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소녀 노동자들의 우정과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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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녀 노동자들의 우정과 연대
  • 심현빈
  • 승인 2022.03.0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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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공주에서 예술영화 한편]
미싱 타는 여자들(Sewing Sisters, 2020) / 이혁래 김정영 감독

 

<미싱 타는 여자들>이었던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을 중심으로 14명의 여성들이 흑백사진 속의 어린소녀를 바라본다. 세상에서 제일 힘없고 가엾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였던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이름도 없이 시다, 공순이, 미싱사로 불렸던 10대 여성 노동자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영화다. 1970년대 평화시장의 노동자는 80%가 여성이었고, 그중 절반은 십대 미성년 여자애들이었다. 당시 미성년 여성노동자는 보호가 필요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만만한 약자이기에 가장 쉬운 착취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미싱 타는 여자들>은 유일하게 위로 받을 수 있는 노동교실에 가는 것이 기쁨이었다. 번호로 불리던 시다, 미싱사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 석자를 쓴 것이 노동교실 가입신청서였다. 그곳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취미생활이란 것을 해보고, 처음으로 한자 이름을 써 보고, 은행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근로기준법을 배우면서 노동의 권리문제를 생각하게 된 곳이었다.

1977년 9월 9일 청계피복노조의 노동교실을 철거하려는 경찰과 맞서 농성을 하던 10대 여성노동자들이 잡혀간다. 그날이 북한공화국 수립일이라고 빨갱이란다. 그때나 지금이나 프레임 씌우기는 공작정치에는 선수급들이다. 교복을 못입어 성인 버스비를 내야 하는 차별도 서러웠는데 유치장에서도 운동권 학생에게는 깍듯한 경찰이 노동운동 여공에게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과 구타, 속 옷도 못 갈아입게 하는 등의 반인권적 차별을 자행한다. 그때 들은 욕은 평생 귀에 맴도는데 그때 맞아 터진 고막은 지금도 잘 듣지 못 한다.

그러나 <미싱 타는 여자들>은 흑백 사진 속에서 천진난만했으며, 그녀들의 삶은 그때나 지금이나 찬란하다. 평화시장 구석구석에서 함께 했던 동지들과 나눈 끈끈한 우정과 든든한 연대감으로 투쟁의 순간에도 두려움이 없었다.

전태일(1948~1970)로 시작된 1970년대 노동운동은 어린 여성 노동자로 이어졌으며 한국노동운동사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이라는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으나 남성 중심의 노동운동사에 묻혀있었다. 이제 1970년대 노동현장의 치열함을 몸소 겪은 당시 10대 어린 소녀들이 <미싱 타는 여자들>이 되어 여성노동운동사의 기록으로 당당하게 완성되는 역사적 순간이다.

감독은 출연자들이 당시 어린 노동자였던 자신의 옛 삶을 직면하면서 아픈 상흔의 기억을 상기해야 할 때 자신을 보듬고 위로할 수 있는 순간을 끊임없이 찾아내 준다. 오프닝의 탁트인 햇볕 아래에서 미싱을 타게 하거나, 투쟁의 열정을 보여주는 빨강과 천진스럽게 화사한 연두와 아련한 소녀스러움을 생각하게 하는 분홍색으로 초상화를 그려주고 마지막에는 함께 노래를 부르게 한다. 그렇게 <미싱 타는 여자들>이었던 여자들은 1970년대의 소녀를 만나 울고 웃으며, 관객과 함께 과거의 청춘과 현재의 청춘으로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면서 시대적 아픔을 연대감으로 승화하게 만든다.

빛 바랜 공소장을 평생 간직하고 살면서 의문의 복수를 꿈꾸었던 그녀는 웃으며 말 한다.

”우리가 그때 했던 일들이 올바른 것이고 잘 살았던 것이라 말해주고 싶어서 출연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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