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권에 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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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권에 천원’
  • 최원영
  • 승인 2022.03.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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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43화

 

지난주 방송에서 소개해드린 전철 안에서 시끄럽게 놀던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은 아버지의 사연을 소개해드렸죠. 알고 보니 아이들 엄마가 암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다는 사연을 듣고 아버지를 비난하던 사람이 미안한 마음을 토로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예화를 책에서 전한 정호승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남의 불행이 나에겐 큰 감사와 교훈이 된다. 오늘의 나 자신을 돌아보고 긍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래서 언제나 나보다 더 어려운 삶을 사는 이들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려고 한다.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자들을 부러워하거나 바라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들은 나의 기쁨조차도 슬프게 만드니까. 내 작은 행복조차도 큰 불행으로 만들어버리니까. 그래서 오늘의 나를 초라하게 만드니까.

그러나 아래를 볼수록 내 삶이 감사하고 힘이 생긴다. 그들이 곧 내 삶의 스승이다 싶어 갈수록 그들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저자는 또 이런 말도 합니다.

“수박이 멋있고 행복해 보인다고 호박이 자기 몸에 줄을 친다고 수박이 될까.

밤 10시쯤 학원가 골목길을 걸어 집에 오곤 한다. 그러면 그 시간에도 리어카에 불을 밝히고 닭꼬치를 굽는 아주머니가 있다. 그녀가 꼬치에다 닭고기를 끼워 굽는 모습이 무척 진지하다.

고기 굽는 냄새가 골목을 꽉 채우면 나는 그 냄새가 그녀의 열정적 삶의 냄새라 여기고 학생들 틈에 끼어 한 점 사 먹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골목 한쪽에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연습장 노트를 파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3권에 천 원’이라고 써놓고 할머니는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다. 나는 그 노트를 사면서 도대체 이 노트를 다 판다 해도 그녀에게 남는 이익이란 어쩌면 밥 한 그릇 값도 안 될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생각만 하면 그녀가 내 삶의 스승이 된다.”

가난한 자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공감하는 시인의 모습이 참으로 따뜻합니다. 이런 태도가 곧 중도의 길입니다. 자신의 지위나 위치와는 상관없이 다른 쪽에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공감과 사랑, 이것이 우리의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비결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중도의 길이란 결국 공감과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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