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도 홍수 피해 안전지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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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도 홍수 피해 안전지대 아니다
  • 박병상
  • 승인 2011.08.11 1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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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우면산 산사태 현장

이변은 자주 발생하지 않아야 이치에 닿지만, 요즘 기상이변은 일상으로 된 느낌이다. 전례 없이 추웠던 지난 겨울은 서해안의 주꾸미와 병어가 제철에 드문 이변으로 이어졌는데, 언젠가부터 비가 내리지 않는 장마전선 뒤에 ‘정체전선’을 동반하는 국지성 호우가 빗발치더니 올해는 정체전선이 장마철 이전부터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예년보다 많은 비를 뿌린 장마철이 지나자마자 잠시 불볕더위가 몰아치는가 싶었는데, 그것도 잠시. 뒤를 이어 정체전선이 본격적으로 중부지방을 한동안 관통하면서 중국에서 몰려와 터진 물풍선들이 서울과 중부지방에 걷잡을 수 없는 수해를 안겼다.

예년보다 강력한 라니냐가 장마전선이 물러간 우리 해안으로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을 밀어붙이는 가운데, 중국에서 발생한 물풍선이 북태평양고기압 전면을 따라 우리나라로 넘어와 시베리아에서 확장되는 한랭전선과 만나 한꺼번에 터진 이번 호우는 보기 드물게 짧은 시간에 많은 강수량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정도와 장소가 달랐을 뿐, 요사이에 발생하는 국지성 호우는 지역을 돌며 해마다 계속되었으므로 누구라도 이번 호우를 기상이변으로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심화하는 지구온난화는 적도 태평양의 수온을 5개월 넘게 섭씨 0.5도 이상 끌어올리거나 내리는 엘니뇨와 라니냐만 강력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이맘때 비가 잦은 남중국에서 편서풍을 탄 수증기가 몰려오는 현상은 자연스럽지만 지구온난화는 그 양을 증폭시켰을 텐데, 장강을 세계 최대로 가로막은 샨사댐은 우리나라에 오는 수증기를 그 만큼 추가할 것이다. 이제 2000년 이전에 거의 볼 수 없던 기상이변이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되는 형국이다. 국지성 호우니, 100년 만의 폭우니 하는 상투적 소리는 이제 귀를 자극하지 못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폭우는 부자들이 모여 사는 서울 강남이나 산촌의 초등학교에 자원활동을 간 대학생을 희생시킨 강원도 춘천시 신북면이나 예외가 없는데, 산허리를 이리저리 끊는 임도가 무분별하게 개설되었으니 산사태는 크게 늘었을 게다. 다만 산간 마을에서 발생해 소외된 희생자를 언론이 크게 주목하지 않았을 뿐일 터. 지방자치단체 책임자의 상투적 ‘엄청난 비’보다 어떤 원인이 있을 게 틀림없는데, 우면산 산사태는 하필 아스팔트 너머 서울 강남 부자마을의 아파트단지를 덮쳐 언론의 관심을 더 끌었다. 산사태 발생 여부가 알려지지 않은 인천은 어떤가. 바다가 가까우니 느긋해도 될 만큼 한가로울까.

1998년 강화도는 장마가 지난 뒤 하루 600㎜ 비가 내려 곳곳에 산사태를 일으켰고 지금도 그 상처를 안고 있다. 이후 우리나라 여기저기에서 내리는 하루 600㎜ 비는 큰 뉴스거리가 못 되었는데, 강화를 제외한 인천에서 눈에 띄는 산사태는 사실상 거의 없었고 그로 인해 희생된 시민도 드물었다. 하지만 홍수 피해까지 없었던 건 아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칠갑이 된 회색도시에서 빗물을 완충할 수 없는 만큼, 크든 작든, 홍수 피해가 예외 없이 발생했다.

흩뿌리는 정도가 아니라면, 양이 많든 적든, 내리자마자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흥건히 적시며 어디론가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은 비가 그치자마자 말끔히 사라진다. 그러므로 차창을 덮는 물방울과 와이퍼로 시야가 방해되던 자동차나 구두를 신은 보행자는 이내 편안해지겠지만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이번 서울 강남에서 보았듯, 도시는 순식간 물에 잠긴다. 배수관로에 이물질이 끼었다면 제거해서 같은 사고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지만 배수용량보다 많은 비가 한꺼번에 떨어질 경우,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지구온난화가 심화하는 만큼, 국지성호우의 강우량도 점점 급증하므로 하수구 맨홀 뚜껑이 튀어 올라올 정도로 배수관에 물이 넘치게 하는 비는 앞으로 얼마든지 재현될 것이다.

1998년 이후 기상관측 이래 최대였던 호우는 2000년 이후 거듭되고 있다. 이럴 때 호우 피해를 누적 경험한 도시는 기존 배수 체계를 확충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면적이 상대적으로 좁은 섬 지방처럼 금방 바다로 흘러들면 다행이지만 인천은 대도시다. 만조 때 큰 비가 내리면 배수가 어렵다. 그럴 때 배수관망을 타고 낮은 곳으로 흘러든 물을 한시적으로 보관했다 간조 때 배출해야 한다. 서울에도 사정이 비슷하다. 한강 수위가 높아진 상태에서 수면 아래 지역에 쏟아지는 빗물은 쉽게 처리하지 못한다. 지하에 완충 용량이 충분한 저류소나 지상의 유수지에 빗물을 임시로 저장한 뒤, 한강 수위가 낮아진 뒤 방류하는 시설을 충분히 갖춰야 안전할 수 있지만, 어쩌다 사용하는 철근콘크리트 완충 시설을 만족스럽게 갖추어 유지하려면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회색도시의 홍수 피해는 배수 여건에 좌우되는 경향이 짙지만, 빗물을 사전에 완충하는 것은 무엇보다 효과적이다. 그러자면 도시의 보습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대안은 녹색이다. 떨어진 빗물을 전혀 흡수할 수 없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바닥보다 녹지가 보습력이 높고, 녹지보다 습지가 훨씬 높다. 도시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사이 곳곳에 많은 녹지를 확보하고 그 녹지 중 일정 면적 이상으로 습지를 조성한다면 부담스런 강우도 능히 완충할 수 있다. 과거 논과 밭이 가까웠을 때, 도시는 수해에서 멀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물론이고 크고 작은 저수지가 골짜기를 지킬 때, 산사태는 드물었다.

유럽의 도시들이 대개 그렇고 가까운 일본도 그런 녹지와 습지를 마련하려 노력한다. 도시 면적의 50퍼센트를 녹지로 바꾸는 걸 당연시하는 독일을 보자. 보행자도로에 가로수를 두 줄로 심고 그 사이에 풀을 충분히 심는다. 차도 중간에 나무를 넓게 심어 안전을 도모하는 도시는 외곽 숲에서 도심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을 조성해 놓았다. 가로와 세로 녹지축은 물론이고 도시를 동심원으로 잇는 녹지축은 곳곳에 조성된 자투리녹지와 만난다. 무엇보다 부러운 건, 습지를 충분히 확보한 녹지를 도심에 넓게 배치하는 모습이다. 풍부한 보습력을 갖춘 만큼, 도시는 수해를 완충하면서 빗물을 지하로 스며들게 한다. 그뿐인가. 옥상과 벽에 풀과 덩굴성 나무를 심고 주차장 바닥에 잔디를 심은 블록을 깔았으며 심지어 전철 지상 구간의 레일 사이까지 잔디를 푹신하게 심었다. 덕분에 홍수 피해를 잊은 도시는 시원하고 시민들은 사용하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집중되는 강우량이 우리보다 적은 편이고 인구밀도가 우리보다 낮으며 멀지 않은 외곽에 숲이 잘 발달된 독일 도시를 우리나라와 단순하게 비교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 녹지는 사실상 지나치게 좁을 뿐 아니라 보습력도 신통치 않다. 녹지축은 물론이고 도시의 공원에 습지는 거의 없다. 시 공원당국은 나무나 풀보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시설 도입을 더 선호하지 않던가. 간혹 화강암 바닥에 분수와 인공폭포를 덩그러니 만들었지만 여름 한철 보기 시원할 뿐, 빗물을 완충하는 보습력과 거리가 멀다. 여느 도시처럼 인천도 마찬가지다.

높은 산이 없고 바다가 가까운 인천에 중앙 언론들이 한동안 주목할 정도의 수해는 자주 발생하지 않지만, 녹지는 부족하고 습지도 거의 없다. 한남정맥을 타고 북쪽 가현산에서 남쪽 청량산까지 이어지는 외곽의 S자 자연녹지축이 있지만 도시를 관통하는 가로와 세로 녹지는 조성하지 않았거나 부실하고, 주변 공원과 이어지지 못한다. 도시는 그래서 덥고 빗물을 완충하지 못하며 시민의 일인당 에너지 소비는 독일보다 많다.

녹지축과 더불어 습지가 있는 녹지를 넓게 조성할 당시 독일 도시보다 현재 인천의 재정 수입이 더 높을 텐데, 무관심하거나 과문해서 그런가. 시 당국은 아직 도시 녹지와 습지를 조성하는 일에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최근 인천시의회가 ‘인천시 녹지 보존 및 녹화 추진에 관한 일부 개정 조례안’을 발의하며 외곽 S자 녹지축 훼손을 방지하려고 움직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고무적인 일이긴 한데, 도심 내의 녹지에 관심은 아직 부족해 보여 아쉽다. 그런데 얼마 전, 갈산근린공원 부지에 지하수가 용출되는 우물이 발견되자 시민사회와 일부 시의원이 습지생태공원으로 추진하자는 제안이 나와 반가웠다. 이제 시작인 셈인가. 희망적이라 다행인데, 섬과 농촌지역을 제외한 지역, 다시 말해 인구가 밀집된 인천 도심에는 조성된 녹지와 습지가 태부족하다. 점점 심화할 국지성호우를 완충하기 대단히 버거울 수밖에 없다.

이번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경고를 한 국지성 호우는 느긋한 인천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걸 강력하게 경고한다. 다른 지역보다 지구온난화 정도가 2배 가까이 높은 우리나라 서해안은 앞으로 적지 않은 국지성 호우 뿐 아니라 태풍이 들이닥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견하는 만큼, 인천은 대비해야 한다. 배수관망을 미리 검토해 모자라면 확충하는 한편 지상의 유수지와 지하에 저류지 조성도 지역에 따라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도시의 보습력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더 많은 개발, 더 높은 건물을 지으려는 비용의 일부만으로 도시에 녹지와 습지를 우선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전에 멀쩡한 외곽의 S자 녹지를 도로로 자르거나 뚫는 일은 자제해야 할 테고, 무엇보다 당장 생태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송도신도시 인근에 알량하게 남은 갯벌을 보전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더는 느긋할 수 없다. 남은 시간이 이제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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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긍하며 2011-08-10 10:59:51
맞는 말씀입니다. 이제 여름이면 식상해지는 뉴스가 되어버린 내용(?)입니다. 4대강이 아니라 바로 이런 제안들을 실현해 내는 것이 나라가 해야할 일들이지요. 지난번 인천대공원을 가봤더니 산책길 모두 흙으로 변해있어 잘한 일이라고 칭찬하며 걷고왔습니다. 가장 빠르고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피부에 와닿는 정책이 주변에서 일어나면 그것이 변화인것입니다. 콘크리트 들어내기, 풀과 나무를 빈공간에 지속적으로 심어가기, 박소장님이 말씀하신 이런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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