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지배력 있는 원청에게 사용자 책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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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지배력 있는 원청에게 사용자 책임을
  • 노영민
  • 승인 2022.09.15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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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칼럼]
노영민 / 노무사, 민주노총인천본부 노동법률상담소

- 하청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지난 7월 2일 열린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 엄호 영남권 노동자대회'
지난 7월 2일 열린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 엄호 영남권 노동자대회'

316,028,657,053(삼천백육십억 이천팔백육십오만 칠천오십삼)

무엇을 뜻하는 숫자일까?

한참을 헤아려야 알 수 있는 이 숫자는 기업 혹은 정부기관이 노동조합과 노동자 개인을 대상으로 손해를 배상하라고 청구한 금액의 총합이다. 소송기록이 확보된 197건의 사건만으로 이 정도다. (출처 : 33.3손배가압류소송기록아카이브)

이 금액이 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지는 않을지라도 이 숫자는 노동자에게 어마어마한 공포가 된다. 심지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배달호, 김주익, 최강서 열사가 그랬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현장에서는 손배가압류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금처럼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며 51일간 파업을 벌였던 하청 노조 간부 5명에게 47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이트진로는 운송료 인상과 계약해지에 대해 파업한 하청 화물노동자들에게 55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9월 9일 노사합의로 손해배상소송 및 가압류 철회함) CJ대한통운은 과로사하지 않게 해달라는 ‘사회적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2021년에 파업한 택배노동자들에게 2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우리나라 헌법 제33조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하여 노동3권을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노동3권 보장의 취지에 대해 “노동관계당사자가 … 대등한 교섭주체의 관계로 발전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때로는 대립·항쟁하고 때로는 교섭·타협의 조정과정을 거쳐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게 함으로써, 근로자의 이익과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이지만 노동자들은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거액의 ‘손배 폭탄’을 맞고 있다. 노동자들은 손배 소송 때문에 노조를 탈퇴하고(노조 파괴), 협상에서 위축되고, 농성이나 집회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어렵게 된다(교섭권·쟁의권 박탈). 오랜 시간 이어지는 재판에서 정신적 고통을 받고 가정이 파탄나기도 한다(가정 파괴).

이런 문제들은 다단계 하청과 파견 등 간접고용이 확산되며 더욱 심각해졌다.

헌법상 노동3권은 하청노동자에게도 보장된다. 법전에 따르면 그렇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고용도 불안하고 임금도 낮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원청은 하청노동자의 고용주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한다. 하청은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거부한다.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에 원청은 대체근로를 투입하고 원청사업장에서 파업한다며 용역을 동원해 하청노동자들을 쫓아내고 거액의 ‘손배 폭탄’을 던진다.

대우조선해양, 하이트진로, CJ대한통운 하청노동자들에게 정확히 이런 일이 벌어졌다. 15년 경력의 대우조선 하청노동자가 연 3천4백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470억이면 이런 노동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1천300년을 갚아야 한다. 손배가 청구된 5명에게 평균 94억 원이고 200년 이상 일해야 갚을 수 있는 돈이다. 대우조선은 정말 이 금액을 다 배상받으려고 소송을 했을까? “원청을 상대로 파업하지 말라, 파업하면 파업 참가자뿐만 아니라 가족도 죽을 때까지 괴롭히겠다. 그러니 원청 상대 파업은 꿈도 꾸지 마라.”가 진정한 목적이지 않을까?

이쯤 되면 손해배상 청구는 노동자를 향한 살인 무기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파업 노동자나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제한하는 노조법 개정안(이하 ‘노란봉투법’)들이 국회에서 발의되고 있다. 2009년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 참여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2014년 가해진 47억 원 손배가압류 폭탄을 막자는 취지에서 발의됐다가 잠자던 노란봉투법이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을 계기로 다시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발의된 법안들 대부분은 하청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파업을 한 것에 대한 손배청구를 막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개정안이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이나 하이트진로, CJ대한통운은 파업한 하청노동자들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선박 건조업무의 7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대우조선해양의 SA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를 통해 작업구역, 작업량과 속도, 업무배치 등 작업 전반에 대한 통제를 받고 있다. 임금도 원청이 지급하는 하도급 대금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다.

하이트진로에 전속돼 일한 화물노동자들의 운송구역을 정하는 자도, 배송량에 따른 운송료를 산정하고 지급하는 자도 하이트진로다. 그런데도 정부가 앞장서서 화물노동자들은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며 불법파업으로 몰고, 하이트진로는 자신들은 화물노동자들의 ‘사용자’가 아니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지난해 중앙노동위원회는 CJ대한통운에 대해 대리점 택배기사의 택배운송 노무는 CJ대한통운 택배서비스사업 운영에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요소로서 대리점 택배기사는 CJ대한통운의 택배서비스사업의 수행에 필수적인 택배운송 노무를 제공하고 있고, CJ대한통운이 구축·관리하는 택배서비스 사업 시스템에 편입되어 있다며 사용자성을 인정했지만, CJ대한통운은 여전히 대리점 택배기사에 대한 사용자성을 부정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하이트진로, CJ대한통운처럼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원청’을 ‘사용자’로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란봉투법은 효과를 볼 수 없다. 하청 노동자들이 노동3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자가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도록 노조법 2조의 ‘사용자’ 정의를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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