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마철에 집에서 먹는 수제비, 색다른 맛입니다.

여름의 한복판. 계절이 목을 넘기는 소리처럼 장대비가 쏟아집니다. 세차게 주룩주룩. 바람까지 몰고서요. 며칠 전 장마가 한차례 지나간 뒤, 좀 잠잠하다 싶더니 오늘(13일)은 기승을 부립니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찜통더위에 시달리다 세차게 내린 비가 열기를 잠시 식혀주네요.
이른 새벽부터 내린 비가 종일 이어질 모양입니다. 일에 파묻혀 사는 농부들은 비 오는 날이 휴일. 고추밭 소독도 하고, 풀이 무성한 깨밭 김도 매줘야 하는데, 비가 내려 한가하게 낮잠을 즐겼습니다.
어느 새 점심 때가 되었나 봅니다.
밀가루에 계란을 풀고 물을 섞어 되직하게 반죽하였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비 오는 날 칼국수 대신 수제비라? 칼국수는 반죽하고 방망이로 밀고 칼로 썰고! 아내는 만들기가 좀 복잡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수제비는 반죽하여 끓는 물에 뚝뚝 떼어내기만 하면 되니까….
나는 우산을 받쳐 들고, 호박밭에서 여린 단호박 하나 따왔습니다. 대파도 몇 뿌리 뽑구요.
아내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착착 준비를 시작합니다.

수제비를 끓일 육수 준비가 먼저입니다. 수제비 맛은 육수가 좌우한다면서 멸치, 마른 표고, 북어포, 양파, 대파 등을 넣어 끓이다 다시마를 우려냅니다.
이제 밀가루 반죽을 할 차례. 달걀을 풀고 적당히 물을 넣은 다음, 몇 번 치대면서 좀 되직하게 반죽을 끝냈습니다.
"당신, 감자를 좀 까서 납작납작 썰어줄 수 있죠? 호박, 양파도 채 썰어주면 좋고요!"
집에서 나는 채소가 총동원입니다. 아내는 자급자족하는 농사의 진가가 여기서 나온다면서 즐거워합니다. 요즘처럼 물가가 치솟는 때에 애쓴 얼치기 농부의 땀이 빛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내는 끓는 육수에 밀가루 반죽을 한입 크기로 떼어 넣습니다. 그 솜씨가 많이 해본 사람처럼 능숙합니다.
수제비가 부르르 끓어오르자 동원된 채소를 몽땅 넣습니다. 이제 한소끔 끓이자 맛난 수제비가 드디어 완성! 번거로울 것 같은 요리가 쉽게 끝났습니다.

별맛이 있을까? 마지막으로 집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아내가 한입 건넵니다.
"야! 정말 맛있네. 간도 딱 맞아!"
내가 엄지척을 하자 아내 입기에 미소가 번집니다.
"비 맞고 밖에 나가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죠! 저녁에는 감자 빈대떡 부칠 테니 막걸리 한잔하세요!"
반찬은 열무김치 한 가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수제비 한 그릇이 금세 뚝딱입니다. 비 오는 날 집에서 만들어 먹는 감자수제비가 참 별미네요.
창밖에는 여전히 장맛비가 세차게 내립니다. 여름 한복판에 내리는 비에 들도 숲도 더욱 짙어지겠지요. 그나저나 피해 없이 이제 좀 그쳐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