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 마련해달라" - 대책위, 인수위에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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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 마련해달라" - 대책위, 인수위에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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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4.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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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통인동 대통령인수위원회 앞길에서 기자회견 열고 청원서 제출

인천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와 올해 귀향 사업을 함께 주관하기로 한 6.15공동선언실천 인천본부(이하 인천본부)는 28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20대 대통령인수위원회 앞길에서 원주민들의 ‘귀향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인수위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윤석열 당선자에게 월미도 원주민들의 장기 민원을 인식시키고, 숙원 사업인 ‘귀향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월미도대책위 한인덕 회장은 이자리서 “미군이 물러나면 돌아가게 해 준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는데, 해군 2함대가 다시 들어오면서 한 술 더 떠 월미도 일대를 보전 등기를 하여 국방부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며 “2008년 ’진실과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미군폭격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고, 해결책 중의 하나로 귀향대책을 마련하라는 권고 조치가 내려졌으니만치 윤석열 정부는 더 이상 미루거나 외면하지 말고 해결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성재 6.15인천본부 상임공동대표는 “70년의 한 맺힌 숙원사업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 남아 있는 분들도 연로하시기에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며 “인천시와 국방부는 서로 책임을 떠 넘기지 말고 조속히 해결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기자회견 전문]

인천 월미도 원주민들에 대한 귀향 대책 마련을 차기 정부에게 절절히 호소합니다. 인천 월미도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들과 전철 타고 내려 바닷바람 쐬러 들렸던 해변가 유원지와 횟집 등으로 기억하나요? 아니면 한국전쟁 당시 전세를 뒤집었던, 전사에 길이 빛날 승전의 역사 현장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졌던 곳이었던 월미도로 기억하나요? 하지만 그 승전의 환호 아래 피눈물 나는 역사가 있었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1950년 9월 10일, 당시에도 월미도에는 1,6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개시일인 15일을 닷새 앞 둔 그날부터 월미도와 인천항 주변을 미군은 항공기 폭격으로, 함포사격으로 초토화시켰습니다.

상륙작전을 안전하게 펼치기 위한 작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작전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전에 민간인 거주지를 공격하지 말라는 지침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월미도 원주민들은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지옥불 같은 네이팜탄에 순식간에 타버린 초가집 속에 갇혀 한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일가족들이 몰살당한 경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미군의 폭격에 불타오르는 집에서 뛰쳐나와 해안으로 달려나가는 주민들을 향해 공중에서 전투기가 기총소사를 해 댔습니다. 그길로 미군은 월미도에 상륙했습니다. 불도저로 마을 전체를 밀어버렸습니다. 원주민들은 한마디 항변도 못하고 쫓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돌아갈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벌써 70년의 세월이었습니다. 미군은 71년에 떠났습니다.

아 이제는 돌아갈 수 있겠구나 했는데, 해군 경비대가 들어왔습니다. 2000년에 해군마저 떠났습니다. 인천시가 그 땅을 매입했습니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고향마을이 월미공원으로 바뀌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인천 시민사회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2008년에 ‘진실과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이하 진화위)에서 월미도 미군폭격사건에 대한 진실이 규명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진화위는 첫째 미국과의 협상, 둘째 위령사업의 지원, 그리고 셋째 월미도 원주민의 귀향 지원 등 세 가지를 정부에 권고조치 했습니다. 미국과 협상은 고사하고 위령사업에 대한 지원은 권고조치를 받은 지 14년 만에 위령비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가슴에 맺힌 한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만 정든 고향 집이 있던 땅을 언제라도 밟을 수는 있지만 살 수는 없는 현실이 더욱 서럽게 합니다. 이제 70년이 흘렀습니다. 원주민 대부분은 가슴에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났고, 남아있는 이들도 언제 떠날지 모릅니다. 하루아침에 미군에 의해 고향 집을 잃은 월미도 원주민들은 미군 대신 또다시 들어온 한국군 해군에 의해 외면당하고, 군대가 떠난 이제는 인천시에 의해서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귀향대책을 마련하라는 진화위, 정부에서 만든 공식 기관의 권고는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겁니까?

며칠 있으면 새 정부가 들어섭니다. 새 정부는 “공정과 상식”을 얘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루 아침에 고향 땅에서 쫓겨난 원주민들이 뻔히 있는데, 미군이 떠났고, 한국군도 떠났는데, 딴 사람들이 들어와 사는 것도 아닌데, 멀쩡하게 살던 원주민들이 있던 것도 아는데 공원으로 만들어 버리고 모르쇠 하는 것이 “공정과 상식”은 아니겠습니다. 70년 중 50년을 말 한마디 못하고 가슴에 맺힌 한은 이제 단단한 응어리가 맺혔습니다. 나머지 20년 동안 거리에서, 관청을 찾아다니며 외치고 호소합니다. 고향에 가고 싶다고, 우리가 살고 있던 정든 고향 땅, 고향 집을 돌려 달라고 말입니다. 지척에 두고 가지 못하기에 더 서럽습니다. 미군이 아니라 우리도 같은 국민인데 대한민국 정부마저 외면하기에 더 서럽습니다. 윤석열 당선자에게 호소합니다. 우리들 고향 땅을 돌려주십시오. 고향에 돌아가서 남은 여생을 마칠 수 있도록 윤석열 정부에서 관심을 가지고 힘을 써 줄 것을 정말 절절히 간청합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4월28일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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