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고구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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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고구려비
  • 전갑남 객원기자
  • 승인 2022.10.1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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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탐방] 충주 고구려비전시관 - 우리나라 유일의 고구려 비석을 볼 수 있다.

충주에는 한반도에 하나뿐인 고구려 비석이 있다.

충주 고구려비는 고구려의 한강 이남 진출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유물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국보 제205호로 지정되었다.

충주 고구려비. 1981년 3월 18일 국보 제205호로 지정되었다.
충주 고구려비. 1981년 3월 18일 국보 제205호로 지정되었다.

19792. 고구려의 잠든 역사를 깨운 것은 이름 없는 답사팀에 의해서였다. 충주지역 문화재 애호단체인 예성동호회가 그 주인공이다.

예성동호회의 그간 활동을 보면 예사로운 모임이 아니다. 동호회를 결성하고서 봉황리 마애불상군(보물 401)을 찾았고, 고려 광종이 어머니 신명순성왕후를 기려 지은 숭선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명문 기와도 확인하였다. 아마추어라기보다는 역사 학술단체 못지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들은 틈만 나면 삼국시대 각축지였던 충주 일대를 답사하였다고 한다.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입석마을을 답사하다 동네 어귀에 있는 비석을 발견하여 극적으로 고구려비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입석마을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버티고 서있는 비석을 마을을 지켜주는 장승처럼, 또 무병장수와 다산, 풍요를 가져다주는 고을의 신처럼 여기지 않았을까. 입석은 역사 속 민초들의 고단한 삶과 함께 위안의 대상으로, 가슴속 울분 같은 것을 말없이 받아주던 수호신과 같은 존재였는지 모른다.

전시관 내 충주 고구려비가 발견된 입석마을의 설명문.
전시관 내 충주 고구려비가 발견된 입석마을의 설명문.

이끼 덮여 오랜 세월 방치되었던 입석. 동호회 회원들은 사각형 비면에 새겨진 흐릿한 글씨가 예사롭지 않아 학계에 알리고, 역사학자들은 처음엔 신라 진흥왕순수비인 줄 알고 판독을 시도했다.

그런데, 고구려 관직명 전부대사자(前部大使者), 제위(諸位) 등과 특히, 만주 집안시에 있는 광개토대왕의 비문에서와 같은 지명 고모루성(古牟婁城) 등의 문자가 나와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처음 진흥대왕(眞興大王)이라 판독하던 비문을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 읽히니 차츰 의문이 풀리게 되고 우리나라에서 고구려비가 발견되는 감동을 안게 되었다.

그리고 당내 내로라하는 역사학자들이 모여 마모가 심한 고구려 비문의 해독에 심혈을 기울였다. 잘 보이지도 않는 글자와 연결되지도 않은 문장을 두고 고뇌에 찬 해석과 열띤 논쟁을 벌였다.

몇몇 명문은 확인되었지만,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비문의 마모가 심한지라 비문 앞부분은 50%만 확실하고 문맥으로 읽을 수 있는 부분은 25%밖에 되지 않았다.

남한강 줄기를 끼고 있는 충주지역은 삼국시대 백제, 신라 땅이었다가 고구려 세력권에 들었던 곳이다.

충주 고구려비는 5세기 말 고구려가 한강 이남 진출의 결정적인 유물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문맥에서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밝혀주는 내용을 담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한다.

고려대왕 신라매금 세세위원여형여제(高麗大王 新羅寐錦 世世爲願如兄如弟). , 고려왕은 신라매금()과 오래도록 형제와 같은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신라토내당주(新羅土內幢主)란 명문이 나오는데, 이는 신라 영토 내에 주둔하고 있는 고구려군의 사령관을 뜻한다. 이는 고구려 군대가 신라 영토 내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비문에 새겨진 글자 하나하나가 우리 고대사를 밝혀줄 중요한 열쇠를 담고 있다.

1500여 년의 오랜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비문 원문이 크게 훼손되고, 비문에 새겨진 내용을 완벽하게 판독할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고구려비가 건립된 것은 대체로 고구려가 강성했던 장수왕 시기로 보고 있다. 고구려는 5세기 후반 장수왕 때 남진정책(南進政策)으로 고구려가 신라로부터 남한강 지역을 차지하여 최대 영토를 이루었다. 그 당시 고구려는 우리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하고 강대했다. 그 역사적 산물인 고구려비가 말해주고 있다. 위대한 고구려의 기상을 보여주고도 남음이 있다.

고구려비기념전시관은 그리 크지 않는 규모이지만 알차게 구경할 수 있다. 기념관 안의 고구려비는 유리로 사면을 보호하고 있다. 감싸고 있는 유리에 빼곡하게 4면의 내용을 기록해놓아 인상적이다. 전시관에서 충주에서 만날 수 있는 충주 가금면 봉황리 마애불상군, 장미산성 등 다양한 고구려 유적들을 대할 수 있어 고구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남한에서 고구려 흔적을 보기가 결코 쉽지 않다. 충주고구려비전시관을 찾아 고구려비에 대한 의의를 되새길 수 있어 여행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한 고구려. 고구려비를 통해 그 위대한 역사 현장이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충주 고구려비전시관 야외공원. 고구려를 이해하기 쉽게 잘 가꿔놓았다.
충주 고구려비전시관 야외공원 전망대.
고구려 야외전시관의 무용도 모형 벽화가 인상적이다.
고구려비 야외전시관의 무용도 모형 벽화가 인상적이다.
고구려비전시관 야외공원 조형물
고구려비전시관 야외공원 조형물.
충주 고구려비전시관 야외 공원. 고구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고구려의 기상이 느껴지는 야외공원은 고구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고구려비전시관 찾아가기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감노로 2319

관람시간 : 09:00~18:00(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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