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한 구도심, 사동 골목을 지키는 고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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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한 구도심, 사동 골목을 지키는 고물상
  • 이세기
  • 승인 2022.03.04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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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손바닥소설 - 북창서굴]
(1)쿨리라는 사내
3월부터 이세기 시인의 장편(掌篇)소설 '북창서굴'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손바닥 크기 분량의, 산문도 되고 소설도 되는 '이세기의 북창서굴'은 격주로 연재하지만 매회 독립적인 내용으로 엮어갑니다. 인천의 도시 골목에서 일어나는 애잔하고 쓸쓸하며, 때로 아름답기도 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입니다.

 

연재하면서

내 집에 북쪽으로 난 창이 하나 있다. 보잘것없는 창밖이지만 석류와 엄나무가 자라는 데 눈을 씻기가 그만이다. 그곳을 바라보면 골목이 내다보여 사람들의 목소리와 발소리가 들리곤 한다. 간혹 동네 사람들의 대화를 듣거나 나도 그 대화에 슬며시 끼기도 한다. 듣다 보면 가슴 저미고, 유쾌하고, 기이하고, 애달프다. 억울한 이야기는 입과 발이 없다. 산문도 되고 소설도 되는 손바닥만 한 글은 북쪽 창가에서 보내는 ‘장편(掌篇)’이다. 땅을 기며 살아가는 지렁이와 같이, 스스로 ‘북창서굴(北窓書窟)’에 갇혀 날갯짓을 글로 펼친다.

 

 

쿨리라는 사내

내가 사는 사동(四洞)에는 ㄱ자로 된 골목이 살고 있다. 길목에 직업소개소인 ‘광성 인력’이 우두커니 서 있고, 그 옆으로 파지나 고철이 쌓인 고물상이 앉아 있다. 고물상 입구 우측에는 배달부들의 대기소가 있다. 맞은편 밥집은 밥때가 되면 끼니를 값싸게 때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쇠락한 구도심은 죄없이 고개 숙인 가로등 같다. 빗물이 새는지 기와형 경량 철제로 시공된 개량 지붕이 늘어났다. 벽칠은 후르륵 떨어졌다. 서서히 말라 죽어 가는 동네엔 텅 빈 공기가 살았다. 늘어난 빈집 대문은 버려진 쓰레기가 쌓였다. 돌봄을 받지 못한 몰골이 앙상한 길고양이가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후미진 골목에서 종종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 쿨리(苦力)라는 사내다. 나는 그를 그렇게 불렀다.

언제부터 그가 이 동네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동네가 늙어갈수록 새로운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중엔 쿨리도 있었다. 이 골목에서 그를 본지가 두 해 정도 됐다. 그는 항상 때에 찌든 군청색 방한복을 입고 구부정한 몸에 반쯤 벗겨진 민머리를 숙이고 좀체 얼굴을 든 적이 없었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엔 웃옷은 어깨에 걸치고 반소매로 골목을 누볐다. 밑단을 걸어 올린 헐렁한 바지하며 영락없이 남 눈치 따위는 보지 않을 법한 모습이 요즘 세상에서는 쉬 볼 수 없는 행색이었다. 다만 민소매 사이로 드러난 구릿빛 근육질이 사방으로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단단한 몸이었다. 항상 큰 눈을 부라리며 골목 이곳저곳을 훔쳐보는 것이 하루 일과인 사람 같았다.

그는 낡은 유모차를 끌고 다녔다. 헝겊을 칭칭 두른 손잡이는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윤이 났다. 짐을 더 실을 요량으로 이곳저곳 각목을 덧붙인 유모차는 전체 균형이 기우뚱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관절이 안 좋은 반려견을 태우거나 걸음이 시원찮은 노인이나 끌고 다니는 유모차를 폐지를 줍는 리어카 대신 사용했다. 사람들과 말하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혼잣말하는 것을 딱 한번 들은 적이 있었다.

이게, 인도냐 차도냐.

구시렁거리며 못내 못마땅하다는 투로 말을 내뱉었다. 유모차를 끌고 가다 하필 맞은편에서 차와 마주쳤던 것이다. 온갖 차로 주차장이 돼버려 비좁은 골목에 차를 끌고 들어왔으면 사람에게 우선 양보해야 하지 않느냐는 심사가 배어 있었다. 그렇다고 시비가 붙지는 않았다. 그저 구시렁거릴 뿐이었다. 그리고는 옆으로 비켜서서 눈을 치켜뜨고는 상대 차를 빤히 쳐다보는 것으로 끝났다. 온갖 불만이 가득한 눈빛은 금세라도 깽판을 칠 것 같았지만 고개를 들지는 않았다. 나약하게. 늘 만사가 그랬다.

골목에서 쿨리만큼 바쁜 사람도 없었다. 마치 골목이 직장 같았다. 얼추 사십 줄은 넘었고 오십 줄 초반인지 후반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얼굴을 하고는 신출귀몰하게 동네 골목을 누볐다. 잠시 눈에 띄기가 무섭게 바지런히 다른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러다가 땀이 나는지 옷소매를 어깨에 턱 하니 걸치고는 유모차에 가득 폐지를 싣고는 나타났다.

발길은 힘에 부쳐 좌우로 재재발랐다. 힘을 쓸수록 이마의 주름에 깊은 파도가 요동쳤다. 자신의 키 높이보다 높은 폐지를 가득 싣고, 고물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 모습은 만족보다는 불안을 밀고 가는 듯 보였다. 날개를 감춘 사람처럼. 이를 앙다문 채. 그가 골목에서 누구하고도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는 말로만 그를 알 수 있었다.

말도 마, 그자는 생판 말이 통하지 않아. 무슨 거지새끼처럼 쿵쿵 냄새 맡기가 보통내기가 아니더라고.

고물상을 오가는 사람들의 말인즉 사내는 남의 구역까지 침범해서 몽땅 실어 가는 것은 물론이고 그 행동이 어찌나 잽싼지 아예 날아다닌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나면 종이 한 장 줍는 게 하늘에 별 따기라는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동네 사람들의 탄식을 듣고 있자면 그는 영락없이 폐지 줍기에 혈안인 사람이었다. 뭇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그에 대한 이런저런 구설수는 알고 보면 그의 바지런함을 탓하는 것이었다. 밤 고양이 마냥 칠흑의 밤이나, 이른 새벽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요즘처럼 기온이 떨어진 날에도 그는 쉬는 날이 없었다. 구부정한 몸, 푹 숙인 얼굴, 무슨 맷돌이라도 단 것처럼 머리를 들 기색도 없이, 유행이 지난 옷을 입고는 몸과 딱 붙어 있는 유모차를 끌고 있으니. 꾹꾹 안으로 누른 독기로 문드러진 몸을 이끌고 골목을 누비는 그 사내의 내면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재개발 아파트 공사장의 소음이 가까워질 무렵 사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을씨년스러운 겨울의 끝자리, 방치된 오래된 빈집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동네가 무섭다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경찰차가 왔지만, 거소가 없는 성명불상자로 처리되었다고 했다. 때마침 퇴근 하는 길에 빈집을 지나쳤다. 누군가 버린 쓰레기가 쌓인 반쯤 열린 대문 틈새로 비를 맞고 있는 유모차가 홀로 서 있었다.

나는 오늘도 춥고 어두운 골목에서 쿨리를 보았다. 먹구름이 무겁게 짓눌린 우울한 저녁이 지나갔다. 기진맥진한 채 이역만리에서 걸어온 듯한 허기진 몸을 이끌고. 개항장 시절 중국 산둥에서 건너와 고된 육체 노역을 했던 쿨리처럼, 바닥을 기는 지렁이의 온몸이 윤기로 가득한 것처럼. 골목에 환한 길을 내면서. 여지없이 숙인 고개와 새하얗게 센 머리털, 땀에 찌든 방한복을 입고, 뒷굽이 닳은 작업화를 신은 채 바지 깊숙이 손을 찌르고 골목 입구로 들어오는 사내들과 마주쳤다.

쿨리가 지나가는군!

고된 힘을 쓰는 자가 악착같이 한 줌의 땀까지 짜내서 어둠을 뭉치며 굴러갔다. 매가리 없이 사내들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불현듯 두 손으로 쇠사슬을 끊을 듯한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쇠락한 골목을 지키는 유령이 되어 지나가는 환영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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