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맞는 설날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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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맞는 설날 단상
  • 전갑남
  • 승인 2022.02.0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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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전갑남 / 전 인천당하중학교 교장
사진 출처 : 유한양행 사보 '건강의 벗' 1월호 표지
사진 출처 : 유한양행 사보 '건강의 벗' 1월호 표지

 

"까치 까치 설날은! ~"

내 유년시절, 윤극영의 동요 <설날>은 설날을 며칠 앞두고부터 손꼽아 기다리면서 흥얼거리며 불렀던 동요이다.

해가 바뀌는 이치는 늘 그대로인데,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코로나가 창궐하기 이전과 이후만 비교해도 그 변화를 실감하고도 남는다.

우리 민족의 대명절 설날에는 고향을 찾아서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정을 나누며 한 해를 시작했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 확산으로 떨어져 사는 가족끼리 모이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우리 일상이 이렇게 되리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살다 살다 이제는 명절 때 공원묘지에 성묘하는 일까지 사이버로 대신하라는 생경한 일이 벌어졌다. 코로나가 명절 분위기마저 바꾸어놓은 것이다.

그 옛날 설날 풍경이 눈에 선하다. 우리 집은 명절 때면 출가외인인 누나만 빼고 형제들이 다 모였다. 집안이 떠들썩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먹고사는 걱정을 해야 할 만큼 부족하게 지내지 않았다.

설날이면 부모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설빔으로 새 옷을 사입혔다. 남한테 기죽지 말라고 물색 좋은 때때옷으로! 옷을 사 온 날 바로 입고 싶었는데, 어머니는 앞다지 장롱에다 꼭꼭 숨겨두고 설날 아침에 꺼냈다. 모든 것이 새것인 설날, 그때 입었던 산뜻한 기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설을 앞둔 대목장에 부모님은 쇠고기, 돼지고기, 생선, 과일 등을 사와 넉넉한 차례상을 준비하였다.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콩나물을 기르고, 막걸리도 빚었다. 누나들도 어머니를 도와 식혜와 조청을 달였다. 솥뚜껑처럼 생긴 번철에 돼지비계 기름으로 명태전, 녹두전 같은 전을 부쳤다. 설 전날은 온 집안이 고소한 기름 냄새로 진동했다.

설날 아침. 날도 새기 전에 우리 형제들은 안방 방문을 활짝 열고 마루에서 일렬로 서 부모님께 세배를 드렸다. 부모님도 곱게 한복을 다려 입으셨다.

"아부이, 어무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해년마다 건네는 부모님의 덕담은 늘 한결같았다.

"건강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 공부 착실히 해야 하고!"

세배가 끝나면 여느 때 주던 용돈보다 많은 세뱃돈을 주셨다. 막내인 나는 세뱃돈에 관심이 많았다.

어머니와 누나들은 깨끗이 닦은 목기 제기에 음식을 담아 차례상을 정갈하게 진설하였다. 두루마기를 입고 건을 쓰신 아버지는 조상님께 경건하게 제를 올렸다.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가 하는 대로 따라 했다. 빨리 끝났으면 좋으련만 아버지는 쉽게 끝내지 않았다. 격식을 소홀히 않으셨다.

차례가 한참 만에 끝난 뒤, 쇠고기를 넣어 끓인 떡국과 모처럼 맛보는 불고기와 생선 등 갖가지 음식은 진미였다. "까치 까치 설날은! ~"를 부르며 기다린 이유가 있었다.

그땐 지금에 비하면 가난하고 불편한 게 많은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부모님을 공경하고 동기간에 우애는 돈독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 모이는 것이 어렵게 된 어수선한 세상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설날은 찾아왔다. 세상이 변하면 풍습도 변한다지만,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온 아름다운 풍습이 점점 사라져가는 세태가 아쉽다.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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