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어가는 녹색 들녘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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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가는 녹색 들녘의 산책
  • 전갑남 객원기자
  • 승인 2022.07.09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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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강화 화도면 가량포 저녁 들녘을 거닐며
부지런한 마을 할머니의 당부... "순리대로 분수껏!"

한차례 장마가 지났습니다. 오랜 가뭄에 흡족한 비가 내려 산과 들은 짙어 갑니다. 그런데 일찍 찾아온 폭염이 만만찮습니다. 밤엔 열대야까지.

한낮엔 밭에 나가 일을 못 할 정도로 푹푹 찝니다. 김을 매거나 밭작물 소독 같은 일은 아침이나 저물녘에 해야 합니다.

요즘 들길은 녹색의 물길로 눈을 시원하게 합니다. 장마와 무더위를 이겨 풍요로운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빠른 저녁을 먹고 아내와 함께 들길 산책에 나섰습니다. 강화 화도면 가량포 들녘입니다. 7월 들녘은 그야말로 녹색정원!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키가 훌쩍 자란 벼들이 출렁입니다.

녹색 들판에 흰색의 점을 찍는 백로는 한 폭의 그림입니다. 또 논바닥을 긴 주걱부리로 휘젓고 다니는 천연기념물 저어새를 만나면 반갑습니다. 오늘은 저어새 두 마리와 백로가 사이좋게 먹이 사냥을 합니다.

녹색 들녘에 백로와 심심찮게 찾아온 저어새가 반갑습니다.
해질녘의 아름다운 저녁 노을.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갑니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이웃 마을에 도착해 걷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논둑길에서 호미질을 하십니다. 논둑에는 콩이 심어졌습니다.

"할머니, 김매시나 봐요?"
"장마에 풀 자라는 게 만만찮어."
"서리태죠?"
"한 보름 전에 콩씨를 넣었는데 풀이 콩을 잡으려고 하네."
"제초제 치지, 뽑으셔요?"
"그야 그렇지! 그래도 허는데까지 뽑아야지. 제초제보단 직접 매주는 게 좋잖아."
"너무 힘드실 것 같은데..."
"두말하면 잔소리지. 나도 이렇게 하다 풀한테 질 정도가 되면 우리 집 양반이 농약통을 짊어져."
 
할머니는 요즘 같은 날씨에선 저녁 일찍 먹고 선선할 때 밭을 매면 운동 삼아 할 만하다고 하십니다.
 
한 할머니께서 논둑길에 콩밭을 매고 계십니다. 삶에서 우러나온 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린 말이야. 이날 이때까정 일하는 게 몸에 배었지. 오늘 못다 매면 낼 새벽에 또 하구. 하루 종일 그냥 손 놓고 있으면 병난다니까!"

스물한 살에 시집와 오십 년을 넘게 농사지어 논 사고 밭 사고해서 삼 남매 번듯하게 키웠다고 자기 삶을 이야기합니다. 애들이 이젠 좀 쉬엄쉬엄하라고 하지만 몸에 밴 습관은 못 버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뒤돌아서는 우리에게는 당신이 살아온 모습과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십니다.

"근데 말이야. 아등바등 살 필요는 없어. 세상은 억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순리대로 분수껏 살면 돼!"

우리는 "" 하고 대답하며 "할머니, 건강 잘 지키며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의 뜻은 세상이 바뀌었으니 사는 지혜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할머니 논둑길 콩밭.

할머니 손은 우리를 향해 한참을 흔들고 계십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순리대로 분수껏'이란 할머니가 던져 준 귀한 말씀이 자꾸 귓가에 맴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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