달려간 고향. 역 앞의 남원 집에서 대포 한 사발과 구수한 고향 아지매의 사투리로 출출해진 속과 객지에서의 헛헛함을 달래며 이 땅의 남정네들은 집으로 향했으리라.

길을 따라 조금 더 간 곳에 박물관 건물이 있다.

실내에는 온갖 잡동사니들,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다.

한 구석의 뮤직 박스에는 오래된 LP 판에 둘러싸여 멋쟁이 디제이 오빠가 보인다.

약봉지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오래된 옛날 한약방에서 어린아이를 치료하는 한의사의 모습도 보인다.

피아노 건반같이 생긴 층계를 올라 둘러보니 기기묘묘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이층에서 내려다보니 이곳이 바로 요술의 방이지 싶다.

밖으로 나오니 연탄집도 구둣방도, 리발소도 사진관도 보인다. 담배 가게에는 옛날 담배가 진열되어 있다.

테마관에 들어서니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조개탄 난로위에 알미늄 도시락이 쌓여데워지고 있는 초등학교 교실 속에서 주판을 옆에 놓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모습이 보인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곳은 5남매의 겨울 밤이다. 3남매가 아랫목으로 발을 두고 한 이불속에 누워있는 안방의 모습이었다. 막내는 요강을 타고 앉아 응가를 하고 있고 아직 숙제를 끝내지 못했는지 꼬마 하나는 구석의 책상 대용 궤짝인가에 책을 펴놓고 있는데 표정이 해맑다. 삯바느질하는 엄마는 받아놓은 일감을 쌓아놓고 열심히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애들 머리맡에는 변변치 못한 저녁밥을 먹고 긴 겨울 밤 배고파하는 애들에게 먹일 밤참거리가 담긴 조그마한 상이 상보에 덮혀 있다.

통에 담긴 물에 들어앉아 더위를 피하는 꼬마, 옷을 벗고 두 팔 짚고 마당에 엎드린 큰 동생 등에 바가지로 물을 뿌려 주며 ‘등목’을 시키는 큰 누나 모습이 보인다.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등에 찬물 한바가지 끼얹으며 ‘어이쿠 시원하다’를 연발하던 우리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서당에서는 장난꾸러기 한 놈은 훈장께 종아리를 맞고 있고, 한 놈은 무릎 꿇은 채 두 손 들고 벌을 서고 있다.

꼬마 신랑 장가가는 날 테마관에 들어가니 새 색씨 보다 몇 살 어린 꼬마 신랑이 그래도 의젓한 모습으로 새 색씨 족두리를 벗기고 있다.

첫날밤을 엿보느라 창호지에 침을 발라 뚫고 들여다보며 킥킥거리는 짖꿎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정겹다.

우리가 저렇게 살던 시절이 100년도 안 지났는데 우리 아이들은 옛날 사진으로만 그 모습을 보게 변했다.

문화일보(2001.1.19)와 경향신문(2002.6.10)에 의하면 청암(정복모 관장)은 어려서부터 ‘쓸모없는 것’들에 관심과 집착이 컸다. 1950년 한국전쟁 유복자로 태어난 청암은 1970년 대 초 대학생 시절 무전여행을 다니면서부터 시골 곳곳에서 버려지는 온갖 민속생활용품을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20여년동안 모은 생활민속품들을 장흥유원지 비닐하우스 속에서 손님들에게 관람하게 한 것이 박물관의 시작이었다. 1999년에 드디어 목조건물 200여평, 대지 2,000여평의 민속박물관이 탄생했다.

넓은 정원에는 120여 그루의 분재형 소나무 숲과 기찻길, 고풍스러운 탑들이 어우러져 있다. 전시관 안팎에는 물레방아, 탈곡기, 돌절구, 탑, 장독대와 삼태기, 호롱불, 써레, 씨아, 자귀, 연자쇠, 동고리, 풍구, 고드렛돌, 됫박, 떡메, 물허벅, 신발꼴, 망태 등 12,000여점의 옛 생활용품들이 있다.

야외전시관에는 연자방앗간과 탑, 냇가에서 빨래하는 여인상과 뻥튀기 장사 모형, 인형의 집 등을 배치하고 전통 민속놀이도 할 수 있는 넓은 마당도 갖추고 있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까지는 어린이 민속체험교실과 민속 관련 세미나도 활발하게 이루어 졌다고 한다.

오랜만에 어린 시절과 젊은 날의 추억에 젖을 수 있어서 감회가 깊다. 어린애 손을 잡은 젊은 부모들이나 노령 세대들이 잠시나마 지난 시절을 반추해 보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

하루속히 이 비정상적이 코로나 정국에서 벗어나온 가족이 둘러앉아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에서의 행복과 나들이가 자유롭게 되기를 청암민속박물관에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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