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근대와 현대를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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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근대와 현대를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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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2.2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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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인천으로 떠나는 근대문화유적 답사는 '최초'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기도 하다. 특히 인천의 중심부에 위치한 중구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최초'의 것들이 남아 있다.

 


중국음식점들이 즐비한 차이나타운1길

중구 내동에 위치한 내리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은 중구 송학동 응봉산 자락에 위치한 자유공원이다.
 
국내 처음은 아니지만 인천 최초의 천주교 성당도 중구 답동에서 만날 수 있다.

이밖에 인천과 노량진을 오가던 경인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이며,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먹는 자장면 역시
중구 선린동과 북성동에 걸쳐 있는 차이나타운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물론 '최초의 것'만이 의미 있지 않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서구인들의 사교장이었던 제물포구락부와 일본은행 거리,
그리고 '인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차이나타운 등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들이다. 
                                         

 

 

인천항은 1883년에 개항했다. 부산(1876년)과 원산(1881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다. 그래서 인천항을 품고 있는 인천 중구에는 당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많은 근대문화유적이 남아 있다.
 
흥미로운 건 부산항보다 7년, 그리고 원산항보다 2년 늦게 개항한 인천항 주변 유적들에서 유독 '최초'라는 수식어가 눈에 많이 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천 근대문화유적을 찾아 나서는 길에 다른 어떤 교통수단보다 지하철을 이용하길 권하고 싶다. 인천과 노량진을 오가던 경인선이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선과 여행의 편의를 고려해도 자가용보다는 지하철이 훨씬 수월하다. 답동성당과 내동교회, 그리고 자유공원과 일본은행거리 등 인천의 근대문화유적 대부분이 국철 1호선 동인천역과 인천역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인천으로 떠나는 근대 문화유적답사는 인천 최초의 천주교 성당인 답동성당(사적 제287호)에서 시작한다. 답동성당은 동인천역에서 우현로를 따라  500m 쯤 떨어진 카톨릭 회관 뒤편 언덕 위에 자리해 있다. 가파르지 않은 경사로를 지나 마주한 답동성당은 둥근 지붕의 종탑과 고풍스러운 자태에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읽힌다.

답동성당 건립은 1886년 한불조약 직후 입국한 코스트 신부(1842∼1896년)의 주도로 진행되었고, 코스트 신부의 후임이었던 빌렘(홍 요셉, 1860∼1938년)신부에 의해 열매를 맺었다. 1889년 7월 1일의 일이다.

단출한 가옥의 형태에서 시작한 답동성당은 이후 첨탑을 갖춘 고딕 양식의 단층 건물을 거쳐 1937년 제4대 드뇌(전 으제니오 1904∼1937년)신부 대에 이르러 지금과 같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한 모습으로 거듭났다. 답동성당은 내년이면 건립 120주년을 맞는다.


답동성당

답동성당에서 우현로를 200m 정도 거슬러 오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인 내리교회를 만날 수 있다. 1885년 4월 제물포항을 통해 국내로 들어온 미국 감리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1858~1902)에 의해 세워진 교회다. 초기 내리교회는 지금의 자리가 아닌 중구 중앙동 1가, 현 파라다이스호텔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리교회가 지금의 내동에 자리를 잡은 건 한성으로 거처를 옮긴 아펜젤러가 자신이 세운 배재학당 출신 노병일을 인천으로 내려 보낸 1901년의 일이다. 하지만 당시 지어진 교회는 1964년 화재로 전소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1966년 개축한 것이다.     

내리교회의 역사에서도 '최초'라는 단어가 여럿 눈에 띈다. 내리교회는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를 설립했으며, 이 학교를 통해 한국인 최초의 목사였던 김기범 목사를 배출했다. 또한 1903년에 설립한 인천 지역 최초의 사립학교인 영화학교도 내리교회 역사에 담긴 '최초'에서 빼놓을 수 없다.

교회 1층 복도에는 아펜젤러와 김기범 목사의 초상사진을 비롯해 초창기 내리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흑백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내리교회

내리교회 후문에서 좁은 골목을 50m 정도만 오르면 성공회 내동성당(인천시 유형문화재 제51호)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1890년 9월29일 인천으로 들어온 코르페(한국명 고요한)주교에 의해 건축된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이다. 한때 러시아 영사관으로 활용되기도 했지만 1904년부터 1956년까지 성공회 신학원으로 운영되었던 곳이다.

초창기 건물은 한국전쟁 때 소실 됐으며, 지금의 건물은 1956년 6월23일 복원한 것이다. 코르페 신부는 자신과 함께 입국한 랜디스 박사를 도와 1891년 4월2일, 내동성당 인근에 인천 최초의 서구식 병원인 성누가병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내동 성공회 성당

내동성당이 위치한 내동일대를 오래 전부터 '약대이산'이라 부른 것은 '약대인(藥大人)' 즉 '약을 주는 서양인'이라는 말에서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내동성공회성당에서 자유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홍예문(인천시 유형문화재 제49호)이 있다. 개항 당시 인천항과 인접한 중앙동과 관동 등지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전동과 만석동으로 자신들의 거류지를 확대하기 위해 뚫은 석문이다.

폭 4.5m, 높이 13m, 통과길이 13m의 홍예문은 1905년에 착공해 1908년에 준공했다. 일본인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지만 해방 후에는 여름철 피서지로, 그리고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사랑을 받던 곳이기도 하다.


홍예문

홍예문을 지나 300m 남짓 가면 자유공원이 나온다. 1889년 조성된 자유공원은 탑골공원(1897년)보다 9년이나 빨리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학도의용대호국기념탑이 있는 공원 입구를 지나면 이내 맥아더 장군 동상이 보인다. 조성 당시 각국공원이라 불리던 이곳이 자유공원이란 이름을 얻게 된 데에는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집은 인천상륙작전의 영향이 적지 않다. 자유공원은 일제강점기 때는 서공원으로, 해방 직후에는 만국공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맥아더 장군 동상에서 좌측 계단으로 내려서면 제물포구락부가, 그리고 직진을 하면 한미수교100주년 기념탑과 팔각정이 나온다. 동선 상으로 제물포구락부부터 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개항 당시 제물포 지역에 모여 살던 외국인들의 사교장이었던 제물포구락부(인천시 유형문화재 제17호)는 현재 개항기 인천에서 거주했던 인물들의 활동상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영상 스토리텔링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관람시간 09:00~18:00, 관람료 무료, 월요일 휴무)

문을 열 당시 사교장과 도서실, 당구장이 있던 내부 공간은 미국, 영국, 독일 등 회원국에서 보내온 다양한 전시물로 채워져 있다. 정면 벽에 설치된 대형 TV에서는 제물포구락부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영상물을 보여주고 있다.

제물포구락부의 전신은 1889년 3월 출범한 신동공사(紳董公司)였다. 조계지 의회라고도 불리던 이 기구는 각국 조계가 설치된 뒤 조계 당사자들의 공동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제물포구락부는 신동공사 출범 2년 뒤인 1891년 9월에 조직되었다.

조계(租界)란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들이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을 가리키는 말로 각국 조계는 1884년 10월3일 조선의 서리독판교섭통상사무 김홍집과 미국, 영국, 청국, 독일, 일본 등 5개국 대표들이 '인천제물포각국조계장정'에 서명함으로써 설치됐다. 구락부는 클럽(Club)의 일본식 발음이다.


구) 제물포구락부

제물포구락부를 지나 팔각정에 오르면 인천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유공원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팔각정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제3패루를 통해 차이나타운으로 갈 수 있는 좌측 길과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으로 이어지는 우측 길이다. 일본은행 건물들이 모여 있는 테마박물관거리로 가기 위해서는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이 있는 우측 길로 방향을 잡는 게 좋다.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은 말 그대로 일본 조계와 청국 조계가 경계를 이루던 지점으로 공자상이 서 있는 계단 상부는 차이나타운의 명물인 삼국지 벽화 거리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에서 일본제1은행(인천시 유형문화재 제7호), 제18은행(인천시 유형문화재 제50호), 제58은행(인천시 유형문화재 제19호)이 모여 있는 테마박물관거리는 지척이다. 계단 하부에서 한 구역을 내려가면 '구 일본제1은행' 이정표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이정표 우측 대각선 방향의 공터는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 터다.

테마박물관거리에는 조선은행이란 이름이 붙은 일본제1은행을 시작으로 제18은행, 제58은행이 나란히 자리해 있다. 청일전쟁 후 경제 수탈의 첨병역할을 했던 이들 일본은행 건물은 현재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일본제18은행은 인천개항장근대건축 전시관(관람시간 09:00~18:00, 관람료 무료,  월요일 휴관)으로 운영 중이며, 일본제1은행은 오는 5월 인천한국근대최초사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특히 인천개항장근대건축 전시관으로 활용되는 일본제18은행에서는 답사를 통해 돌아본 인천 중구 내 모든 근대 건축물을 모형으로 다시 만날 수 있어 답사여행을 되짚어 보기에 더없이 좋다.

개항 당시 만들어진 부둣가 창고를 지역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인천아트플랫폼과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한중문화관, 인천의 대표 관광지인 차이나타운 등도 인천 중구로 떠나는 여행에 놓치기 아까운 곳들이다. 

<여행정보>

○ 관련 웹사이트 주소

- 인천광역시청 : http://www.incheon.go.kr

- 인천중구청 : http://www.icjg.go.kr

- 답동성당 : http://www.dapdong.or.kr

- 내리교회 : http://www.naeri.org

- 인천아트플랫폼 : http://www.inartplatform.kr

○ 문의전화

- 인천시청 관광행정팀 : 032)440-4042

- 인천중구청 관광진흥과 관광진흥팀 : 032)760-7820

- 답동성당 : 032)762-7613

- 내리교회 : 032)762-7771

- 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구 일본제18은행) : 032)760-7549

- 영상스토리텔링 박물관(구 제물포구락부) :032)765-0261

- 인천아트플랫폼 : 032)760-1000

*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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