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의 장미 한다발을 가지고 산다.
상태바
우리는 각자의 장미 한다발을 가지고 산다.
  • 심현빈
  • 승인 2022.06.11 13: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공주에서 예술영화 한편]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원제 La fine fleur, 제작 2020, 개봉 2022. 6. 9) / 감독: 피에르 피노

 

날씨도 화창하며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만끽하기에 좋은 계절에 장미를 볼 때마다 각자의 장미는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이다. 관객들은 영화가 시작되자 마자 곧 엔딩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관객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될 만큼 화면을 가득 채우는 장미꽃을 마음껏 보면서 베르네 부인이 추구하는 장미의 의미를 각자 정리하게 된다.

선악의 대립에서 구도적인 전개로 해피엔딩을 예상하지만, 작위적이거나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프랑스의 국민배우인 베르네 역의 캐서린 프로트의 존재감 때문일 것이다. 마치 시간을 넘나드는 느릿한 행동은 과장됨 없이 묵직하면서 안정적인 분위기가 가볍지 않아서 매력적인 배우다. 칠십이 다 된 나이에 건강하고 우아하고 지적이며 무엇보다 품위 있는 노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인상 깊다.

가업으로 이어지는 장미정원을 가치로 지키려는 최고의 원예사 베르네(캐서린 프로트)부인과 장미산업으로 돈을 벌려는 라마르젤社의 대표는 자본주의 상식으로 보면 경쟁이 될 수 없다. 점점 기울어가는 베르네 장미정원은 사람 하나 쓸 수 없이 쪼그라들고, 호시탐탐 정원을 가로챌 기회만 엿보는 라마르젤의 조롱을 견디는 것도 지쳐가고 있을 때다. 친가족 같은 직원 베라(올리비아 코테)는 구세주 같은 재소자 교화프로그램으로 정원에서 일할 보호관찰자 3명을 고용한다. 하지만 원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 가르치고 실습하는 좌충우돌을 격는다. 베르네 부인은 급한 마음에 라마르젤의 농장에서 접목할 장미를 보호관찰자들과 훔치게 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접목은 실패를 하면서 죄책감은 해소되고, 고용인 중 프레드(마넬 풀고)의 예민한 후각능력을 알게 되면서 조향사 교육을 받게 한다.

베르네 부인의 아버지는 15년 전에 돌아가시면서 장미정원이라는 꿈을 남겨 주셨지만 빚도 남겨주신 분이다. 부인은 대출뿐 아니라 부모님이 남겨주신 패물이며, 원예 기기들을 팔아서 유지하려 하지만 역부족이라 결국 자신의 정원을 넘기려 마음 먹는다.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장미를 한다발씩 가지고 산다. 인생에서 아름다움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는 에바 베르네 부인, 그녀와 친자매처럼 함께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베라는 동지애와 우정으로 장미정원을 지킨다. 보호관찰자 중 프레드는 자기를 버린 부모를 찾아 자신이 키운 장미를 선물하면서 새로운 품종의 장미를 만들 때 장미가 꽃을 피울 때까지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로 작별인사를 한다. 소심해서 말도 더듬고 눈도 못 마주치는 소녀 나데주(마리 페티오)는 장미정원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말을 찾고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마땅이 거주할 곳도 없이 오십이 넘은 나이를 살아온 사미르(팟사 부야메드)는 처음으로 자신의 정원을 가꾸면서 삶의 터전을 찾는다.

베르네 부인은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 들면 여기로 돌아와! 언제든지 환영이니까’라고 하면서 베라, 프레드, 나데주, 사미르의 안식처를 자처한다. 조향사 교육을 떠난 프레드가 보낸 편지에는 “To My Mother”라고 써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