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일 강요하는 에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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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일 강요하는 에어컨
  • 박병상
  • 승인 2022.08.23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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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처서가 다가오면 찌는 듯하던 삼복더위도 주춤한다. 아닌 게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한데, 올여름 처음으로 천장에 달린 에어컨을 켰다. 그것도 아침부터. 급히 원고를 써 보내야 맘 편하게 오후와 내일 일정을 보낼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인데, 허리의 뻐근함은 어제 오후 이후 계속이다. 원고 마치고 조금 걸으면 나아지려나?

동료라기보다 동생 이상으로 가까이 지내던 출판인이 세상을 먼저 떠났다. 그의 주선으로 종로구 한 도서관이 주관한 ‘길 위의 인문학’ 강좌에서 맡은 강의를 매듭지을 때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의 성화로 쓰기로 한 청소년 책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는데, 그보다 책 읽지 않는 어른이 아이에게 책을 안기는 풍토에 아쉬움을 표했다. 아이가 억지로 책 읽으면 뭐 하나? 책 내용과 관계없는 세상으로 던져져 책을 거들떠보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을까를 염려했는데, 한 달 전이다.

마음이 구만리라도 현실에 얽매어 솔선수범 못하는 어른도 안타까우니,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자며 아이에게 책을 권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고집스러운 출판사도 어린이나 청소년 대상의 책이 서점 분위기를 주도하는 추세는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학기술의 오남용으로 사회정의와 생태계 안정이 훼손되어갈 때 그가 출간하는 책은 먹구름 속의 빛과 같았는데, 팔리지 않는 책이 쌓이니 좌절이 컸다. 청소년 책을 추가 출간하자 고집 꺾지 않던 일인 출판사에 숨통이 다소 트였는데, 몸은 도무지 쉴 틈이 없었다.

가을장마가 뜨거운 태양을 식히기 전, 염천 하늘 아래에서 동분서주하던 젊은 출판인은 그만 쓰러졌다. 의로운 이웃의 신고와 심폐소생으로 치명적 응급상황을 면했지만 결국 숨을 거두었다. 4주 가까이, 막바지 코로나19 여파로 옆에서 수발하지 못한 가족과 소식 몰라 안타까워한 친지를 뒤로,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오던 사람들과 작별을 고했다. 이른 시간부터 장례식장을 메운 출판계 친구와 선후배, 그리고 스승들은 다시 못 만날 그와 나눴던 추억을 되새겼지만 아쉬움은 진했다. 산천초목 모두 쉬는 삼복더위에 몸과 마음을 그리 혹사해야 했나?

지중해 연안 국가는 한여름 낮에 시에스타를 즐긴다. 능률이 생기지 않는 더위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여름이 덥고 건조한 지중해 연안만이 아니다. 무덥고 습한 우리도 비슷했다. 밭에 다가오는 벌레는 풀어놓은 닭에 맡긴 채, 원두막에서 과일 깎으며 늘어지게 낮잠을 청했다. 그랬던 우리도 시에스타를 잊었다. 정 나누던 공동체가 경쟁에 휘말리면서 생긴 현상일지 모른다. 벌레를 해충이라 여기며 농약을 뿌리고, 초대형 양계장에 닭을 넘긴 사람들은 삼복에도 일을 멈추지 않아야 도태되지 않는다.

시에스타가 사라진 자리에 에어컨이 똬리를 틀자 한창 일하던 젊은이가 속절없이 세상을 뜬다. 가족의 느닷없는 슬픔과 이웃의 허망함은 어떤 위로도 채울 수 없다. 건강할 때 왜 갑자기 숨을 거둔 것일까? 유가족을 위로하듯, 이승보다 저승이 아름답기 때문일 리 없다. 저승에 마음 맞는 이가 더 많기 때문일 리 없다. 그는 기계가 아니라 생명이었다. 첨단 의료산업의 건강진단과 예방주사가 완비되었더라도 자연의 흐름을 잃는 생명은 건강을 잃기 쉽다. 땀 식히는 에어컨과 한기 막는 보일러는 일을 강요한다. 생태계가 가장 풍요롭고 아름다울 때 태어난 인간은 자연의 리듬을 잃었다.

코로나19는 생태계가 다양성을 잃자 창궐했다. 탐욕에 눈이 멀어 화석연료를 과소비하면서 기후가 위기를 맞았고, 생태계는 다양성을 잃었다.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생태계 파괴에 앞장선 인간은 순식간 전파된 감염병에 여전히 시달리는데, 코로나19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기술은 거리두기마저 무색하게 한다. 감염 추이가 주춤하기 무섭게, 사람들이 다시 바빠졌다. 화석연료를 태우는 에어컨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면서 생태계와 자신이 무너지는 걸 감지하지 못한다.

생태계를 무너뜨리면 안 된다는 소리를 외치려고 염천 하늘 아래에서 부지런하던 젊은 출판인이 무너졌다. 삼복더위 기간에 축 늘어져 원고를 미루던 소심한 지식인은 그를 기억하려 에어컨을 켰다. 원고를 마무리하고 작별의 시간을 더 가지려 한다.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인데, 그런다고 만날 수 없다. 세상은 조금 달라지겠지? 이제 에어컨을 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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