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욕의 터 청와대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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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욕의 터 청와대를 찾아
  • 석의준 시민기자
  • 승인 2022.07.2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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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를 대통령 박물관으로 만들면 어떨까?

윤석열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청와대가 개방 됐다. 첫 날부터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내방을 했다. 개방 43일 만에 100만 명이 넘었다.

언젠가는 가봐야지 하다가 장마가 중부권에 도달하여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날 찾아 나섰다.

 

청와대는 1968년 북한 특수부대 김신조 일당의 습격 이후 앞길은 물론 인왕산, 북악산까지 철저히 통제 되어왔다.

그 이후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인왕산 북한산 일부의 통행이 허용 됐고, 2006년 북악산 성곽로에 이어 2020년 북측 둘레길이 개방됐다.

윤석열 당선인 시절 청와대를 취임과 동시에 개방 한다고 하자 문재인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머지 북악산 남측 면을 4월5일 개방하여 완전 통제가 풀렸다.

그동안 청와대 관람은 매주 화~금요일과 둘째, 넷째 토요일에 사전 허락을 받은 사람에 한해 최대 1시간 30분씩 이뤄져 왔다.

아직도 일부 내실 등은 그대로 통제를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청와대 터는 고려시대 남경(南京)의 이궁(離宮)이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26년(세종 8년)에 창건된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밖의 후원에 해당하는 이 지대를 경무대라 하였다.

일제 강점 후인 1927년, 일제는 이곳에 조선총독 관저를 지어 사용하였다.

1948년 8월 대한미국 정부수립과 함께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다시 경무대라는 이름을 되찾아 관저로 사용하였고 윤보선 대통령 때 현재의 청와대로 개명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현 집무실이 좁다는 이유로 관저를 새로 지어 집무실과 100m 떨어뜨렸는데, 좁다는 이유보다는 풍수의 의미가 더 담겨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1993년 구 건물은 일제잔재 청산 차원에서 철거되었다.

경복궁 담을 따라 걸어 청와대 동편 춘추관 앞에 닿았다. 장마 비 속에서도 온갖 꽃들이 만발하여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정문입구까지 숲이 우거진 길이 수려하다.

동편 37문은 비가 오는 터라 좀 한가했다. 일반인은 미리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데, 65세 이상은 예약의 불편을 감안, 그 자리에서 바로 입장권을 끊어줘 고마운 마음으로 입장했다. 37문으로 들어가니 이미 본관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본관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녹지원 쪽으로 향했다. 숲길을 따라 돌계단을 지나니 넓은 평지가 있는 녹지원이 나왔다, 잔디가 비에 젖어 오늘따라 더 푸르게 느껴진다.

 

녹지원은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120여종의 나무와 역대 대통령의 기념식수가 있다. 상춘재에 올랐다. 상춘재는 국내외 귀빈의 의전행사와 비공식회의를 진행하는 장소다. 전통 한옥건물인데 내부가 공개되지 않아 건물 외관만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이어 상춘재 바로 위 침류각으로 향했다.

침류각(枕流閣)은 경복궁 후원에 연회를 베풀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 뜻에서 침류(枕流)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1900년대 초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어 건물 전면 현판이 인수문(仁壽門)으로 되어 있는 관저에 도착했다.

 

내실은 관람이 통제되어 볼 수가 없었으나 규모는 상당했다. 입구 첫머리에 의전실이 있었고, 안쪽으로 갈수록 내실격인 침실, 드레스룸, 식당, 미용실, 주방으로 이어졌다. 특히 언론에 언급된 침실이 궁금해 통제요원에 물으니 통으로 80평이 아니고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눠져 있다고 전한다.

 

본관까지는 약 100여m쯤 거리다. 이어 청와대 구 본관 터에 닿았다.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고 알려졌던 명당 터이다.

 

정원으로 나오기 전 옆 동산에 박근혜 대통령의 기념식수가 보인다. 비를 맞고 서있는 기념수를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청와대 본관에 이르니 노태우 대통령이 건축했다는 머릿돌이 먼저 보인다.

경내는 신발에 덧신을 신게 한다. 각종 먼지 및 물기를 막기 위해서다. 누구 하나 불평 없이 따랐다. 현관에 들어서니 샹들리에가 켜져 있고, 건물의 웅장함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으로 들어서니 간담회나 오찬, 만찬이 열리는 소규모 연회장인 인왕실이 있다. 외국 정상이 방한할 때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 반대쪽은 대규모 인원의 임명장을 주거나 회의를 하는 충무실이 있었다. TV에서 자주 본 장소들이다.

 

이어 2층으로 올라갔다. 오른쪽은 대통령 집무실 및 접견실이다. 보기만 해도 권위가 느껴진다.

 

반대편 왼쪽으로 돌으니 영부인이 사용한 공간인 접견실과 집무실이다. 우선 특징적인 것이 역대 영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부터 김정숙 여사까지 9명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넓은 공간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놀랍다.

 

‘여자팔자는 뒤웅박’이라고 웅얼거리는 육칠십대 남성분들의 대화 내용이 들린다. 젊은이들에게 지청구를 듣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얼른 주위를 살펴본다. 다행스럽게도 젊은이들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 건물 밖으로 나왔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평일인데도 관람객은 상당했으며 80~90%는 여성이다.

넓은 정원, 푸른 잔디 위에 ‘청와대를 국민 품으로’ 라고 쓴 붉은색의 조형물이 보인다.

 

정문을 나와 서쪽 편 영빈관으로 향했다, 다른 건물도 그랬지만 영빈관은 건물만 덩그러니 크고, 예술성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걸 보면서 스페인의 가우디성당이 불현듯 생각난다. 성당 하나를 몇 백 년에 걸쳐 짓고, 지금도 짓고 있는 그런 마음과 정성이 우리에게는 어째서 없는 것일까?

아마도 우리 민족은 급하게 때를 맞춰 농사를 지어야 그나마 굶지 않고 살 수가 있었고, 오랜 세월 수많은 외세를 겪어내며 살다보니 수백 년에 걸친 건축을 할 여유와 힘이 없었던 탓일 것이다.

수많은 영욕의 세월을 간직한 청와대. 왕들의 궁궐처럼 덩치만 크고 대통령 집무실로의 기능성은 떨어진다는 논리가 맞다.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으로 청와대는 국민에게 돌아왔다.

 

이제 남은 건 이 좋은 터에 거기에 걸 맞는 기능을 부여했으면 싶다.

대통령 박물관도 괜찮지 않을까?

오운정, 미남불, 칠궁, 사랑채 등은 다음으로 미루고 정문을 나선다.

 

청와대 앞 로터리 탑 위로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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