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남북 물길, 헤쳐나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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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남북 물길, 헤쳐나가는 거죠”
  • 김현우
  • 승인 2022.09.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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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설계하는 인천 문화](2)
[인터뷰 - 인천의 연구자들②]
인천문화재단 평화교류사업단 정민섭 대리
글·사진 = 김현우 화수분제작소 대표
 인천in은 9월부터 11월까지 ‘청년이 설계하는 인천 문화’를 주제로 인천 문화예술 청년 8명의 인터뷰, 기고, 기사 등 다양한 글들을 싣습니다. 청년의 눈으로 인천문화의 현재, 가치, 정체성, 발전방향 등에 대해 알아보고 제언합니다.

 

인천문화재단 평화교류사업단 정민섭 대리

 

-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네, 저는 인천문화재단 평화교류사업단에서 일하고 있는 정민섭입니다. 재단에는 학예연구직으로 입사해서 고고유적을 다루는 조사를 주로 했고요. 현재는 평화교류사업단에서 평화와 관련한 문화자산을 연구하고, ‘평화학교 전시관’, ‘평화예술 라키비움’ 등 평화를 주제로 하는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 인천문화재단 평화교류사업단은 어떤 일을 주로 하나요?

사업단에서는 평화라는 개념과 그 맥락을 폭넓게 바라보면서 다양한 사업을 만들어가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저희가 하는 사업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뉘어요. 그게 평화문화 조사연구 사업과 평화문화 예술확산 사업인데요. 현재는 조사연구 사업을 좀 더 활발하게 하고 있어요.

관련해서 작년부터 서해 접경지역에 있던 근대기의 포구를 조사하고 있어요. 포구가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 분단 이전에는 서해에서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던 소통의 창구였거든요. 그래서 그 포구들이 어디에 있었고 어떤 모습이었을지,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상은 어떠했을지 등을 살펴보고 있죠.

그밖에 남북 역사문화 교류 사업도 비중이 큰 사업이에요. ‘임진예성포럼’이 세부 사업 중 하나인데, 인천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 중국 연변대학교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국제학술포럼이에요. 올해는 경기도에서 제5회 임진예성포럼이 열릴 예정인데, 어떻게 남북 접경지역을 평화롭게 활용할지를 논의하는 방향으로 점차 주제를 확장해가고 있어요.

 

- 어떤 계기로 평화교류사업단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 전공은 고고학이에요. 성곽을 연구해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도 관련 논문을 발표하고 있어요. 이전에 인천문화유산센터에서도 일했는데요. 그때는 강화도에 있는 성곽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업무를 주로 맡았어요. 그러다 인천문화재단으로 와서 강화도의 해양 관방 유적을 삼차원으로 스캔하는 작업이나 그 유적을 다루는 총서를 기획하고 발간하는 작업, 또, 이를 시민에게 알리는 강좌나 답사 등의 사업을 진행했죠. 당시 남북 역사문화 교류 사업에도 함께 참여했는데요. 현재 여기서도 그 사업을 계속 이어서 하고 있어요.

 

 

- 연구자로서 바라보는 인천은 어떤 도시인지 궁금합니다.

근래 들어 이전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유산들을 새롭게 재조명하는 분위기가 일고 있어요. 인천 중구 신흥동에 있는 관사마을을 사례 중 하나로 들 수 있겠네요. 사실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많은 유산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잖아요? 다행히 아직 남아 있는 유산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그 의미를 찾는 작업이 많아졌어요. 부평토굴도 그런 맥락에서 그 가치가 다시 발견되고 있는 유산이죠. 이런 점에서 인천은 굉장히 매력적인 도시예요.

다만, 안타까운 건 인천의 지역사가 아직 기록화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각 지역에서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공간은 또 어떤 변천을 거쳤는지,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등 이런 자료가 켜켜이 쌓이고 정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왜냐하면 지역마다 그 지역만이 가지는 특색과 역사가 분명히 있거든요. 예를 들면, 용현1·4동은 인하대학교와 관련이 깊어요. 그곳에 한때 인하대학교 학생들이 몰려 살았고 여러 주민분이 기숙방이라는 주거 공간을 임대하며 살았죠. 기숙방은 지금의 고시원과 비슷해요. 저도 살아봤는데 월세가 12, 13만 원 정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인하대학교에 기숙사가 생기면서 그 공간의 용도뿐만 아니라 학생과 주민의 생활 양식도 달라졌죠.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요즘에는 여러 기관에서 이런 부분을 주의 깊게 보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작업이 충분히 이뤄지기 전에 재개발 등으로 지역이 너무도 빠르게 변해가죠. 주안염전이 도시개발이 진행되면서 공업용지로 바뀐 이야기, 용현5동에서 군수공장, 미군 유류저장소 등이 세워지고 허물어진 이야기, 국제개발부흥은행에서 차관을 도입해 주안5동에 지은 아파트가 재개발로 사라진 이야기 등 기록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지점들이 많아요. 하지만 이제라도 인천이 가진 여러 유산이 다시 이야기되고 있어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또, 인천의 정체성을 ‘해불양수’라고 하잖아요? 바다는 물을 가리지 않는다고 해서 인천이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라고 이야기하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직도 지역에서 이러한 다양성을 포용하는 모습이 부족해 보일 때도 있어요. 앞으로 우리 안의 다양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품는지에 따라 진정한 해불양수가 실현되는 인천으로 나아갈 수 있을 지 없을 지가 판가름 날 것 같아요.

 

- 연구자로서 언제 보람이나 즐거움을 느끼나요? 또는 어려움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저는 답은 항상 현장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료를 찾으러 현장을 돌아다니는 걸 매우 좋아해요. 예전에 인천의 외국인 묘지를 조사하는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잘 알려진 북성동에 있던 외국인 묘지, 내동에 있던 중국인 묘지, 율목동에 있던 일본인 묘지, 이렇게 세 묘지를 조사했어요. 그 묘지들이 이전해 가는 과정을 알아보고 남은 흔적을 찾아가는 작업이었죠. 정말 흥미로웠어요. 그때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어떤 조사나 연구에서 장소가 가지는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걸 많이 깨달았어요. 어떤 장소든 제 나름의 이야기를 품고 있으니까요. 공간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따라 도시를 더욱 풍부하고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려운 점을 말하자면, 제가 앞서 이야기한 포구 조사를 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우선 제 전공과 달리 민속생활사 중심으로 조사를 펼쳐야 해서 조금 어렵기도 했고요. 또, 보고서에는 여러 작가님과 협업하여 문화예술적 해석을 가미해야 하는 대목도 들어가요. 그런데 저로서는 그게 처음 해보는 시도다 보니 고민이 깊어지더라고요. 무엇보다도 그때 포구 모습을 기억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지 않아요. 주로 나이가 여든을 넘은 분들이니까 당시 기억은 사실 어렴풋하죠. 만약 이 조사가 좀 더 일찍 이뤄졌다면 더 풍부한 내용과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냈을 거라는 안타까움이 많아요.

 

-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연구나 프로젝트가 있나요?

인천의 서해접경 지역, 특히 한강하구는 매우 독특한 공간이에요. 엄밀히 말하면, 군사분계선이 없는 중립수역이에요. 정전협정을 보면 민간 선박의 항행이 가능해요. 그런데 현재는 유엔사 규정에 따라 그곳이 닫힌 공간이 되어버렸죠. 저희가 현재 하는 포구 조사 등의 작업은 언젠가 남북 관계가 좋아져서 이 공간을 활용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검토할 때 어떤 근거자료로써 활용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이전에는 포구를 중심으로 남북 양안 지역 사이에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졌으니까요.

아울러 이전에 계획만 하고 실행하지 못한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요. 현재 어로한계선이 한강하구 중립수역보다 더 남쪽인 강화대교 쪽에 그어져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거기서부터 배가 못 들어가요. 하지만 달리 보면, 한강하구 중립수역과 어로한계선 사이에 유엔사 허가 없이 항해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거예요. 대략 그 어로한계선부터 강화도 연미정 있는 곳까지죠.

다시 말해, 그곳이 1964년에 어로한계선이 설정된 이후로 지금까지 민간인이 한 번도 못 들어간 공간인데요. 그래서 언젠가 시민들과 함께 배를 타고 그 물길을 따라 해상 답사를 해보고 싶어요. 거의 60년가량 막혀있던 물길을 헤쳐보는 거죠. 배를 타고 그 길을 나아가면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인문콘서트나 전시, 공연 등의 문화행사도 하고요. 그렇게 한 발자국이라도 더 열린 물길로 나아가는 거죠.
정말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어요. 인천 시민들이 이 한강하구 중립수역을 어떻게 평화적으로 활용해야 하는지를 남북 관계와 함께 고민하는 기회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그 이전에 시민들과 함께 평화를 다루는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저희가 조사하고 연구한 내용도 시민들에게 잘 전해드려야겠죠. 인천의 서해접경지역이 앞으로 한반도 평화를 이야기하는 인천의 귀한 평화자산으로 잘 자리 잡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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