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봉댁네 경사, 얼룩이 염소 쌍동이를 출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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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댁네 경사, 얼룩이 염소 쌍동이를 출산하다
  • 문미정
  • 승인 2022.05.03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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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도에서 아이들과 생활하기] (34)
태몽, 현실이 되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 부부가 인천 앞바다 장봉도로 이사하여 두 아이를 키웁니다. 이들 가족이 작은 섬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인천in]에 솔직하게 풀어 놓습니다. 섬마을 이야기와 섬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일상을 이야기로 만들어 갑니다. 아내 문미정은 장봉도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가끔 글을 쓰고, 남편 송석영은 사진을 찍습니다.

 

주말이면 인천에서 볼일을 보고 부랴부랴 섬에 들어와 장 봐온 것들과 인천 집에서 챙겨온 물건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그날도 인천에 다녀오자마자 짐을 정리하고 애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닭장에 병아리들을 챙기는데 갑자기 지인이가 후다닥 뛰어오더니 이상한 말을 한다.

엄마, 꽃지가 새끼를 낳은 것 같아. 근데 하얀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니고 얼룩이야!”

뭐라고! 말도 안 돼! 지인아 얼른 아빠 불러! 엄마 먼저 내려갈게!”

하고 나는 언덕길을 뛰어 내려가 염소 우리를 살폈다.

염소 우리 앞에 선 온 가족은 말문이 막혔다. 정말로 얼룩 염소가 태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초산에 쌍둥이는 어렵다던데, 건강하게 두마리나 낳아준 꽃지!
초산에 쌍둥이는 어렵다던데, 건강하게 두마리나 낳아준 꽃지!

그것도 두 마리나! 아직 탯줄은 마르지 않은 채 매달려 있었고, 꽃지 몸에는 피가 많이 묻어 있었지만 꽃지도 아기 염소들도 모두 건강해 보였다. 태몽의 예상과 달리 두 마리 염소는 모두 수컷이었지만 아기 염소들이 태어난 이상 암수 구별은 더 이상 우리에게 아무런 이슈가 되지 않았다. 주변 어른들은 어미 염소가 자신과 색이 다르다고 차별하지는 않냐는 말도 하셨는데 색으로 서로를 차별하는 동물은 사람뿐이리라!

안녕 반가워! 나는 지유야!
안녕 반가워! 나는 지유야!
얘, 너는 참 귀엽구나!
얘, 너는 참 귀엽구나!

 

그렇게 꽃지의 아가들은 낳자마자 일어서고 걷더니 다음 날부터는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울타리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기도 하고, 두 마리가 달음박질을 하기도 했다. 하루 만에 그리 폴짝 폴짝 뛰는 게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다. 날이 갈수록 털은 반지르르 윤기가 흘렀고, 엄마 염소 꽃지는 새끼들 몸 여기저기를 수시로 핥아주고 젖을 먹게 해주었다.

아기 염소들을 살뜰히 살피는 엄마 염소 '꽃지'
아기 염소들을 살뜰히 살피는 엄마 염소 '꽃지'

 

그리고 아주 신기한 모습도 보았는데, 새끼들이 아빠 염소 동지 등을 올라타기도 하고 아빠 염소와 뿔싸움을 하기도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숫염소가 새끼를 해칠까 싶어 분리를 해 두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빠 염소가 새끼들을 해할까 봐 따로 먹이통 근처에 묶어두고 꽃지나 새끼들 곁에 못 가게 했는데, 웬걸 아기 염소와 놀아주는 아빠 염소라니! 너무 놀라운 일이 아닌가!

아기 염소와 교감하는 아빠 염소 '동지'
아기 염소와 교감하는 아빠 염소 '동지'

 

새끼가 태어난 첫날과 둘째 날에는 새끼들이 젖을 잘 빨지 않은지 꽃지 한쪽 젖이 엄청 불었다. 나는 꽃지가 밥을 먹는 사이 열심히 짜주었는데 신기하게 정말로 젖이 나왔고, 심지어 그 젖을 꽃지가 도루 다 먹었다. 영양 보충을 하는 것일까? 처음 보는 광경에 궁금한 게 많아진 우리는 염소농장을 찾아가 쌍둥이 출산 소식을 전하고 여쭈었다. 사장님은 가끔 그렇게 자기 젖을 빨고 마사지해 주는 염소를 본 적이 있다고 하셨다. 사람도 너무 불은 젖보다 적당한 젖이 수유하기 좋듯이 염소도 그런 모양이다.

 

농장에서는 수컷과 암컷을 따로 키우고 아주 좋은 수컷 한두 마리만 암컷 우리에 들어갈 수 있는데, 아기 염소와 놀아주는 숫염소는 처음 보신다고 하셨다. 사장님 얘기를 들으니 사람 입에 들어가기 위한 우유와 고기를 생산하는 동물들의 사육 방식은 동물의 모성 본능을 많이 빼앗는 방식일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 염소들은 지금 아주 건강하게 비교적 행복하게 잘 자라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기염소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기염소들...

 

새끼들을 키우면서 발견한 또하나의 신비로운 사실은 두마리의 형제애다. 아기 염소 둘이서 서로 따라 하고 같이 다니고, 같이 자고, 같이 먹고 하는 게 아닌가! 깜지, 꽃지, 동지 모두 손수 젖병으로 키워 내면서는 한 마리만 돌보았기에 하루 종일 나만 쫓아다니고, 잠시라도 안 보이면 울고 그러던 애들이라 형제가 노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혼자 클 때는 그렇게 나만 졸졸 따라다니더니, 두 마리가 같이 크니 서로 의지하며 같이 놀고, 같이 먹고, 같이 잔다. 꽃지가 어릴 적에 나보다 지인이를 더 잘 따라다녔던 이유를 이제야 깨닫는다. 두 염소가 노는 모습이 지인, 지유 어릴 적이 생각난다. 지금은 매일 싸우는 현실 남매가 되어 내 육아의 최대 스트레스지만 어릴 적엔 둘이 쌍둥이 염소보다 더 사이좋게 잘 놀았는데, 사납쟁이가 된 남매 지인 지유가 아기 염소들의 형재애를 다시 회복했으면 참 좋겠다.

우리는 형제 염소!
우리는 형제 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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