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으로 올라간 닭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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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으로 올라간 닭장집
  • 이세기
  • 승인 2022.09.02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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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손바닥소설 - 북창서굴]
(14) 닭장집 까막네
골목 안
골목 안

닭장집 까막네

어둑어둑한 저녁 부음이 왔다.

지금이야 없어졌지만, 화장터가 가까운 맞은편 동네에 있는 빌라 3층에서 살았었다. 신축 빌라였는데 젊은 건축주가 집을 짓기 위해 빌려다 쓴 사채가 화근이 되어 아흔이 넘은 고리대금업자를 죽이는 바람에 입주하자말자 가압류가 되었던 집이 나의 첫 신혼집이었다.

그 맞은편에 창문이고 차양이며 군데군데 몹시 덧방을 한 몰골이 앙상한 붉은 벽돌집 옥탑방에 노부부가 살았다. 1·4후퇴 때 해주 까마개에서 온 피난민이었다. 그집 노파를 까막네라고 불렀다.

도대체 자신과 맞지 않을 듯한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늘 뭔가를 바삐 훔치듯 했다. 고약한 성격을 은폐하기에 십상인 안경을 쓴 낯빛에 심술이 가득했다. 젊은이 못지 않은 기민하고 빠른 판단력만은 알아주던 괴팍한 노인은 아침저녁 시도 때도 없이 막무가내로 욕지거리를 해 댔다. 이웃에 살면서 나는 그 험한 소리를 들으며 견뎌야 했다.

한번은 동이 트기 직전 칠흑 같은 꼭두새벽이었다. 모두 잠에 취해 있을 새벽 댓바람부터 고래고래 귀청을 찢는 앙칼진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었다.

난데없이 가스통 밸브를 열고 다 죽여버리겠다고 난리는 치는 사내의 고함이 들렸다. 1층에 세 들어 살며 인근 식당 일을 하는 혼자 사는 여자의 집이었다. 굳게 닫힌 샷시문을 부서져라. 발로 걷어차는 것이 아닌가.

나와, 나오라고!

새벽에 일순간 벌어진 살 떨리는 공포에 빌라 사람들은 모두 숨죽여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그 순간 침묵을 깨고 까막네가 뛰쳐나왔다.

이 간나새끼, 어디서 짤까닥거리네, 그래 나왔다. 염병할 육시랄 놈 같으니라고! 네 에미가 나왔다, 네 에미 죽여라, 하며 노기에 찬 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간밤에 눈이 내려 얼어붙은 맨바닥을 까막네는 맨발에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와 사내보다 더 큰 목소리로 가스통을 부여잡고 나 죽여라, 하며 흥분해 날뛰던 사내를 일거에 제압했었다.

사내는 죽자 살자 사납게 달려드는 까막네를 여간해서 이길 재간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다 경찰차가 오자 냅다 줄행랑을 쳤다. 사내의 뒷모습을 측은하게 한참이나 지켜보며 까막네는 에미나이 불쌍타, 하면서 연신 말끝을 맺지 못했다.

이게 웬 날벼락이람!

이른 새벽부터 이 광경을 뒷짐 지고 숨죽이며 지켜보았던 점잖은 동네분들이 그재서야 입을 떼며 나서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이 못 쓰겠군!

언제나 그러하듯이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나서야 조용할 날이 없는 골목에 평온한 하루가 열렸다.

청포도 넝쿨
청포도 넝쿨

까막네 집은 동네에서 평상집이라고 불렸다. 옥상에 대나무 평상이 있었다. 형틀 목수였던 남편이 담양산 대나무를 구해와 만들었는데 이사 갈 적마다 대나무 평상만은 빠뜨리지 않고 신줏단지 모시듯 가지고 다녔다. 평상 위로는 여름이면 청포도 넝쿨이 자랐다.

그런데 하루는 용접공이 오더니 땀을 뻘뻘 흘리며 옥탑방 담벼락에 철골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물을 씌우는 공사를 했다. 닭장이었다. 도심 한복판 옥상에 닭장이라니! 심심풀이 관상용으로 닭을 키우겠거니 했다.

처음에는 제법 큰 장닭이 두세 마리였던 것이 일주일이 지나자 십여 마리로 불어났다. 시도 때도 없이 짖는 풍산개와 고양이에 닭까지 키우니 모양새가 그야말로 동물 사육장이 따로 없었다.

푹푹 찌는 한여름, 닭장에서 풍겨 나오는 닭똥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창문을 열기라도 하면 그놈의 닭장에서 파드닥거리는 닭의 날갯짓은 또 뭔가. 그러다 새벽이면 또 여지없이 ‘꼬끼오’하는 닭의 울음소리는 어느 깊은 산중에 와 있는 듯했다. 한밤중과 새벽 분간을 못하는 숙맥 닭이었다.

기가 막힐 일은 술판이었다. 닭백숙 간판이 걸린 것도 아닌데 소리 소문 없이 옥상으로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주로 동네의 술꾼들이 옥상으로 올라가 까막네에게 백숙을 안주로 술 시중을 받았다.

닭장 안의 닭이 한 마리씩 사라지는 날에는 여지없이 장정 서너 명이 평상에 모여 화투판을 벌였다. 밤늦은 시간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언쟁이 오가고, 어둠을 뚫고 노랫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옥탑에서 흘러나오는 왁자한 소리는 다행히 땅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에도, 장마철에도, 대나무 평상 위 청포도 넝쿨이 시들어 사라질 때까지 닭장 안의 닭이 하나둘 사라졌다.

간혹 옥탑방에는 해수(咳嗽)를 몹시 앓고 있는 뼈마디가 앙상하게 드러난 모로 누운 까막네의 남편이 설핏 보였다.

까막네가 소싯적에 부평 약산에서 돗자리를 깔고 백숙과 술을 팔며 들병장사로 밥을 먹고 살았다는 후문을 들은 것은 남편이 죽고 옥상의 닭장집이 철거된 후의 일이었다.

마침 내린 비에 주택조합 아파트를 짓기 위해 철거 예정 중인 까막네의 집은 어둠 속에 젖어 있었다. 옥상에는 이제껏 애지중지 키우던 청포도 넝쿨만이 먼 곳을 향해 안간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뻗어나갔다.

무연(無緣)한 까막네의 죽음을 알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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