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위험보다 더 무서운 것 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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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위험보다 더 무서운 것 4가지”
  • 최원영
  • 승인 2022.08.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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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67화

 

위험은 대부분 밖으로부터 우리에게로 다가옵니다. 예상하지 못한 홍수나 가뭄, 또는 화재나 전쟁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큰 재앙만 위험은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크든 작든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사기를 당한다든지, ‘묻지 마’ 폭력을 당한다든지, 이렇게 평범한 우리의 일상에서도 남의 일만 같던 일들이 언제 우리를 엄습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깥으로부터 우리에게로 들어온 위험들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들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것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만약 그것을 알 수만 있다면 해결할 수 있는 방도를 수월하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오늘은 바깥에 있는 위험보다 더 무서운 위험은 우리 내면에 있는 다섯 가지라고 말하는 저자의 조언을 되새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고민은 ‘탐욕’에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고민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들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류슌)에는 고민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는 데 쫓겨 항상 마음에 여유가 없다. 지금 하는 일이 만족스럽지 않다.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다. 끔찍한 일, 불행한 사고, 실패가 거듭되어 침울하다.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어 스트레스를 받는다.”

불만족스럽고, 불안하고, 침울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그 ‘일’들이 사실은 내 ‘마음’이 부추기는 장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상처 난 마음이 또 다른 감정을 낳고, 그 감정이 또 다른 감정으로 이어져 결국 큰 사고를 칠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침에 붐비는 지하철 안은 만원이다. 출근 전쟁이 일어난 거다. 진절머리가 난다. 이것이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어 분노하고, 이 분노가 별것도 아닌 것에 다툼을 벌이는 거다.”

“중요한 자리에서 실수한 모습을 떠올리며 부정적인 상상을 하면, 불안감과 긴장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이렇게 무슨 일을 하든 마음은 늘 반응을 하고, 결과적으로 늘 짜증을 내거나 침울하게 되며, 또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과 압박감이나 실수로 인한 후회 등의 고민이 생긴다고 주장합니다.

《아잔 차 스님의 오두막》(잭 콘틸드)에서 저자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몸과 함께 시작되는 생명의 요소들이 안정적이라고 믿는다. 아이가 풍선을 갖고 놀다가 가시에 찔려 풍선이 터지면 운다. 총명한 다른 아이는 풍선이 쉽게 터질 수 있음을 알기에 터져도 그다지 슬퍼하지 않는다. 나중에 배설할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맛있는 음식만 실컷 먹는 식도락가처럼 사람들은 죽음이란 사실에 눈을 감은 채 장님처럼 산다. 그 뒤에 자연이 부르면, 아무런 준비도 없는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죽음을 생각하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곱씹어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살아 있는 동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에 매진할 수 있을 겁니다. 저자의 이 말은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환상이 우리의 탐욕을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말입니다.

저자는 바깥에 있는 위험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면에 있는 것이라며, 그것이 마음의 평안을 빼앗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것은 내면에 있는 ‘바람’, ‘불’, ‘물’, ‘도둑’입니다.

“바람에 대해서 알아보자. 사물은 감각기관에 접촉해 충동과 욕망, 화, 어리석음을 일으키며 우리 안의 좋은 것들을 파괴한다. 흔히 나뭇잎을 나부끼게 하는 바람만 보지만, 감각의 바람을 잘 지키지 않으면 욕망의 태풍이 일어날 수도 있다.”

“‘불’처럼, 탐욕과 미움, 망상은 늘 우리를 불태운다.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으로 인해 그릇되게 말하고 망상으로 인해 좋은 걸 나쁘게 보고 나쁜 걸 좋게 보고, 추한 걸 아름답게 보고, 하찮은 걸 귀하게 본다. 명상하지 않는 자는 이 점을 못 본다. 그래서 이런 불에 지배당한다.”

“‘물’처럼, 마음속에서 번뇌의 홍수가 일어나면 참된 본성은 흙탕물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도둑은 바깥에 없다. 마음속에서는 다섯 가지 집착과 집합체라는 강도들이 늘 우리를 강탈하고 때리고 파괴한다. 이 다섯 가지 집합체는 무엇인가?

‘몸’, ‘느낌’, ‘기억과 지각’, ‘의지 및 마음의 다른 요소들’, 그리고 ‘의식’이다.”

“첫째는 ‘몸’이다. 누구나 질병과 아픔에 시달린다. 몸이 기대에 어긋날 때 슬퍼하고 탄식한다. 자연히 늙고 쇠약해진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면 괴로움을 겪는다. 사람은 타인의 몸에 매력이나 혐오감을 느끼며 참된 평화를 빼앗긴다.

둘째는 ‘느낌’이다. 아픔과 즐거움이 일어날 때 그것들이 일시적이고 고통이며 우리 자신이 아님을 잊는다. 우리는 감정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이런 그릇된 이해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셋째는 ‘기억과 지각’이다. 인식하고 기억하는 것들을 자신과 동일시하면 탐욕과 미움, 망상이 일어난다. 그릇된 이해는 습관이 되고 잠재의식에 저장된다.

넷째는 ‘의지 및 마음의 다른 요소들’이다. 마음 상태들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여기에 반응하게 되고, 그러면 생각과 느낌, 좋아함과 싫어함, 즐거움과 슬픔이 일어난다. 우리는 그것들이 일시적이고 고통이며 우리 자신이 아님을 잊고서 그것들에 집착한다.

다섯째는 ‘의식’이다. 우리는 ‘나는 무엇을 안다. 나는 무엇이다, 나는 어떻게 느낀다’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다른 존재들과 분리되어 있다는 망상, 자아가 있다는 망상에 얽매인다.”

저자의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누구나 병에 시달리고 늙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아픔이든 즐거움이든 그것이 일시적이란 점을 받아들이면, 과거의 기억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으면, 고통과 슬픔 역시 일시적임을 받아들이면, 나 스스로가 다 안다는 망상에서 벗어나면 누구나 마음 도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겁니다.

저자는 이렇게 일러줍니다.

“이런 도둑들, 즉 그릇된 이해는 그릇된 행동을 낳는다. 부처는 승려들에게 다섯 가지 집합체의 참된 성질을 가르쳤고, 그것들을 나 자신이나 나의 것으로 붙들지 않고 놓아버리는 법을 가르쳤다. 누군가가 우리를 저주해도 우리에게 자아라는 느낌이 없으면 그 일은 그냥 내뱉어진 말과 함께 끝나고 우리는 고통을 겪지 않는다. 불쾌한 느낌이 일어나면, 그 느낌이 자신이 아님을 앎으로써 그 자리에서 멈추게 해야 한다. 그러니 다섯 가지 집합체를 탐구하라. 깨끗한 숲을 만들어라.”

한 번의 실수로 주눅이 들어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자신의 단점 때문에 장점까지도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것 역시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요.

바깥에 있는 위험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내면에 있고, 우리 내면에 있는 다섯 가지 착각 또는 그 착각으로 인한 위험성, 즉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도둑을 물리치기 위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떠올려봅니다.

‘몸’, ‘느낌’, ‘기억과 지각’, ‘의지 및 마음의 다른 요소들’, 그리고 ‘의식’, 이렇게 다섯 가지이었습니다.

저는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질병이나 병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금 느끼고 있는 불편함이나 분노, 미움 따위의 감정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나 인식이 틀릴 수도 있다는 태도로 그 사람을 마주하고, 좋고 싫음 자체도 일시적이며, 내가 모두 안다고 믿는 것 자체도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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