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바람개비 만들고, 영종역사관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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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바람개비 만들고, 영종역사관 돌아보기
  • 김정형 시민기자
  • 승인 2022.02.2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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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역사관, 3.1절 맞아 태극기 바람개비 만들기 행사

3.1 절을 맞이하며 영종역사관이 226-27일 태극기 바람개비 만들기 행사를 가졌다.

바람도 많고 흐린 날씨였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많은 사람들이 영종역사관을 찾았다.

태극기 바람개비 만들기는 크기에 따라 어른용과 어린이용으로 나뉘었다. 태극기의 아름다움과 건 곤 감 리 청 홍 백의 철학적 의미를 되새기며 만들어보는 태극기 바람개비. 이제 태극기도 바람을 타는 시대가 되었다.

2층 세미나실에서 친절한 직원의 도움을 받아 가며 어렵지 않게 만들었다. 잘 만들어진 태극기 바람개비는 아이들의 손에서 바람을 타고 야외에서 잘 돌아간다. 3.1 절을 맞이하여 백 년 전에 국민의 손에 들여진 국기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영종도 일대 에서 일어난 3.28 독립 운동을 알아본다.

3.1 운동 당시 조용원씨는 인천시 중구 남북동 868 조병수 가옥(현재 인천시 문화재 16. 용유도에 위치)에서 항일투쟁 단체인 혈성단을 결성하였고, 당시 용유도 서기 이기복씨는 을왕리 유웅렬씨 집에서 태극기를 제작하여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당시 용유도 인구가 1천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주민 150명이 328일 용유도 관청리 광장에서 만세 운동을 했다. 인구 대비 한집에서 한사람 정도가 참여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혈성단원은 모두 1년에서 1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평생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을 했다. 이외에도 주민 11명이 처벌을 받았고 면 서기도 파직을 당했다. 지금도 영종도 지역에는 이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2개나 있다.

이후 영종도 용유도 무의도 일대에 애국심이 투철한 섬 주민들이 어렵게 모은 독립 자금을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역사적인 행위로 이어진다. 이런 연유로 해방 후 감사 인사 차 백범 김구 선생이 194911월에 무의도에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하고 용유초등학교 분교에서 강연을 한 기록이 있다.

태극기 바람개비 만들기를 마치고 영종역사관을 돌아본다.

영종도 지역은 근대화의 중심 지역이었다

근대화 사건의 현장 - 인천 영종도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을 간추려본다.

역사적으로 조선 말기의 어지러운 정치 교란기에 대원군(1863년 고종 등극하며 대원군 집권)의 쇄국 정책에 맞선 제국주의의 식민지 찬탈이 거세었던 시기이다. 조선은 많은 사건을 겪게 된다.

병인양요 (1866) - 강화도에서 프랑스군의 침략사건 : 외규장각도서, 보물 약탈

신미양요(1871) -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군이 강화도를 공. 죽음으로 지켜 내고자 했으나 강화도를 지키던 조선군은 결국 몰살한 사건.

운요호 사건 - 1875920일 일본 운요호가 강화도에 들어와 측량을 구실로 조선 정부의 동태를 살피다가 조선군과 전투를 벌인 사건으로 조선 침략의 전초전이었다. 의도적이었으며, 이는 일본이 22년 전에 미국에게 첫 개항을 하며 당한(배운) 것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국력이 약한 조선은 불법 침입자에 대한 정당한 방어적 공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그 책임을 조선에 묻고 강제로 수교하였다. 이것은 일본 제국주의 대륙침략의 단초(端草)였으며 신호탄이었다.

청일전쟁 (1894) - 일본이 청나라와 전쟁 시 조선이 전쟁에 휘말린 사건

러일전쟁 (1904) -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이지만 조선의 관문 인천 주변에서 벌어짐.

이렇게 영종도, 용유도는 근대기 중심의 자리에서 많은 사건이 일어나는 지역이었으며 애국심이 투철한 시민들의 고향이었다.

영종역사관은 전시는 이러한 사건을 잘 알려주는 박물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1. 주민들이 기증한 유물로 전시관이 활기를 찾다

영종역사관의 유물은 영종도 주민들의 협조로 많은 유물이 확보되었다. 2018년 개원 이래 주민들이 기증하는 유물을 전시하고 그 분들을 기억하고자 유물 기증자의 명패를 전시하였다. 기자 본인도 작은 것이지만 유물을 기증하고 역사박물관을 방문하였을 때 기증자 명패에 있는 필자의 이름을 보고 놀라웠다.

2. 영종지역의 역사박물관

근대화의 중심지이며 우리나라의 중앙에 위치한 섬으로서의 역사가 있는 지역이다.

역사관에 들어오면 1층의 제1전시실은 선사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영종국제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 볼 수 있다.

1관은 영종 용유 지역의 전반적인 역사와 선사시대 유적지 및 출토 유물에 대하여 전시하고 있다.

2관 해양 교류의 중간 거점이었으며 고려시대 자연도라 불리었던 영종도의 역사에 대하여 전시하고 있다.

[2층 제2전시실은 조선 시대부터 근 현대까지 영종국제도시의 역사와 문화]

 

3: 조선 시대 자연도의 생활 문화와 영종진에 대하여 전시하고 있다.

4: 영종진 앞바다는 당시 쇄국과 개항의 충돌 지역이었다. 운요호 사건 그리고 근대로 향하는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5: 영종도 용유도 주민들의 삶의 터전에 대한 전시 공간이다.

6: 세계의 관문 영종도를 과거의 생업과 매립 후의 개발 모습을 비교하며 전시하고 있다.

그밖에,

체험 전시실 : 어린이들이 역사와 문화 체험을 통해 학습할 수 있는 공간.

키즈 룸 : 5세 이하의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휴식과 놀이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

야외 전시장 : 고인돌과 선정비, 민속 자료, 빗살 무늬 토기 조형물이 전시되어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1. 선정비군 : 영종진에서 외세로부터 영종도를 수호한 분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

2. 운남동 고인돌 :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 양식으로 영종도에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다는 유물

3. 망주석 : 무덤 조우에 세우는 돌로 세호라고 가느다란 호랑이 한 쌍이 조각 되어 있음

4. 문인석 : 무덤을 수호하고자 묘 앞에 배치된 조선 시대의 석조물

5. 맷돌 : 곡식을 가는 도구

6. 돌번지 : 염전의 갯벌 바닥을 평평하게 만드는 도구

7. 연자매 : 말과 소의 힘을 이용해 곡식을 찧을 때 사용. 마을마다 하나 씩 공동 사용

8. 용유 3.1 독립 만세 기념비 : 1919328일 혈성단과 주민 150여명이 함께 용유도 관청리 광장에서 만세를 외친 기념비

9. 소원 석탑 : 소원을 비는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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