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남, 순암과 함께 퇴계 어록에 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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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남, 순암과 함께 퇴계 어록에 공들이다
  • 구지현
  • 승인 2022.06.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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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에서 만나는 소남 윤동규]
(2) 『이자수어(李子粹語)』 편집을 통해 본 소남의 역할
 성호학파의 근간을 마련한 인천의 대표적인 실학자 소남 윤동규. 그의 종택에는 생전에 스승 성호 및 다른 제자들과 주고받은 서간 천여 통이 전해내려옵니다. 학문 토론에서부터 사적인 감정 교류까지 성호학파의 다양한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 이 서간들을 토대로 2022년 소남 기획을 시작합니다. 선문대 국문과 구지현 교수가 집필합니다.

 

그림설명 : 윤동규가 쓴 목판본 『이자수어』 발문에도 자신의 역할을 소개하였다.
윤동규가 쓴 목판본 『이자수어』 발문에도 자신의 역할을 소개하였다.

 

성호 이익이 편찬한 책 가운데 『이자수어(李子粹語)』가 있다. “이자”는 퇴계 이황을 높여 공자, 주자처럼 성 뒤에 “자” 자를 붙인 것이고 “수어”는 정수가 되는 말을 뜻하니, 퇴계의 말 가운데에서도 핵심이 될 만한 것을 성호가 가려 뽑은 것이다. 퇴계를 사숙하여 평소 조금씩 뽑고서 『도동편』이라 이름을 붙여놓았던 이 어록을 70대가 되어서도 성호는 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퇴계가 남긴 가르침을 해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을 크게 부끄럽게 여겨서 요점을 뽑아 기록하여 <동도편>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나 그 후 40여년 간 교정을 하지 못하였다. 내 벗 안정복이 다시 첨삭을 하여 한결같이 주자 『근사록』의 예를 따르고자 하였다. 벗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내 바람이었으나 정신이 다하여 스스로 할 힘이 없었다. 마침내 안정복에게 윤동규와 함께 반복해서 의논하여 함께 도모하라고 부탁하였고, 책이 이루어지자 제목을 “이자수어”라고 바꾸었다.(李瀷, 「李子粹語序」)

다른 책은 이미 완성이 되었으나 오직 『도동록』 한 책만은 미처 수정을 못하였으므로 선생이 매양 한탄하시다가, 나의 불민함을 모르고 校證을 맡기셨다. 그래서 원본을 가져다가 『近思錄』의 정례에 따라 篇目을 조정하고, 윤동규 어른과 왕복하며 參校하여 무릇 원고를 세 번 바꾼 뒤에야 책이 이루어졌다. 책이 이루어지자 성호선생이 다시 『李子粹語』라 명명하였다. (安鼎福, 「李子粹語跋」)

『이자수어』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과정은 위와 같이 성호의 글에서도 보이고, 만년 제자 순암 안정복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이 책을 정리하고 싶었던 성호는 기력이 없었으므로 순암에게 맡겼고 순암은 소남과 의논하면서 첨삭을 진행하였다. 세 사람의 공동 노력으로 책이 이루어진 후에는 아예 책의 제목까지 바꾸었다. 제자를 모두 벗으로 칭하며 학문적인 동료로 대우하였던 성호의 모습이 보인다.

1753년 완성된 이 책은 사실 성호가 1750년에 먼저 소남에게 부탁하였던 것이다. 평생 스승과 함께 한 소남은 이 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잘 알고 있었다. 또 후배들의 자질도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물러나는 대신 적당한 인물로 순암을 천거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순암이 전담한 것은 아니었다. 첨삭하는 동안 두 사람이 줄곧 의견을 교환하였다. 본래 정해진 편제가 없었던 것을 주자의 『근사록』 편제를 따르게 된 것도 소남과 긴 의견을 주고받은 뒤 결정된 것이었다. 정리된 후에도 순암은 책과 함께 성호의 편지와 서문, 그리고 의심스러운 곳에 표시를 하여 소남에게 보내고, “줄일 데는 줄이고 삭제할 데는 삭제하여 완전한 책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점검을 받기 위해 편지를 보냈을 정도이다. 소남이 얼마나 간여하였는지는 성호에게 보낸 다음 편지에서 볼 수 있다.

지금 제목을 『이자수어』라고 하면 중점을 “이자”에게 둔 것인데 문인들이 행의를 찬양한 말을 함께 실으면 유감이 없을 수 없는 듯 합니다. 그러므로 이미 백순 [안정복]과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고친 범례는 후학의 범칭과 관계된 듯 합니다만 끝내 타당치 못한 곳이 있습니다. 이것은 백순이 마땅히 상세하게 아뢰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편찬한 글에 기록한 것은, 말씀의 경우 훌륭하고 좋아 한갓 의의를 넓히는 바탕으로 삼을 뿐이어서 의심스러워 보류해 둔 듯한 것이고 행실의 경우는 자세한 절목이라서 생략할 만한 듯한 것입니다. 문인들이 찬미만 한 것은 의심스러우니 모두 산삭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조목마다 의심나는 것을 적어서 백순에게 부쳤으니, 취사선택하는 사이에 자세히 아뢰었을 것입니다.(尹東奎, 「上星湖先生書 癸酉十二」)

본래 소남은 책의 제목에서부터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하였다. 성호의 주장대로 제목이 결정된 후에도 또 제목에 걸맞은 내용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의견을 피력하였다. 위 편지를 보면 이 책을 소남이 한 번 보고 만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순암에게 받은 수정본에 일일이 체크를 하여서 의견을 제시하였고, 스승 성호에게 여쭈어야 할 내용까지 다시 짚어주었다. 앞서 완전한 책이 되도록 해달라는 순암의 부탁이 말로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실현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애초 “도동편”이라는 이름의 이 원고는 세 번이나 전면적인 개편이 이루어진 후 『이자수어』가 되었다.

소남은 이 책의 발문에 “선생께서 나에게 수정하라고 부탁하였으나 나는 알맞은 사람에게 맡기도록 청하였으니 이것이 백순이 이번 일에 공이 있는 이유이다. 증감하느라 오가는 가운데 나도 역시 함께 들었다.”라고 썼다. 순암을 전면에 드러내고 스스로의 공은 감춘 것이다. 그러나 소남과 성호, 소남과 순암이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작은 스승으로서의 소남 역할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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