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아서 어찌 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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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아서 어찌 쓸 것인가
  • 이세기
  • 승인 2022.07.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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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손바닥소설 - 북창서굴]
(11) 용궁사
용궁사
용궁사

 

용궁사(龍宮寺)

 

온통 산빛이 여름이다.

장맛비가 연일 쏟아지더니 이틀째 맹더위가 이어졌다. 축축한 땅에서 기어 나온 지렁이가 댓돌 위에서 메말라 죽어갔다. 죽은 지렁이 몸에 새까맣게 개미들이 몰려들었다. 몸이 근질거렸다. 설핏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몸이 근질거렸다.

뱀이 천장에서 떨어졌다. 악몽이었다.

비밀 중에 하나를 털어놓아야겠다. 노란 달걀을 훔친 적이 있었다. 항구가 가까운 ㅅ동에 살 때이다. 동네에 자동차와 기계 부품 수리점이 많았다. 열 살이었던 나는 세 살 터울 형과 동네에 다니면서 구리, 스테인리스, 청동 등을 모았다. 값 나가는 구리선을 1m 정도 주운 날은 천만금을 얻은 것처럼 기뻤다.

구리선을 얻기 위해 모은 전깃줄은 야적장 공터에 가서 불을 놓고 태웠다. 시꺼멓게 연기가 나고 불씨를 헤치면 황동빛 구리선이 얼굴을 내밀었다. 구리 선을 차곡차곡 모아 보름에 한 번 정도 고물상에 팔아 돈을 받았다. 군것질 할 수 있는 동전 몇 개가 손에 쥐어졌다.

돈이 되는 구리를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끊어진 전화선이나, 전기공사를 하고 남은 전깃줄을 찾아 고양이처럼 지붕을 타고 다녔다. 지붕이나 담을 탈 때는 날다람쥐와 같이 몸이 가벼웠다. 하지만 구리를 모으는 일은 얼마 가지 못했다.

형은 화장으로 안강망 배를 타기 위해 집을 떠났다. 나는 혼자가 되면서 구리선을 모으는 일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날로 커가는 몸은 늘 허기지고 배가 고팠다. 내 몸은 호랑이처럼 자라고 있었으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먹고 싶은 냄새는 자동차에서 나오는 휘발유 냄새였다. 맡을수록 늘 배가 고팠다. 휘발유 냄새는 과일가게에서 나는 과일 냄새와 뒤범벅이 되면 묘한 마력을 지닌 신선한 냄새가 되었다.

사는 동네는 길 건너로 튀김집이 있었다. 고구마, 박대, 야채 등을 튀겨 좌판에 놓고 팔았다. 튀김 중에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노란 달걀 튀김이었다.

튀김집에서 흘러나오는 기름 냄새는 마법과 같이 홀리는 냄새였다. 냄새만 먹다가 튀김을 먹고 싶었다. 유독 노란 달걀이 먹고 싶었다. 내 손에는 달걀을 살 돈이 없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노란 달걀을 쥐고 뛰는 모습이 팔딱거렸다. 노란 달걀을 훔쳐 먹기 위해서 나는 며칠이고 튀김집을 멀찌감치 기웃거리며 망을 보았다. 몇 번이고 튀김집을 지나쳤다. 드디어 나는 행인들이 적은 시간을 택해 망설이다가 노란 달걀을 훔쳤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심장 고동 소리를 들으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좌판을 장식하고 있었던 노란 달걀 한 개를 손에 움켜쥐고 힘껏 뛰었다. 다리가 허공을 짚었다. 푹신했다.

도둑이야!

도둑놈 잡아라, 하고 소리가 들렸다. 구름 위를 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를 달리는 것 같았다. 숨이 찼다. 속도를 내서 뛰다가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좁고 어둠침침한 골목이었다. 숨어서 가쁜 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손아귀에 달걀이 쥐어진 것을 잊었다. 가슴 뛰는 소리와 근육이 온통 긴장되어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골목으로 들어오는 사람의 기척이 없자 비로소 손아귀를 폈다. 납작 찌그러진 노란 달걀이 쥐어져 있었다. 달릴 때 손에 꽉 쥔 힘 때문이었는지 으깨어져 있었다.

순간 나는 손아귀에 으깨어져 있는 달걀을 입에 떨어 넣었다. 순간 숨이 막혔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등을 두드렸다.

손은 땀과 기름이 뒤범벅되어 미끈거렸다. 손에 밴 기름 냄새와 함께 두려움이 몰려왔다. 튀김집 주인이 끝까지 쫓아올 것만 같았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땅에 발이 깊이 박혀있는 것 같았다.

저녁이 왔다. 어둠이 새하얗게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둠이 몰려오도록 집에 가기가 두려웠다. 풀벌레 울음이 어둠 속에서 자욱하게 일어났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악몽이었다.

지난밤에도 꿈을 꿨다. 뱀이 쫓아오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꿈이었다. 뱀이 천장이고 책상 위고 바닥이고 혀를 날름거리며 끈질기게 사방에서 나를 쫓아왔다. 까치발로도 내디딜 곳이 없어 조여 오는 숨이 막힐 때쯤 꿈에서 깨어났다.

뱀이 천장에서 떨어질 때마다 악! 외마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런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또 뭔 생각을 했나 봐?, 라고 넌지시 물었다.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업(業)이란 끈질기게 따라온다. 또렷이 기억으로 유전된다. 두근거리는 어두컴컴한 심장에 겨우 말을 했다.

뱀이 쫓아와!

용궁사 전경
용궁사 전경

용궁사나 가야겠다.

내가 아는 한 영종도에는 명물이 세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무의도에서 겨울에 나는 생굴이고, 또 하나는 공항 활주로에서 이륙해 허공을 비상하는 은빛 비행기다. 그리고 용궁사 입구에서 비를 맞고 서 있는 각하용(覺何用)이라고 각자된 돌비다.

입구 귀퉁이에서 비켜 서 있는 입석을 처음 보았을 때 때마침 산비가 내렸었다. 비에 젖은 돌비 앞에서 감전이 된 채 상처 입은 짐승이 되어 저녁이 올 때까지 한동안 오도카니 서 있었다.

용궁사 올라가는 길은 온갖 풀벌레 울음으로 가득하다. 산길에서 다람쥐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눈알이 새까맣게 익은 벚빛이다. 나는 서슴없이 풀벌레 울음 가득한 길 없는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산 숲으로 들어갈수록 골짜기에는 저녁이 오고 있는지 푸르스름한 검은빛으로 물들었다.

온통 산빛이 여름이었다.

각하용 돌비
각하용 돌비
용궁사 가는 길
용궁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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