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은 용돈, 천원은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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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은 용돈, 천원은 헌금”
  • 최원영
  • 승인 2022.04.1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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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47화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 일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일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불행과 행복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유익한 결과로 이어지도록 해석해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의 장으로 여러분을 안내할 테니까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그 선택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되곤 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유머 테크》(이상근)에 귀여운 어린아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엄마가 2,000원을 주며 “1,000원은 헌금이고 1,000원은 용돈이다”라고 하자, 상수는 양손에 1,000원씩을 쥐고 신나게 교회로 간다. 그런데 길을 건너다가 턱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오른손에 쥐고 있던 1,000원이 하수구에 빠진다. 일어서면서 울상을 짓는다.

“저거 헌금할 돈인데 어떻게 하지?”

아주 귀엽지요? 제가 저 아이라도 그랬을 겁니다. 과자를 사 먹고 싶어 했을 테니까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집니다. 어떤 해석을 내리느냐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냐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가치관을 바꾸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동안 배운 지식과 신념, 그리고 경험이 모두 모여 가치관이 형성되어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동행》(김하)에 죽은 강아지를 보고 슬퍼하는 손녀를 할아버지가 위로하는 글이 있습니다.

창가의 한 소녀가 창밖 정원에서 식구들이 죽은 강아지를 파묻는 걸 보고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녀의 품 안에서 뛰놀던 강아지였다. 이윽고 할아버지가 소녀를 다른 창가로 데려가 활짝 핀 장미화원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소녀 얼굴에서 슬픔이 사라지고 금세 명랑해졌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얘야, 넌 아까 창문을 잘못 연 거야.”

우리도 살면서 이렇게 종종 ‘창’을 잘못 여는 경우가 있다. 서로 다른 창은 곧잘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주곤 한다. 갑자기 인생이 우울해질 때 생각해보라. 혹시 창문을 잘못 연 것은 아닌지를.

기쁘게 사는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일상의 번잡함과 혼란으로부터 벗어나 가능하면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열심히 땀 흘려 스스로의 몫을 누리는 이 간단한 이치는, 자기가 빚은 술을 맛보는 것처럼 우아한 것이다.

시인 칼 부세는 이렇게 말했다.

“산 너머 저 멀리에 행복이 있다 하기에 찾아갔건만 눈물지으며 되돌아왔네.”

오늘 우리는 “천원은 용돈, 천원은 헌금”이란 다소 재미있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야기 속의 아이는 남은 천원으로 과자를 사 먹을 것인지, 아니면 헌금을 낼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을 겁니다. 머리로는 헌금을 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겠지만, 가슴으로는 과자를 사 먹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하수구에 빠져버린 천원을 보고 “저거, 헌금할 돈인데”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해도 사랑스런 아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과자를 사 먹을 수도 있고, 헌금을 낼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선택도 죄가 아니라는 사실 역시 알 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여러분,

삶이 버거워 지쳐있을 때 이 글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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