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곳
상태바
세상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곳
  • 최원영
  • 승인 2022.06.07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원영의 책갈피]
제55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아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누구는 병으로 인해, 누구는 사업실패로 인해, 누구는 실연으로 인해 아파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픔이 세상에서 가장 아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더 견디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 합니다. 모든 걸 잊기 위해서요.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안도현)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고래는 육지에서의 삶에 지쳐서 바다로 간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자신을 지치게 하면 그곳이 어디든 떠나고 싶어진다.

지인이 보내준 글이 떠오릅니다.

항상 구름 낀 얼굴을 하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자네 얼굴이 죽을상이군. 왜 그런가?”

“난 늘 문제투성이에 둘러싸여 있어. 그래서 지쳐 있어.”

“그래? 내가 그 문제들을 해결해 줄까?”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좋겠구먼.’”

다음 날 그를 데려간 곳은 공동묘지였다.

친구가 말했다.

“내가 알기에는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죽은 사람들뿐이거든.”

맞습니다. 죽어야 걱정거리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걱정거리가 있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직 살아 있으니까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류시화)에서 저자는 우리를 이렇게 위로해줍니다.

누구나 당신이 알지 못하는 상처를 갖고 있다. 따라서 서로에게 친절해야 한다.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된다.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여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요. 살아 있다는 것은 고통과 함께한다는 겁니다. 남의 고통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이 가장 무겁다고 여길 뿐입니다.

어릴 때, 속상할 때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스치듯 던지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책으로 쓰면 열권도 더 쓸 수 있어.”

그랬을 겁니다. 태어날 때는 일제 치하에서, 나이가 들어서는 피난 행렬에 나섰고,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배고프다고 우는 열 명의 자식들을 먹여 살리고 공부까지 시켜야 했으니 10권의 책이 아니라 100권의 책을 써도 모자랄 만큼 힘드셨을 겁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도 그 어른들 덕분에 이만큼 살고 있습니다. 너무도 고맙습니다. 배고픔이라는 고통과 설움을 감추며 자식들의 입에 뭔가를 넣어주신 그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풍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동입니다. 넉넉할 때 나누는 것도 아름답지만, 부족할 때 나누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거룩한 삶입니다.

세상 걱정과 온갖 고통이 없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무덤 속뿐입니다. 이 말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모두 아프다는 뜻일 겁니다. 평온한 듯 보이는 나무도 비바람에 힘겨워하고, 겨울한파에 몸을 사려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있었기에 어김없이 새싹을 피워내고 한더위에 그늘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아픔은 그래서 아름답고 거룩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아프신가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아픔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