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이 주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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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한 알이 주는 지혜
  • 최원영
  • 승인 2022.07.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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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59화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삶이 변화무쌍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려는 노력은 이어져 왔습니다. 삶을 간결하게 정리해둬야 삶이 힘겨울 때마다 위로를 받거나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찾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법정 스님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를 들어볼까요.

《산에는 꽃이 피네》(법정)에 나오는 글입니다.

“항상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다.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오르막길은 어렵고 힘들지만, 그 길은 인간의 길이고 꼭대기에 이르는 길이다. 내리막길은 쉽고 편리하지만, 그 길은 짐승의 길이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길이다.”

“평탄한 길만 걷는다고 상상해보라. 수십 년, 전 생애를 말이다.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그건 사는 게 아니다. 오르막길 통해 뭔가 뻐근한 삶의 저항 같은 것도 느끼고, 창조의 의욕도 생겨나고, 새로운 삶의 의지도 지닐 수 있다. 오르막길을 통해 거듭 태어날 수 있다. 어려움을 겪지 않고는 거듭 태어날 수 없다.”

삶은 양극점을 오가는 시계추와도 같습니다. 양극의 끝에는 희열과 슬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치 줄타기를 하듯 삶의 여정은 양 끝을 줄기차게 오고 갑니다. 웃다가 울다가, 다시 웃다가, 다시 울다가, 이렇게 삶의 여정은 이어집니다. 참기 어려운 아픔으로 울던 그것이 어느새 커다란 기쁨으로 승화하고, 웃으며 누리던 희열이 어느새 슬픈 상처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요. 그래서 힘겨워도 견뎌낼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삶은, 살아있다는 것은 아픕니다. 그리고 그 아픔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시계추가 반대쪽으로 향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무척 난감한 문제에 빠져 허덕일 때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서 고생도 한다는데.” 일부로라도 고생을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당시에는 이 말이 그저 위로하는 말이라고만 여겼습니다.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분들의 그 말씀이 위로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철학 카페에서 시 읽기》(김용규)에 독일의 현상학자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말이 나옵니다.

“고난도 가치다. 고난이 어째서 가치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사실 불행을 견뎌낼 능력이 없는 자에게 고난은 가치가 아닐 거다. 그러나 그걸 견뎌낼 만큼 충분히 강한 자는 고난을 통해 스스로 강해진다. 곧 그의 인간성과 도덕성이 증대한다. 이런 사람에겐 고난이 또한 가치다.”

“고난은 깊은 도덕적 능력을 일깨워주는 촉매제 구실을 한다. 그래서 인간의 활동력을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감성과 이해를 심화시킨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자신의 마음의 깊이뿐만 아니라 남의 마음의 깊이도 알게 된다. 아니, 인생 전체의 깊이를 알게 된다. 가치를 판단하는 눈이 확장되고 예민하게 된다.

고난을 통해 인격이 높아짐과 동시에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능력도 커진다. 위대한 고난을 거친 뒤에 얻는 엄청난 기쁨과 행복감, 그가 스스로 취한 것은 고난이었는데, 구하지 아니한 행복이 그에게 주어진다.”

지인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참 곱게 나이가 든 사람이 있습니다. 여유가 있고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 갑작스러운 일에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해결하는 사람, 의견이 다를 때도 귀를 기울이며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을 볼 때마다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상도 하기 힘든 고난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고통이 영글어 ‘지혜’가 되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 오늘 유독 제 가슴에 촉촉이 담깁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이 시에 대한 저자의 감회를 들어보겠습니다.

“시인은 대추 한 알이 익는 데도 태풍, 천둥, 벼락, 무서리, 땡볕과 같은 고난이 있었다고 노래한다. 이 말은 거꾸로 이런 고난이 없었다면 대추가 붉어지지도 둥글게 영글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시는 우리에게 우리가 겪는 고난이 우리를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몰고 가지 않을 거라고, 오히려 우리를 숙성시킬 거라고 위무한다.”

대추나무에 달린 대추 한 알에서 우리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자연의 이치를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매달려 있는 대추 한 알이 우리가 보지 않고 있을 때 얼마나 고통 속에서 신음해 왔는지, 두려움에 떨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를 이제라도 알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만약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고통속에 대추 한 알의 이런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라면 이제부터라도 이 고통들을 애써 외면하지 않게 될 겁니다. 그것들이 우리를 더 성숙시킬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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