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없는, 공정한 사회를 꿈꾸는 대선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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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없는, 공정한 사회를 꿈꾸는 대선 후보
  • 박교연
  • 승인 2022.02.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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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2월 15일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10대 공약에서 제외됐다는 언론보도와 관련하여 “여가부 폐지는 자신의 핵심공약”이라고 밝혔다. 가정에 배포되는 선거 공보물에 위 공약이 빠진 건 홍보수단의 특성에 따른 맞춤형 전략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윤 후보는 “청년이 내일을 꿈꾸고 국민이 공감하는 공정한 사회를 반드시 만들어내겠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거기에 여성청년은, 여성국민은 없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여성가족부의 미래가 화두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은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한다는 공약을 걸었고, 국민의 힘은 여가부를 보건복지부 등 타 부처로의 해체 및 이관한다는 공약을 걸었다. 2001년 신설한 뒤 20년 동안 쌓아올린 여가부의 업적은 대선경쟁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여가부는 성매매방지법 제정, 호주제 폐지, 모성보호 3법 도입과 남녀고용평등법 개정·보완 등 굵직한 일들에 중요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최근 여가부는 남녀갈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그 존재를 부정당하고 있다.

2022년 여가부 예산은 1조4650억원으로 정부 전체 예산의 0.24%에 불과하다. 18부18청 중 한 부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가 고작 0.24%의 예산만을 편성 받는 건 몹시 충격적인 일이다. 심지어 “여성만을 위한 부처”라는 비판과는 달리, 예산의 대부분은 61.9%(9063억원)는 아동양육비 등 한부모 가족과 1인 가구 지원, 아이돌봄 서비스 등 남녀 구분 없는 가족관련 정책에 쓰인다. 그 다음으로 많은 예산(18.5%, 2716억원)은 위기청소년, 학교 밖 청소년 등을 지원하는 청소년 관련 사업에 돌아간다. 여성 및 성평등에 할당된 예산은 고작해야 7.2%(1055억원)다. 그리고 이중에서 상당 부분(737억원)이 다시 경력단절여성 지원에 투입된다.

결국 여가부 예산의 상당수가 모두를 위한 최소한의 복지로 쓰이고 있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투자는 고작해야 연간 300억 원 정도이다. 고작 300억 원으로 대한민국 전역을 남녀갈등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여가부 예산의 150배인 예산 209조를 쓰고도 아직까지 저출생 문제해결의 희미한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부처는 해산이 더 시급할 것이다. 막대한 예산 중 일부를 ‘대한민국 출산지도’ 같은 걸 만드는데 쓴 걸 보면, 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지 명백하다. 2022년 출생정책에도 여전히 여성은 많은 부분에서 간과되어있다.

전 세계 97개국에는 ‘여성·성평등’ 관련 장관급 부처가 있다. 다양성과 성평등 관점은 세계적으로 점점 중요해지는 가치다. 가치실천과 가치소비가 현세대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지금, 기업과 콘텐츠 창작자 모두 변화하는 세계적 동향에 맞추고 있다. 그런데 한류열풍으로 주요 문화 수출국 중 하나가 된 한국에서 ‘안티 페미니즘’ 광풍이 부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그것을 대선후보가 공공연하게 밝히는 건 더더욱 불가해하다.

미 언론인 파리드 자카리아는 지난 1월 24일 CNN방송에서 ‘한국의 놀라운 반페미니스트 운동’이라는 제목으로 이 문제를 다뤘다.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남성의 권리를 신장해야 한다는 운동이 나오고 있다. 남성인권신장운동은 온라인에서 부채질되고 윤석열 및 우파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적인 구애를 받으며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CNN은 “작년 2021년 5월 조사에 따르면, 79%에 이르는 20대 남성이 자신들이 심각한 성차별의 피해자라고 느낀다. 하지만 한국은 2020년 기준 선진국 중 성별 임금 격차(31.5%)가 가장 크고, 상장사 여성 임원 비율은 5%밖에 안 되는 나라”라며 “이 나라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 공약과 더불어 “청년이 내일을 꿈꾸고 국민이 공감하는 공정한 사회를 반드시 만들어내겠다”는 다짐을 보면, 아마도 여가부 폐지의 대안은 저출생 대책에 주력한 인구가족부가 될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인구가족부는 여전히 여성 관점 없는 출생정책으로 그동안 쓴 209조도 모자라 여가부 예산까지 완전히 낭비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 포함되지 않은 청년정책 사이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은 지금보다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여성을 가정에 귀속된 존재로 만들려는 국가적 사회적 압박은 지금보다 더욱 거세질 것이다.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공부문에서 여성의 진급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은 점차 완화돼왔다. 여성 대표성 제고와 양성평등 조직문화 조성은, 평등한 조직과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핵심 과제이자, 공공부문의 선도적 노력과 성과가 민간부문까지 확대되게 하는 성평등정책의 시발점이다.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의지를 가지고 공공부문 여성참여율 확대를 증진해야했다.

그에 현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실질적 성평등 사회 실현’의 핵심과제로 삼아 ‘공공부문 여성대표성 제고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그 결과 2020년 기준 중앙부처·지방자치단체 과장급에서 여성 비율은 5명 중 1명 이상으로 나타났다. 2017년에 두 분야에서 여성 비율이 15%에 미치지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3년 만에 괄목할만한 성과다. 그리고 여가부의 ‘2021년도 상반기 이행점검 결과’에 따르면, 지방직 과장급에서 여성 비율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22.7%, 지방공기업 관리자는 27.1%로 집계됐다. 이는 다음해 목표치까지 넘은 수준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의 5년간의 노력은 성평등을 위한 씨앗이다. 이는 반드시 다음 행정부에 전달되어 꽃을 피워야한다. 하지만 최근 20대 대선을 보면, 5년 만에 구조적 성차별은 허상이 됐다. 매일같이 언론은 여성은 안중에도 없고 20대 남성에 관한 기사만 수백 개씩 쏟아내고 있다. 그에 맞춰 한 후보는 성평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공약도, 발언도 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앞으로의 대한민국에 여성은 없을 전망이다. 여가부도 없고, 여성도 없는, 그가 꿈꾸는 공정한 사회가 도대체 어떤 모습일지 너무나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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